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단수가 아니다. 불변하는 과거와는 달리 미래는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가진 복수라고 보는 것이 맞다. 미래학 또는 오늘날의 미래 예측이란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미래학은 ‘Future Study’가 아니고 ‘Futures Study’다. 20세기의 앨빈 토플러 등 오늘날의 미래학자들은 ‘무당 접신하듯’ 분명한 한 가지의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과학적이고 도식화된 근거자료를 가지고 다가올 미래를 읽어주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2015년 새해를 맞아 구글이 정한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이면서 유엔미래포럼 이사인 토마스 프레이(Thomas Frey) 박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2030년까지 20억개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절반은 문 닫는다”고 예상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주인공이다.
프레이 박사는 본지와 단독 화상 인터뷰에서 2015년에 찾아올 혁신적인 변화와 핵심적인 기술, 2015년의 키워드를 공개했다. 인터뷰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자택에 있는 프레이 박사와 이코노믹리뷰 이윤희 기자가 화상 전화로 진행했다.
‘미래학의 아버지’ 토마스 프레이 박사는 시골 출신이다. 현재도 근처 산이 보이는 공기 좋은 덴버 교외에서 아내와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책을 읽거나 공상을 하는 것 외에 시간을 다르게 보낼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IQ가 미국 상위 0.01%인 천재 청년은 목가적인 어린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거대 IT기업 IBM의 엔지니어가 됐다. 15년간 재직하며 270여번 디자인·기술 분야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미래 IT 분야에 뛰어난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전 세계 경제의 키워드를 떠오르는 대로 말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프레이 박사는 ▲데이터 처리 속도(Transaction speed) ▲암호화(Encryption) ▲적응성 ▲프라이버시 ▲투명성 ▲암호화된 화폐 ▲검색 능력 ▲초개인성(Hyper-individuality)을 열거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10년간 5개의 혁신적인 변화와 Top 5 핵심 기술을 예상해 달라는 질문에는 5개로 국한하기는 어렵다면서 다음의 것들을 꼽았다.
혁신적인 변화 5가지
#1. 모든 곳에 센서 – 작년 스탠퍼드대에서 열렸던 ‘1조 센서 서밋(Trillion Sensor Summit)’ 에서 전문가들은 2024년에는 전 세계에 1조개의 센서가 설치되고, 2036년에는 100조개의 센서가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미래에 센서는 아주 작아지고, 저렴해지고 대량생산돼 어디에나 있게 될 것이다. 페인트나 다른 코팅제에도 센서가 내장되고 우리의 옷이나 집의 벽면, 차, 교량 등에도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오는 모든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2. 사물인터넷 – 2020년에는 우리는 모든 곳에서 정보를 얻게 되고 500억개가 넘는 사물인터넷(IoT) 장치를 갖게 된다. 그리고 십년 더 흐른 뒤에는 장치들끼리 대화가 가능한 IoT 장치를 비롯해 총 10배가 늘어날 것이다.
#3. 인공지능 – 미래의 산업전쟁은 정보전을 방불케 할 것이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정보를 가지고 움직이는 자가 승리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과 강박적인 시장 가치들로 인해 이 싸움은 곧잘 지저분해질 것이다.
#4. 공유 경제 – 다가올 미래에 우리는 ‘언젠가’ 필요할 때를 대비한 소비보다 ‘제때에 빌려 쓰자’로 마음가짐을 바꾸게 될 것이다. 미래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은 그 순간에 빌려 쓰거나 맞바꿈으로써 얻게 될 것이다. 만약 전기 드릴이 필요하다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드론이 배달해줄 것이고, 일이 끝나면 다시 돌려주면 그만이다. 이것은 현재의 소유권 중심 경제모델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5. 암호화 화폐(Cryptocurrency) – 현존하는 천 개가 넘는 암호화 화폐와 눈에 띄는 견인력을 바탕으로 암호화 화폐는 우리의 첫 번째 화폐가 되어 갈 것이다. 그중 글로벌 화폐도 몇 종은 나올 것이다.
미래 핵심기술 5가지
일자리 20억개는 세계 일자리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프레이 박사는 앞으로 자동화 무인 시스템의 확산으로 세계 절반의 인구가 실업자가 된다고 했다. 기다리던 미래가 이렇게 끔찍할 수가! 그러나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는 사람들이 새로운 산업에 더욱 집중해 수많은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1. 자급자족 스마트홈 – 미래에는 모든 기기가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기분과 욕구를 파악하는 집을 가질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그 집은 전원, 냉난방, 물을 자가 발전해 내고 쓰레기, 하수구,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홈이 될 것이다. 이 스마트홈은 음식을 길러내고 수확해 인간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 3D 프린팅 – 첨가식 제조(Additive Manufacturing) 혹은 컨투어 크래프팅(Contour Crafting)이라고 알려진 3D 프린팅 기술은 수천가지로 쓰임이 가능하고 인터넷보다 더 보편적이고 만연해진다는 신호가 보인다(그는 미래에 음식도 3D 프린팅으로 만들어서 먹을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3. 무인 자동차 – 무인 자동차는 수송 산업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그 변화는 자동차가 발명된 당시보다 클 것이다.
#4. 드론(drone) – 무인비행체 드론의 가능성은 끝이 없다. 드론의 용도 192가지에 대한 칼럼을 쓴 적도 있지만 최소 1만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사용될 것이다. 몇몇은 드론이 미래에 가장 성가신 장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일부분 수긍한다. 적절한 보호 없이는 드론의 존재는 위험하기까지 할 것이다. 음식과 물을 전달하는 드론이 폭탄과 독극물을 운반할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드론의 긍정적인 용도가 많이 부각되고 있다.
#5. 초고속 운송(ET3) – 엘론 머스크와 대릴 오스터가 제안한 초고속 진공 수송 방법은 획기적이다. 세계의 운송 수단이 더 저렴해지고 쉬워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더 효과적인 시스템을 이용하면 마진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참고로 ET3를 개발한 오스터는 진공관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뉴욕까지 2시간 만에 돌파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본지와 화상 인터뷰 중인 토마스 프레이 박사 |
프레이 박사는 1800년대는 분명 영국이 지배한 세기였고, 1900년대는 미국의 것이었지만 2000년대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본다. 한 발짝 더 나아간다면 2100년대는 아프리카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오늘날의 인구통계 트렌드를 보면 2050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는 인도, 중국, 나이지리아, 미국 순이 된다. 오늘의 빈곤이 내일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한 인력을 만든다고 이 미래학자는 믿는다. 사람이 모든 경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란다.
프레이 박사는 세계의 빅2, 미국과 중국의 향후 추이에 대해서도 인구경제학적 관점에서 설명했다. 중국과 미국은 다른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현재 두 나라는 서로 다른 혁신에 집중할 것이고, 서로 완전히 다른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다른 목적, 우선권,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3배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중국의 젊은이들이 성공에 대한 갈증이 더 많아 재능 있는 수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이 박사는 현재의 국제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2008년과 2009년의 경기 침체가 모든 규칙을 바꿔놨다고 말한다. 중앙은행들이 지역의 경제부양을 위해 쓰던 전통적인 방식들은 모조리 쓸모없게 됐고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을 시행하고, 경제 안정성을 북돋우고 국민통화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이런 의무들을 수행하기도 힘들어질 것이고, 박사는 국민 통화에 안정성을 더하기 위해 글로벌 통화를 개발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고 예상했다.
<엔트로피>를 쓴 제러미 리프킨은 “한국은 미래를 주도할 여건을 갖췄다”고 평가했지만 토니 세바 스탠퍼드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2025년이 되면 (과학기술 변화로) 추락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래학자들 사이에서도 한반도에 대한 평가는 늘 엇갈린다.
작년에 우리나라를 찾았던 토마스 프레이 박사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문화를 가졌고,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무엇을 하든 근성이 있고 의지가 강하며 의욕이 넘쳐 거대한 프로젝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은 나라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한국은 기업문화가 잘 구축돼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 첫 번째 장애다. 한국 기업들에는 모험적인 아이콘이나 기업 인큐베이터, 발명 실험실, 클라우드펀딩 체계 등도 거의 없다. 물론 상황은 바뀌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프레이 박사는 우려했다.
이어 “북한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라며 “모두가 북한을 조만간 분출할 화산으로 보고 있고, 한국이 그 사후 정리를 맡아야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 시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프레이 박사는 통일은 언제라도 이루어질 수 있다며 향후 5년 이내로 보고 있지만 어쩌면 일주일 내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남북통일은 한 가지 ‘촉발점’이 되는 사건만 일어난다면 곧바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견해다.
따라서 한국은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며 통일이 되고 난 뒤에 나타날 변화들을 기회로 삼을 준비를 서두르라고 조언했다. ‘벼락처럼’ 통일을 찾아와 휴전선이 와해되고 동·서해가 열릴 날이 머지않았다고 하니 두렵고도 설레게 하는 대답이다.
프레이 박사는 현재 한국이 가진 가장 큰 문제로 ‘저출산’ 문제를 꼽았다. 한국의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은 꽤 장기간 동안 국가가 겪어야 할 어려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은 크게 보이지 않는 한국의 저출산, 노령화 문제는 반드시 미래에 한국의 발목을 잡는 큰 장애요인이 될 것이라는 게 미래학 석학의 분명한 견해다.
지난 2000년 한국은 65세 이상의 노령인구 비율이 7%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고령화 단계로 진입했다. 프레이 박사에 따르면 이것은 한국이 현재 가진 재능과 의지 정도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큰 문제다. 아니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 기업가가 수십명이 태어나도 늙어가는 사회를 부양하기는 힘든 일이라는 설명이다.
프레이 박사는 “한국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첨단 기술과 시스템적인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2015년에는 한국에서 스타트업 문화가 입지를 다지고 많은 새로운 혁신들이 이 스타트업 산업 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 기자가 만난 빙글(Vingle)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마크 테토 역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정말 많은 벤처캐피털이 생겨났고, 그만큼 스타트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국제 경제부터 미래 과학기술, 한반도 통일까지 여러 부문을 아우른 복잡한 인터뷰를 마치면서 프레이 박사에게 다시 십대가 된다면 어떤 언어를 배우겠냐고 물었다.
박사는 “기자는 한국어가 모국어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거기에 맨 처음 더해야 하는 언어는 분명 과학과 산업의 언어인 영어일 것이고, 그다음 표준 중국어, 스페인어”라고 답했다. 또 “만약 십대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데이터 분석학, 드론 항공기술, 경영학, 차세대 회계학 등을 공부할 것 같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적응력이 강하고, 정보가 많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이 성공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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