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애니메이션으로도 문학작품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押井守·66) 감독은 26일 저녁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한국 팬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재패니메이션 기획전' 참석차 방한한 그는 자신의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문학적인 작품으로 2008년작 '스카이 크롤러'를 꼽았다.
전쟁을 기업이 수행하는 쇼로 만들어 역설적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근미래. 유럽 전선 기지에 배치된 두 전투기 조종사의 고뇌를 통해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성장이 멈춰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조종사들의 서글픈 눈빛에는 정체성 위기를 겪는 청년 세대의 모습이 집약돼 있다. 전투기의 임무수행이 볼거리로 등장하지만,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는 정적이고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는 전투기를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에서 공중전 장면은 필요가 없어요. 없는 편이 나았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리얼한 캐릭터나 치밀하게 묘사된 배경이 아닌, 텅 빈 공간에 시간만 천천히 흘러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시간을 잃어버린 존재들이 정체된 시간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이야기 말이죠."
이 자리에는 오시이 마모루의 열혈 팬을 자처하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도 함께했다. 그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은 배경의 쓸쓸함과 감정이 거의 없어 보이는 캐릭터가 주는 느낌이 강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두 사람은 모두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자유롭게 오가는 작품활동으로 이름난 감독이다. 연상호 감독은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부산행'으로 명성을 얻기 이전에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사회성 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오시이 감독은 "애니와 실사영화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태프의 열정이 반드시 스크린에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틀에 박히지 않은 시도가 영화를 살린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애니와 실사영화 모두 '발명'이 필요해요. 하나라도 좋으니까 새로운 표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많은 돈을 쓴다고 해서 실현되는 문제가 아니죠."
오시이 감독은 '부산행'을 이런 '발명'의 사례로 꼽았다. 그는 "달리는 기차 안을 무대로 좀비 무리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는 일종의 발명이라고 생각한다"며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고 평했다.
29일까지 열리는 21세기 재패니메이션 기획전에서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전'이라는 이름으로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등 대표작 8편이 상영된다.
이날 아트나인 야외 테라스에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오시이 감독을 보기 위해 200여 명의 팬이 모였다. 환갑을 넘긴 노장 애니메이션 감독은 대부분 20∼30대인 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감독이라는 사람을 만나보면 그냥 평범한 아저씨죠. 저도 어제 불고기 먹고 술도 많이 마셨는걸요. 일반적인 아저씨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를 만들 때만큼은 다른 시간을 산다는 거죠. 제가 만든 작품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하면 조금 무서워요. 그렇지만 다른 인생이나 다른 시간을 살아본 듯한 느낌이나 약간의 힘을 받았다면 감독 입장에서 정말 기쁜 일입니다."
dada@yna.co.kr
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26/0200000000AKR20171126057100005.HTML
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26/0200000000AKR20171126057100005.HTML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