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핀란드 헬싱키 교외에 사는 40대 주부 프리다 크로츠는 최근 ‘단순하게 살기(Live Simpler)’라는 주제의 공부 모임을 시작했다. 직장과 가사로 숨쉴 틈 없는 일상에서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의문을 품은 것이 계기였다.
그는 동네 주부 5명과 주말 오전에 만나 지속가능한 삶이나 환경문제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한다. 자동차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카 셰어링(Car Sharing)도 시작했다. 모임에 드는 비용은 인근 스터디 센터의 지원을 받았다.
#2. 1990년대 초 스웨덴은 유럽연합(EU) 가입 문제로 들썩였다. 세계화 시대에 고립되지 않으려면 가입해야 한다는 찬성파와 중립국가의 전통을 지키자는 반대파가 팽팽히 맞섰다. 스웨덴 각지에는 유럽 역사, EU 가입의 장단점 등을 토론하는 공부 모임이 수백 개 생겨났다. 스웨덴은 1994년 열린 국민투표에서 52.2%의 찬성으로 EU 가입을 결정했다.
해마다 수천 개씩 새로 생겨
지난달 17일 오전, 스웨덴 스톡홀름의 스카프넥 코뮨(한국의 구(區)에 해당하는 행정단위) 문화회관 강당을 찾았다. 연극이나 댄스 등의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스터디 서클 ‘폴리티컬 시어터(Political Theater)’ 모임이 진행 중이다. 강당에 들어서니 젊은 여성 12명이 빙 둘러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칠판에는 ‘새로운 세상’ ‘돌멩이를 던지다’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이 스웨덴어로 적혀 있다.
이들은 “8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축제 ‘프라이드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사벨 크루즈 릴리에그렌(28)을 비롯해 연극배우로 활동 중인 운영진 3명이 지역 소식지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다. “어떤 내용의 공연이냐”고 물으니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답한다.
이사벨이 말했다. “주어진 대본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이 모임의 목표입니다. 각자 성 역할과 여성의 사회참여, 동성애 등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중입니다.”
오전 내내 이어진 그룹 토론, 이들은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노트에 꼼꼼히 기록한다. 오후엔 스트레칭과 상황극 연습이다. 스포츠클럽 안내 일을 맡고 있는 티나 카피쉬(26)는 “연극배우를 꿈꾸는 나에게는 이 모임이 직업 교육의 의미도 있다. 희곡을 읽는 모임과 피아노를 배우는 강좌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국가에서 비용·교육·장소 등 지원
‘폴리티컬 시어터’는 ‘ABF(Arbetarnas Bildningsf<00F6>rbund·노동자교육협회)’라는 기관의 지원을 받는다. ABF는 스톡홀름 내에서만 스터디 서클 5000여 개를 관리하는 스웨덴에서 가장 큰 성인교육연합체다. 스웨덴에는 ABF 외에도 10개의 비슷한 단체가 있다.
이 기관들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직업교육센터나 대학의 학위·비학위 성인교육 과정을 제외한, 민간에서 진행되는 비공식 성인교육을 총괄한다. ‘폴리티컬 시어터’처럼 개인이 조직한 스터디 서클은 물론 노동조합·문화단체 등이 운영하는 스터디 서클이 속해 있다.
스터디 서클을 만들고 싶은 이들이 참가인원, 학습계획 등을 정리해 ABF에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홍보나 장소협찬, 리더 교육 등을 지원받는다. ABF는 예산의 50%를 스웨덴 정부에서, 25%를 지방정부에서 지원받고, 25%는 회원단체들이 내는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핀란드의 경우도 비슷하다. 지난달 15일, 핀란드에서 가장 큰 성인교육연합체인 ‘OK 스터디 센터’를 방문했다. 센터는 전국에 6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핀란드 적십자사 등 67개의 단체와 개인들이 조직한 스터디 서클을 관리한다. 5명 이상의 인원, 10회 이상의 모임을 계획중인 스터디 서클은 주제에 상관없이 신청이 가능하다. 지원이 결정되면 모임 1회에 1인당 4유로(약 5900원)를 지원한다.
센터 운영예산의 40%는 핀란드 교육부가 지원하지만,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아니타 페코넨 사무국장은 “정부는 자발적인 공부 모임이 수행하는 사회통합이나 시민교육 기능을 인정하기 때문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주제의 자유로운 배움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스터디 센터의 정치적 독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길지 않은 노동시간 … 한국과 사정 달라
북유럽 스타디 서클의 성공은 ‘교육은 평생 국가가 책임진다’는 교육 복지 이념과 길지 않은 노동시간 등의 사회적 조건이 결합돼 이룬 성과다. 따라서 북유럽의 케이스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 나종민 문화정책국장은 “정부의 하향식 지원이 아닌, 민간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장려하고 활성화하는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지역 내에 형성되고 있는 인문학·문화 단체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프로그램을 공모해 지원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헬싱키·스톡홀름=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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