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자유’ 없는 헌법/ 임석규
사상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라는 데엔 정파를 떠나 이견이 없다. 표현의 자유도 사상의 자유가 전제돼야 한다. 마음껏 생각할 수 있어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사상의 자유가 없으면 언론·출판의 자유도 의미가 반감된다. 자신의 신념을 결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생각을 펼치고 퍼트릴 수 있는 자유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 헌법의 전범인 인권선언과 유럽연합(EU) 기본권 헌장은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를 명시했다. 일본 헌법에도 ‘사상 및 양심의 자유’가 나온다. 독일 헌법은 ‘세계관적 신조의 자유’란 표현을 썼다. 프랑스는 헌법 1조가 “프랑스는 모든 신념을 존중한다”고 돼 있다. 스위스 헌법은 ‘철학적 신념 선택의 자유’를, 핀란드 헌법은 ‘본인의 신념을 표현할 권리’를 규정했다.
우리 헌법엔 양심과 종교의 자유는 있어도 ‘사상의 자유’는 없다. 이 나라에서 사상이란 단어에 배어 있는 피의 냄새 때문일까. 학자들도 사상의 자유 없는 헌법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사상의 자유는 양심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해석하기에 바빴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최근 사상의 자유를 양심의 자유와 구분되는 기본권으로 명시할 것을 권고했다. 헌법재판소도 양심의 자유를 사상의 자유와 결이 다른 개념으로 봤다. 장벽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다. 국회 개헌특위 이철우 의원은 “우리나라는 사상 때문에 많이 싸웠는데 이걸 넣어서 굳이 국민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헌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사상의 자유’를 꼽은 미국의 홈스 대법관은 “우리와 의견을 같이하는 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을 위한 자유를 뜻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사상의 자유가 없는 ‘유일사상’ 체제다. ‘사상의 자유’가 명문화된 헌법은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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