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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실태조사 보고서’
고용 지속성 취약한 가운데
부당해고·임금체불 잇따라
“회사 측에서 사직서를 쓰라고 종용하면서 허위 계약직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했다. 나는 엄연히 정규직이었는데 그들이 내민 서류는 해고당한 날로 계약이 끝나는 6개월짜리 계약직이었다. 서명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고 한 달 월급을 주겠다며 회유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대형 출판사 얘기다.”
12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인권재단 사람’ 모임방에 100명 가까운 출판노동자가 모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가 마련한
‘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 발표회 및 집담회 자리였다. 최근 자음과모음에서 부당전보 당한 윤정기씨 사태로 출판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터라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출판노조협의회가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출판노동자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35.3%가 20대이고 30대가 58.3%를 차지해 20~30대 젊은층이 출판노동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은 2천만~3천만원이 45.5%, 3천만~4천만원이 32.7%였으며, 2천만원 미만도 8.8%인 것으로 나왔다. 전체 응답자의 94.8%가 정규직이라 답했고 나머지 5.2%가 비정규직이었다.
설문에 응답한 501명 가운데 84명(16.8%)이 자신의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는 2% 정도로 추정되는 전체 출판노동자의 노조 가입 비율과 크게 차이가 난다. 실태조사를 주도한 이들도 “노조가 있는 회사의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설문에 응해, 표본으로 삼기에는 부적절할 정도로 양호한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회사 직원이 5인 미만이라 답한 이가 11.0%였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교부한다는 응답이 65.7%였는데, 양쪽 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수치라는 것이다.
실태조사는 객관식 문항과 함께 부당해고, 임금체불, 임신·출판·육아 관련 고용 불안 및 불이익 사례 등에 관한 주관식 답변도 수집했으며 집담회 현장에서도 참가자들이 직간접 경험을 소개했다. “30명 정도 규모 사업장임에도 사장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결정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출산·육아 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는 해도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 제대로 쓰기 어렵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좌절감과 모멸감을 느끼는 일이 있어도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 때문이다” 같은 현장의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응답자 중 경력 5년 이하가 52.8%인 반면 10년 이상은 9.0%, 16년 이상은 2.6%로 출판노동자들의 고용 지속성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불안 요인을 묻는 질문에는
231명(46.1%)이 ‘출판 시장의 전반적 위기’라 답했고 113명(22.6%)은 ‘사용자의 경영 능력’을 꼽았다. 집담회에 참석한 김민수 청년유니온 대표는 “출판산업의 위기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보편적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출판계만이 아닌 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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