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이후 오랜 침묵 깨고
각계 전문가 7인에 질문
"정권 심판만 내세워선 선거 못이겨
변혁적 중도주의로 대중 결집해야"
과연 희망은 있나. 다 무슨 소용인가. 재ㆍ보궐 등 수 차례 선거에서 정권심판을 바랐으나 매번 보수 승리의 결과가 반복되는 것을 보고 허무해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대답이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내놓은 대담집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창비)가 그것이다. 전작 ‘2013년체제 만들기’에서 “총선 대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2012년이 혁신적 체제변화를 위한 더 없는 기회”라 희망했던 그 역시 허무를 오래 앓았다.
그는 늘 질문세례를 받아온 시민사회 원로의 옷을 벗고 직접 질문자 역할을 자청했다. 부제는 ‘큰 적공(積功)을 위한 전문가 7인 인터뷰’다. 정대영 송헌경제연구소장(경제), 이범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교육),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남북관계), 김영훈 전국철도노조 위원장(노동),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환경),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여성), 박성민 MIN컨설팅 대표(정치) 등 대담 상대를 백 교수와 창비 기획팀이 선정했다.
책의 서장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에서 그는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시대가 요구하는 큰 전환을 이룩할 적공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다”며 “수구보수 카르텔의 거대한 성채에 약간의 균열이라도 낼 수 있는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6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백 교수를 만났다.
-대담집 출간 계기는.
“2013년체제를 말할 때보다 많이 겸손해졌다(웃음). 당시 새 세상을 꿈꿔야지 선거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했다. 사실 2012년 대선에 기대를 걸고 했던 말이 아닌가 싶다. 아시다시피 구상했던 체제는 만들어지지 못했고 이후 침묵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더 이상 안되겠다 생각했다. 묻는 자세로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았다.”
-대담을 관통한 문제의식은.
“대전환을 해야 하고 말로만 될 일이 아닌 만큼 적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뤘다. 쉽게 말해 내공을 쌓아야지 단순히 정권의 실정을 심판해서 선거에 이기겠다는 안일한 인식으로는 안 된다. 요즘 선거도 못 이기지 않나.”
-선거 결과는 왜 그럴까.
“박성민 대표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국민은 웬만하면 야당 찍어줄 준비가 돼있다’는 거다. 바꿔 말하면 현 야당이 웬만하지 않다는 얘기다. 대전환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넓어져야 하고, 정권교체가 갖는 의미, 2016년 총선이 가지는 의미, 그러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
-대전환을 가로막는 세력이 누군가.
“가장 최근 예를 들면, 세월호 진상규명은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해 꼭 필요했다. 하지만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나. 제대로 하지 말자는 사람들이 많았고, 정부는 아예 모법을 시행하지 말자는 시행령을 내놨다. 세상이 안 바뀌길 원하는 사람들이 실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들을 원망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정권교체가 필수인가.
“2012년 대선은 야당의 적공이 부족해서 졌다. 물론 적공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그래서 만약 야당이 됐다고 치자. 오히려 2017년 대선은 수구보수 카르텔이 떵떵거리며 집권했을 것이고 더 장기집권할 가능성도 있다. 당시 야당이 잘 졌다는 것이 아니라 길게 보면 좋은 면도 없지는 않다는 거다. 대전환에 있어서 선거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선거야말로 국민들이 얻어낸 최대 전리품이다. 수구보수 진영이 기술도 좋고 돈도 많아 선거를 잘 치르지만 선거 때가 되면 불안해하지 않나. 그러니 거짓말도 하고 선심도 쓴다. 수구보수 카르텔이 한번 지는 것이 진정한 보수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금도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이 많다. 보수 동맹을 주도하는 세력이 수구일 뿐이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답이 될 수 있나.
“변혁이라는 것은 분단 상태보다 나은 한반도 체제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중도는 변혁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으자는 취지다. 쉽지는 않다(웃음). 이것은 일종의 화두다. 하지만 대중은 이미 이 방향을 지지한다. 아무것도 안 바꾸겠다는 이들이나 자기들 말만 들으면 당장이라도 바뀔 것 같이 주장하는 극단적 세력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 중간에 있다면서 구체적 비전도 실천도 없는 제1야당도 안 된다는 인식이다. 다만 그 결집을 위해선 아직 여러 사람이 많은 적공을 쌓아야 한다.”
-결국 대전환은 희망적인가.
“사람들은 ‘이토록 노력해도 세상이 바뀌는 게 없다’고 한탄하거나 분노한다. 하지만 옆에서 팔짱 끼고 ‘그런다고 세상 바뀌냐’는 질문은 구별해야 한다. 후자는 세상이 안 바뀌는데 기여하는 냉소주의다. 이렇게 묻기 전에 ‘나 스스로 얼마나 바뀌었나’ ‘주변에 바뀐 사람들이 얼마나 있나’ 제대로 알아보고, ‘안 바뀌는 것은 어떤 구조 탓인가’를 고민하는 세 단계의 통찰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기록이 조그만 보탬이 되길 바란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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