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14--하버마스는 마르크스주의적 해방 사상가인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51517.html

하버마스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대표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의 모델을 그대로 수용하는 대신 의사소통 합리성에서 새로운 비판이론의 토대를 발견한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사회조사연구소는 비판이론의 발생지로서 하버마스에게 영향을 준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산실이었다.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4부.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분열과 마르크스주의 개조

12. 장폴 사르트르: 역사의 총체성을 회복하기
13.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로 돌아가는 우회의 길
14. 위르겐 하버마스: 마르크스주의에서 근대성으로
위르겐 하버마스(1929~)는 이론의 여지 없이 20세기 후반 독일 철학계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60여년에 이르는 지적 활동을 통해 현대 철학 및 사회이론의 향방을 규정하는 다수의 걸작을 남겼으며, 이론적 적수들과의 논쟁을 통해 자신의 문제설정과 작업 방향을 끊임없이 조정하고 쇄신했다. <이론과 실천>(1962), <사회과학의 논리>(1967), <인식과 관심>(1967), <역사유물론의 재구성을 위하여>(1976), <의사소통행위이론>(1981),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 <사실성과 타당성>(1992) 등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인이 남긴 논쟁과 쇄신의 주요 이정표들이다.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의 대표적인 이론가이기도 하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을 중심으로 한 1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제설정을 계승하면서 20세기 후반의 변화된 역사적 현실에 맞춰 비판이론을 재정초하려는 것이 하버마스의 지속적인 화두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버마스의 작업이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일까? 오늘날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학파 비판이론의 계승자라기보다는 독자적인 체계를 갖춘 거대한 사상가로서 나타난다.
하버마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지점도 여기가 아닐까? 오늘날 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철학자, 더 나아가 서양철학자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베버와 파슨스, 루만과 견줄 만한 사회학의 대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질문해보자. 그는 비판적인 이론가인가? 더욱이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계보에 위치시킬 수 있는 해방적인 사상가인가? 아마 지난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이 질문들은 별로 의미가 없거나 다분히 악의적인 질문들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과연 하버마스가 어떤 의미에서 비판적인 이론가인지, 또 과연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계보에, 또는 해방 사상의 계보에 속할 수 있는 사상가인지 의문을 제기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버마스의 지적 경력의 출발점에는 나치즘의 충격이 자리잡고 있다. 청소년기를 나치 독일에서 보내고 1945년 2차 세계대전을 패망으로 맞이한 독일의 한 소년은 전쟁 당시 독일인들이 “정치적으로 범죄적인 체계에서 살았다는 사실, (…) 당시에는 정상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이 나중에 환상으로 드러났다는 사실”(피터 듀스 엮음, <하버마스: 자율성과 연대>)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는 동독에서 발행되던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을 처음으로 읽게 된다.
사회조사연구소
하버마스는 1954년 본대학에서 셸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당시 그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2차대전 당시 나치스에 가담한 전력으로 인해 제재를 받았던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입문>이 1953년 재출간된 사실이다. 하이데거가 아무런 참회 없이, 내용을 수정하지 않은 채 나치즘의 “내적 진리와 위대함”을 찬양하는 이 책을 그대로 재출간했다는 사실은 하버마스가 볼 때, 나치즘의 성립을 가능하게 했던 독일 사회의 사회적·문화적 경향이 2차대전의 패망을 통해 변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철학적·정치적 프로필>)
이러한 당혹감과 실망에 사로잡힌 그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 것이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및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은 그에게, 소비에트 식의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마르크스주의, 독일 관념론과 청년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에 기초를 둔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였다. 따라서 하버마스가 1956년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에서 아도르노의 조교로 일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의사소통의 합리성에 근거
근대성의 긍정적 측면을 인식
자본주의 사회와 단절하는
문제설정은 사라지고
정상적인 진화 과정 지속 중요시
하지만 하버마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스승들과 거리를 둔다. 우선 그는 1960년에 쓴 “철학과 과학 사이에서”라는 글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네 가지 측면에서 재평가한다(<이론과 실천>). 첫째, 마르크스주의의 ‘토대-상부구조’라는 비유는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인식하기에는 너무 조야한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는 복지국가이며, 더 나아가 복잡해진 사회 현실에 맞춰 경제 자체를 구성하고 경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의 계급 갈등 역시 완화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임박한 붕괴를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둘째, 프롤레타리아가 궁핍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부유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곧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계급은 전후 자본주의의 호황 덕분에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하버마스가 “소외된 여가”라고 부르는 삶을 살도록 강요받았다.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더 대중들은 조작된 욕구와 소비 상황에 처하게 됐으며, 기술적인 사유 양식이 경제 분야만이 아니라 국가 행정 및 사회·문화 영역의 전 분야로 확산됨에 따라 관료제적 통제가 대중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셋째, 따라서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전제하고 있던 혁명의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은 더 이상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 및 중간 계급은 정치적 행위 능력이 위축된 가운데에서도 물질적인 안정을 누리고 있었으며, 따라서 더 이상 반역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버마스는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의 존재를 거론하고 있다.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타락한 형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인간의 해방보다는 급속한 산업화를 추구하는 행정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변화된 자본주의의 현실에 걸맞은 사회 분석과 변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모델이 아니라 새로운 비판 모델을 찾아야 했다. 하버마스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대표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의 모델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대신 의사소통 합리성에서 새로운 비판이론의 토대를 발견한다.
“나는 초기 비판이론의 프로그램은 이러저러한 우연적 상황으로 인해 실패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의식철학 프로그램의 잠재력 고갈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나는 의사소통이론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킴으로써 도구적 이성비판에서 중단됐던 과업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다시 한 번 그때 이후로 간과되었던 비판적 사회이론의 과제를 재개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의사소통이론 1권>)
이 모델은 도구적 합리성 내지 목적합리성과 구별되는 의사소통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근대성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했던 베버나 1세대 비판이론가들의 한계를 벗어나 근대성의 긍정적 측면(민주주의, 합리화)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아가 경제적·행정적 체계의 확장에 따라 생활세계가 식민화하는 경향을 비판하고 거기에 저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줄 수 있다. 오랫동안 찾았던 비판이론의 규범적 토대가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 및 초기 프랑크푸르트학파 이론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와 단절한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의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규범성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었다. 반면 하버마스에게는 이러한 단절의 문제설정은 사라졌으며, 사회의 정상적인 진화 과정(그것이 민주화든 성찰적 근대성이든 간에)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하버마스의 비판이론은 무엇을 위한 비판인지, 누구를 위한 비판이론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하버마스가 마르크스주의의 계보에 속하는지 여부를 묻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질문일 수도 있다.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소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제된 사람들, 몫 없는 이들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적 근대성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사고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그 나름대로 여전히 의미가 있는 질문이다. 하버마스가 비판이론의 새로운 토대를 찾아 고투하던 시기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그 길을 찾던 몇몇 사상가들이 있었다. 이제 그들을 살펴볼 차례다.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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