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에 ‘하승수의 오, 녹색!’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한 지도 벌써 2년7개월이 넘었다. 불행하게도 그사이 대한민국은 더 나쁜 방향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300명 넘는 생명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사라졌는데, 1년 넘도록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월호 추모 행동에 참석하러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갔을 때, 거기서 만난 청소년들은 “이게 국가냐”고 울면서 얘기했다.
‘이게 국가냐’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2013년 10월 경남 밀양 단장면에서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땅을 갈아엎고 있는 포클레인. 박승화 기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상하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활동하는 녹색당은 지난해 청와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도대체 2014년 4월16일 청와대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공개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소송 과정에서도 청와대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2014년 4월16일 21차례에 걸쳐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보고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국가안전보장을 위해서란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상황을 규명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2014년 4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여전히 이상하다. 소송 과정에서 청와대 쪽은 4월16일 오전 10시께 대통령이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로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다음에 드러난 대통령의 일정은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일이다. 그 사이에 대통령이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명을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총리 관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상세하게 공개돼 있다. 신문기자들이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자세하게 써서 책으로도 출판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이상하다. 세월호 참사 같은 엄청난 사고가 났을 때 권력의 핵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대통령이 왕조시대의 ‘왕’처럼 행세하고 있다. 모든 것은 비밀에 부치고, 자신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뿌린 시민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통령 명예훼손이라고 한다. 고소도 안 했는데 경찰이 수사해서 구속까지 했다. ‘알아서 기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게 국가냐’라는 말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공유재는 권력자에 의해 사유화돼 있다. 그 권력 뒤에는 이권집단이 있다. 대통령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재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경찰·검찰 같은 공권력이 물리적 호위무사 역할을 하고, 언론·관료·전문가들은 정신적 호위무사 역할을 한다. ‘김앤장’ 같은 로펌은 이 구조의 상징이다. 관료와 판검사들은 퇴임 뒤 김앤장으로 가고, 이들은 다시 김앤장에서 청와대로 가고 고위직이 된다. 과연 이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일까? 이처럼 국가라는 공유재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권집단들에 의해 장악당했다.
국가라는 공유재를 자기 것으로
그래서 ‘이게 국가냐’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주민들이 경찰, 용역 직원들과 몸으로 부딪힐 때, 밀양 할머니들은 “이 모든 게 정치가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규탄했다. 국가가 어떻게 국민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폭력으로 짓밟고 모욕할 수 있냐고 얘기한다.
고리-신고리에 원전을 10개까지 몰아서 짓겠다는 계획이 밀양 송전탑을 낳은 근본 원인이다. 수명이 끝난 원전도 수명을 계속 연장하고, 발전소가 남아도는데도 원전을 더 짓겠다는 엉터리 정책이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그리고 국무총리와 장관은 급하지도 않은 공사가 급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국가’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일이지만, 사실은 사적 이익을 위한 일들이다. 원전 건설과 송전탑 건설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 있다. 삼성, 현대 같은 이름들이 나온다. 이들 기업에 붙어 사는 영혼 없는 존재도 있다. 용역을 따고 자리 얻는 일에 관심 있는 전문가, 지위 상승을 꿈꾸는 관료들이 있다. 이들이 국가라는 공유재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사회공동체와 사람들의 삶을 망치고 있다.
4월20일에는 장애인 차별 철폐를 외치는 장애인들이 매년 집회를 한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며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도 1천 일이 돼간다. 그동안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활동보조인이 필요하지만, 잘못된 제도 때문에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다. 실제로는 혼자서 움직이기 힘든데 장애등급 판정은 엉뚱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면 정부는 ‘예산’ 타령을 한다. 그런데 375조원에 달하는 정부 예산 중 상당수는 엉뚱하게 쓰이고 있다. 4대강 사업만 안 했어도 장애인들이 인간답게 사는 데 필요한 예산은 확보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정부 예산도 사유화돼 이권집단들을 위해 낭비되고 있다.
최근 어떤 강연 자리에서 질문을 받았다. “녹색당이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이 ‘녹색’의 지향이라고 얘기했다.
이 단순하고 소박한 바람은 밤하늘의 별처럼 손에 잡히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는 국가가 사유화되고 권력이 사유화됐기 때문이다. 이권과 탐욕이 ‘국가’의 이름으로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분들이 ‘녹색’을 지향하기를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민 가고 싶다’는 사람들을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게 국가냐’는 얘기가 나오는 사회에서 계속 살라고 얘기할 자신이 없게 된 것이다. 국가를 사유화한 기득권 세력은 자식을 외국에 보내서 영주권도 따게 하는데,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이 땅에 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늘 “이 땅에서 같이 살자”고 얘기한다. 아직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유화된 국가를 되찾아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나는 국가라는 공유재를 되찾는 운동을 해왔고, 지금은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일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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