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아버지 한승원의 명성 뛰어넘어
아버지나 어머니의 뒤를 이어 문인이나 예술가로 이름을 올린 경우가 한국에서는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대를 이어 문화예술인이 된 경우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다. 1970~90년대 부모 뒤를 이어 문학가가 된 작가들은 대개 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인 시인 황동규,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아들 시인 마종기, 시인 신동엽의 아들 시인 신좌섭, 소설가 김광주의 대를 이은 소설가 김훈, 여성 소설가 박화성의 아들인 소설가 천승세 등이 그렇다. 소설가 조정래는 부친 조종현 시조시인을 포함한 가족문학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시인 조종현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이 발 벗고 나서 두원면 운대리에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문학관’을 짓고 있는데, 생존 작가의 가족문학관으로선 국내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시인 김초혜는 조정래의 부인이다.
최근에는 문학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은 딸들이 문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의 딸인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는 아버지가 쓴 소설 《남한산성》을 영화로 만든 제작자로 눈길을 끌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딸은 연극배우 황은후다. 작고한 소설가 이윤기의 딸 이다희는 번역가로도 유명했던 아버지의 업(業)을 잇고 있다. 최근 문학상 2관왕이 된 작가 손원평은 손학규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의 딸이다. 소설가 백수린은 전 창비 주간이었던 백영서 연세대 교수의 딸이다. 시인이자 소설가·화가 이제하의 딸인 소설가 윤이형, 시인 최하림의 딸 최승민도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탄 소설가 한강은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의 대를 이어 작가가 된 후 아버지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한승원의 아들 한동림도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한편, 문인이었던 부모를 기억하고 지키려는 2세 문인들도 있어 눈길을 끈다. 소설가 박완서의 딸들은 박완서가 1977년부터 1990년까지 출간한 산문집을 정리해 개정판을 펴냈다. 교정 작업에 맏딸인 수필가 호원숙을 비롯해 원순·원경·원균씨까지 네 자매가 참여했다. 지금까지는 가족 대표 격인 호원숙이 어머니의 소설 전집 출간 작업을 주도했지만, 이번엔 분량이 방대해 함께 교정을 봤다. 네 자매의 전공은 각각 국어교육·수학·의학·미술 등 다양하다. 호원숙은 “자매가 함께 어머니의 문학을 지키고 있다”며 “각자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과 지혜가 있는데 이를 함께 나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호원숙은 지난해 어머니와의 여행기를 모아 수필집 《그리운 곳이 생겼다》를 펴냈다. 2004년 어머니와 함께 방문한 네팔과 유럽을 시작으로 어머니를 잃고 다녀온 발트해 등을 포함해 지난 10여 년의 여행기록을 이 책에 엮어냈다.
문인 부모 업적 기리는 2세들의 노력도 눈길
시인 장만영의 아들 장석훈씨는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시 《달, 포도, 잎사귀》로 유명한 아버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자비로 아버지 전집 4권을 출간했다. 그는 신문사 교열기자로 일한 경험을 살려 홀로 아버지의 자료를 정리하고 교정·편집까지 마쳐 책을 만들었다.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아들 강현구씨도 자영업으로 바쁜 와중에 아버지 홈페이지를 만들고 평전과 논문집 발간 등에 힘써왔다. 《꼬마눈사람》 《금강산》 같은 우리 귀에 익숙한 동요·동시를 만든 아버지의 업적을 더 오래 기리기 위해서다.
시인 손호연의 딸인 시인 이승신은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의 예술공간 ‘더 소호’ 한편에 모친의 유품과 신문기사 등을 모아놓은 작은 기념관을 만들고, 손호연단가연구소의 대표를 맡을 정도로 모친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31자로 구성되는 일본의 전통시 와카(和歌) 시인이었던 손호연 시인이 남긴 뛰어난 시편은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일본 국왕이 손 시인을 초청했고, 일본 아오모리(靑森)에는 노래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출처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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