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은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했다. 1982년 발표한 '창백한 언덕 풍경'이라는 그의 첫 소설은 전쟁과 원폭을 겪은 일본의 황량한 풍경을 절제된 감성으로 그렸다. 그의 소설은 섬세하고 유려하며 위대한 감정적 힘을 가졌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은 단연 '남아 있는 나날'이 아닐까? 이 소설은 1930년대 영국 귀족과 하인의 삶을 통해 영국의 격동기를 묘사하였으며, 1994년 안서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이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후 이 작품을 통해 맨부커상을 받고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다.
맨부커상은 최근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익숙하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영문명 '더 베지터리언(The Vegetarian)'가 우리나라 최초로 맨부커 인터네셔널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단편 '채식주의자'는 여주인공 영혜가 채식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남편, 형부, 언니의 시점에서 묘사했다. 한강은 맨부커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학작품 속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배어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며 생각을 공유한다. 때로 뜻하지 않은 일로 얼굴을 붉히며 다투기도 하고, 감정이 상해 심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책은 우리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여성시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때때로 수기 공모전을 한다. 한 번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박완서 작가의 심사평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나의 작은 슬픔을 주위에 더 큰 슬픔을 보고 이겨내는 느낌이었다." 이렇듯 다른 사람의 녹록지 않은 고된 삶이 어떤 사람에게는 글을 통해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슬픔을 이겨내게도 한다.
노르웨이 일부 도서관에서는 장애인이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사람을 위해 독서 옴부즈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독서 옴부즈맨은 정기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책을 읽어 주는 프로그램인데, 어느 청년이 '자기 개를 잃어버린 소년에 대한 책'을 몇 번이나 읽고 싶다고 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그는 최근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비탄에 빠진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는 책을 통해서도 사람의 상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독서치료'라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 '순례자'는 작가가 남프랑스부터 북스페인까지 700km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겪은 체험과 경이로운 깨달음을 담고 있다. 순례길을 걷던 주인공이 절벽에 오르는 장면이 있다. 절벽은 가파르고 그 길이 아니어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기어코 아슬아슬 오른다. 주인공은 절벽을 오르기 전에는 두려움에 휩싸여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깨달음을 얻었다. 두렵지만 결국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듯 오직 해봐야 아는 것, 그리고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 수 있는 것, 인생은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책에서 다양한 인생을 경험할 수 있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젊은 시절의 나는 지금의 청춘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지혜의 길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생은 기계로 찍어내듯 똑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삶이든 소중하고 최소한 모든 사람은 그의 인생에서 주인공이다.
이름 있는 상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책속에는 열심히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겪은 작은 슬픔을 날려 보낼 만큼 더 큰 슬픔이 있으며, 역경을 이겨낸 노력이 있다. 좋은 책은 잘 우러난 곰탕처럼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경험을 선물한다. 이 겨울 누구나 책에서 우러난 곰탕 한 그릇을 먹고 힘을 낼 수 있었으면 한다. 도서관은 위로를 주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곳이다.
출처 http://www.incheonilb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78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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