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다차원적 혁신’ 심포지엄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분배, 연대, 공존, 통합, 상생과 같은 사회적 가치가 제대로 구현돼야 한다는 게 상식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사회적 가치를 제도로 수용하려면 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새 정부 들어 사회적 경제가 ‘대통령 관심 사안’으로 부상하고, 사회적 경제 기본법과 사회적 가치 실현법 등 사회적 경제 3법 입법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사회적 경제 주체들 사이에선 이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 논쟁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가 최근 마련됐다. 한국사회학회와 서울대 사회공헌교수협의회가 9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주최한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다차원적 혁신’ 심포지엄에선 사회적 가치의 측정과 제도화 방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경제 민간 주체 다수는, 사회적 가치 측정과 제도화가 정부 주도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공통된 의견을 내놨다. 이종수 한국사회투자 이사장은 “사회의 모든 조직이 크든 작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의 문제는 정부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주체들의 문제”라며 “사회적 가치의 측정과 평가를 표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측정과 평가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영국도 10여년 전부터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을 연구해왔지만, 아직 ‘이게 이거다’라고 할 만한 표준화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며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적 경제 주체들의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바라보고 장기 로드맵을 세워 단계적으로 제도화를 추진하되, ‘지원’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셜벤처 인큐베이터인 소풍의 한상엽 대표 파트너도 “사회적 가치 측정은 민간이 제안·관리·평가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민간의 자율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10년 동안 소셜벤처에 투자해온 소풍의 경험에 바탕해 “우리만 해도 투자한 회사의 사회적 가치 추적을 잘 못한다. 매출이 늘지 않으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것이냐”며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려면 사회적 역량이 축적돼야 하며, 결과로서의 사회적 가치가 아닌, 과정과 지배구조, 조직으로서의 사회적 가치가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공공부문에선 “사회 혁신이나 사회적 가치의 고속도로를 중앙정부가 깔지 않는 한, 이를 제도화하거나 측정하는 일은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다”며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 이들과 시각차를 드러냈다. 전효관 서울시 서울혁신기획관은 “민관이 공동 가치 생산자로서 협력할 모델을 만들려면 중앙정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사회적 경제의) ‘작은 실험’을 할 게 아니라, 그 실험들이 확산되고 파급력이 높아질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를 생산해낼 행정 구조를 중앙정부가 만들”어내지 못하면 사회적 가치 논의 자체가 탁상공론에 머물 수 있다는 얘기다.
정현천 에스케이(SK) 사회공헌위원회 전무는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하나의 측정 기준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지금은 화폐가치에 기반한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를 통해 기업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시작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사회 문제를 해결해 생겨난 사회적 편익 규모를 돈으로 환산해 공개하면, 민간의 사회적 투자를 늘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덧붙였다. 실제로 에스케이는 사회적 기업이 생산한 사회적 가치 가운데 시장에서 보상받지 못한 부분을 평가해 현금을 지급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 제도를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정 전무는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는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 가치와 배타적이라서가 아니다. 공유지, 시장화되지 않은 영역에 관심과 수요가 커지니 기업으로선 당연히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기회의 영역’이기 때문이며, 기업에 있어 혁신은 곧 ‘시장화’”라는 ‘솔직한’ 발언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사회적 가치의 목표와 의미 등에 사회 구성원들이 폭넓게 공감하고, 공공부문의 정책 목표 자체가 사회적 가치의 확산으로 재설계되는 게 중요하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양동수 사회적 경제 법센터 더함 변호사는 “공무원들의 고민은 사회적 가치를 개별 사례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거냐다. 정책 생산부터 수행,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사회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부의 혁신을 강조했다. 박명규 한국사회학회장도 “사회적 가치법은 그 내용을 다양하게 열거하고 있지만, 사실 사회적 가치라는 게 그렇게 쉽게 열거될 수 없다. 입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선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 사례로 소개됐다. 행정조직이 시민과 의사소통해 정책을 추진하면서 협치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한편, 사업 자체의 목표도 탈원전과 시민사회 역량 강화라는 또 다른 사회적 가치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사회적 가치로서 협치와 참여가 정책 성과로 평가될 수 있는 틀이 마련돼야 한다. 협치의 주체를 발굴·육성할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시민과 행정자원을 공유할 제도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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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0227.html#csidxf7850cbc34b1db6a9475e29391290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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