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권정생 지음/양철북·1만3000원
나는 땅이 될 것이다
이오덕 지음/양철북·1만3000원
<몽실 언니>의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은 일평생 병약하고 외롭고 검박했지만 결코 애상에 찬 허무주의자는 아니었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고 했던 그는 어쩌면 자신이 선망했던 혁명적인 인간 유형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혁명가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되고 공정치 못한 일이면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바로 고쳐 나가는 사람이다. 개인의 사소한 일이나 사회와 국가의 일 모두가 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 공부하는 마지막 목표다.”(<빌뱅이 언덕>)
원래부터 그는 외톨이였다. “출생지가 남의 나라(일본)였던 저는 여지껏 고향조차 없는 외톨박이로 살아왔습니다. 아홉 살 때 찾아온 고국 땅이, 왜 그토록 정이 들지 않았는지요? (…) 소외당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고국은 나에게 전쟁과 굶주림, 병마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위에 몸서리처지는 외로움을 (…) 그러나 메말라진 흙 속에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어, 여지껏 목말라 허덕였습니다.”
1973년 2월8일 편지에서 권정생은 이렇게 썼다. 9일 전인 1월30일 편지에서는 “바람처럼 오셨다가 제(弟)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썼다. 그가 이처럼 아우요 제자를 자처하며 편지를 보낸 이는 역시 아동문학가요 교육운동가,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가, 자연생태주의자
이오덕(1925~2003). 그 보름 전쯤 이오덕은 권정생이 평생을 보낸 경북 안동 일직 조탑마을을 찾아갔다. 당시 경북 문경군 김룡국민학교 교감으로 있던 이오덕은 그해 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발표된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의 작가 권정생을 만나러 갔고, 그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12살 나이 차를 뛰어넘어 평생 동무요 동지로 지냈다.
그해 3월11일 편지에서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라고 했던 권정생은, 그 사흘 뒤에 “선생님을 알게 되어 이젠 외롭지도 않습니다”라는 편지를 또 보냈다. 이오덕의 출현은 권정생에게 분명 빛이었다.
그때부터 이오덕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해인 2002년 11월까지 30년 동안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이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책으로 엮여 나왔고, 바로 앞서 이오덕의 일기를 간추린 <나는 땅이 될 것이다>가 출간됐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은 그중 일부(1986년까지)가 2003년에 책으로 엮인 적이 있으나, 자신이 죽고 세월 지난 뒤에나 책으로 내라고 했던 권정생의 뜻에 따라 이내 절판됐다가 타계 8년 뒤인 이제 제대로 빛을 보게 됐다.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2003년 8월 이오덕이 세상 떠나기 이틀 전까지 썼던 42년간의 일기들을 정리한 다섯권짜리 <이오덕 일기>(2013)를 한권으로 다시 간추리고 간략한 배경설명을 편집자주로 달아 읽기 쉽게 편집한 책이다. 이 책 1973년 1월31일 일기에 실린 1월18일 권정생 방문기록을 보면, 찾아가는 과정과 그가 들은 권정생의 가족사와 병, 문학관 등이 나오고 그 끝에 배경설명이 각주로 붙어 있다.
그 바로 앞 일기들은 유신헌법 공포 직후 교사들이 집집을 방문해 이상한 사람을 보고하고 마을 이장들은 유신헌법에 대한 주민들 찬반 반응을 영표·삼각표·곱표로 표시해 보고하면서 아이들에게도 그런 식의 학부모 ‘반응조사’를 하게 한 기막힌 사연들을 담고 있다.
<이오덕 일기>를 두고 작가 공선옥이 출간 당시 했던 평은 지금 봐도 적확해 보인다. “질곡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어른의 피어린 기록이다. 군사독재, 이농, 산업화 시대를 가파르게 통과했던 한 지식인의 내밀한 자기 고백서를 통해 우리는 오늘의 우리 모습과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더욱더 명확히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선생의 글은 시대를 증언하는 통렬한 사회비평서다.”
청호초등 탁동철 교사는 <이오덕 일기>를 “제 한 몸 편하면 그만인 교사, 돈에 눈먼 교장, 군대식 행정, 독재 정치, 그 모든 추한 것들에 대한 저항의 기록이며, 캄캄한 절망 속에서 한줄기 희망을 붙잡고 나아가고 있는 이오덕 자신에 대한 기록이며, 우리 교육의 역사”라고 했다.
권정생은 광주항쟁 직후인 1980년 7월24일 편지에서 ‘국민총화’를 강요하던 군사정권에 이렇게 항변한다. “하느님 나라는 절대 하나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일만 송이의 꽃이 각각 그 빛깔과 모양이 다른 꽃들이 만발하여 조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1981년 4월30일 편지에서는 “버림받은 사람들을 착취하며 이용해 먹는 족속들”에 분노하면서 종교 지도자, 학자, 자칭 애국자들, 방송, 신문 등을 거론한 뒤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해선 먼저 인간이 망해야 한다”, “저주받아야 할 것은 인간들뿐”이라고 절규한다.
병약하고 슬퍼했지만 결코 유약하지 않았던 ‘혁명가 권정생’의 70 평생은 이오덕이란 또 다른 혁명가가 동무로 함께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이 책들은 갖게 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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