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6일 목요일

그러니까 기적은/정봉남

도서관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마당의 회랑 너머엔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기적은 시작된다’는 표지석이 있는 소나무는 개관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10주년 기념으로 심은 금목서 아래엔 ‘나무를 적시는 이슬처럼’이라는 돌이 놓여 있다. 가끔씩 이 뜻깊은 나무 그늘에 기대어 도서관을 만들고 가꾸어 온 사람들을 생각한다.

도서관이 열네 살 생일을 맞았다. 돌아보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꿈을 차곡차곡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으니 모두들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아이들은 입구에 세워 둔 안내판에 또박또박 축하 쪽지를 남겼고 자원봉사자들은 밤새우며 준비한 책 공연을 멋지게 보여 주었다. 오래전 이 터에서 기쁨을 누렸던 분들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일상의 평화가 넘치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꽃 같은 아이들과 더불어 도서관은 나이테를 늘려간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어린이도서관다운 꿈을 잃지 않고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 순정한 마음으로 작은 일에도 정성을 들일 것이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원하면서 어떻게 도울까를 고민할 것이다. 여기 오는 누구라도 반갑게 맞아 주고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도서관이 누군가에게 무엇일 수 있다면 바로 이런 것들이고 싶다.

도서관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이 많을수록 신경 쓰는 것은 여기 오는 누구라도 소외되지 않게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마시는 물이나 화장실, 청소, 사람들의 동선, 휴식 공간, 안전… 그리고 무엇보다 책 읽는 사람과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주말이면 이용자가 두 배로 넘치는데 매번 신나고 즐겁게 흐뭇하고 보람차게 큰일들을 해낸다. 그 힘은 한마음으로 움직여 주는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다.

날마다 풀 베고 대나무 주변을 깔끔하게 가꿔 주는 동네 어르신, 웃으면서 도서관 곳곳을 반짝이게 닦아 주는 엄마들, 도서관 홍보물을 척척 만들어 내는 재주꾼들, 마당과 행사장에 꽃으로 우리를 기분 좋게 해 주는 정원가드너 선생님, 감동의 공연으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나라지킴이들, 하루라도 자기가 안 오면 도서관 무너지는 줄 아는 아이의 입구 신발 정리까지 척척 손발이 맞아 움직일 때 비로소 도서관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러간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러니까 기적은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으키는 것’이다. 함께라는 것,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것, 서로를 의지하고 고마워하는 것,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했느냐를 경험하는 시간을 통과하며 시민들은 성장해 가고 있다. 며칠 전 흑두루미가 이어 준 자매도시 일본 이즈미시 시장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즐길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가 일본과는 다른 도서관의 운영 등에 대하여 대단히 감명을 받았습니다.” 잊지 않고 오가는 편지 속에 우정이 담겼다. 또 국제 교류 행사로 진행한 어린이문화포럼 이후 일본 신문에는 ‘한국의 기적의도서관’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기적의도서관에서는 어린이에게 독서의 기회를 넓힐 뿐만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의 1970∼80년대의 기세를 방불케 하는 에너지가 부럽게 느껴졌다”는 내용이었다.

도서관의 저력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매력적인 공간을 가꾸는 사람들의 열정과 뚝심과 변화에 있다. 도서관 곳곳에 스며 있는 묵묵한 시민들의 흔적이 눈물과 땀의 결정체라는 것을 안다. 탐스러웠던 시간들, 물방울 같은 사랑이 있었음을 기억하겠다.

자원봉사 활동은 고생과 보람이 한 몸이다. “이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우리가”라고 말할 때의 자부심에 기대어 도서관의 시설, 장서, 공간, 문화, 프로그램, 운영 체계, 협력, 서비스, 관계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간다. 지속 가능한 사회의 모델로 시간의 축적과 시민의 역량, 균등한 접근성에 대해 고민한다. 공공 서비스 현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은 오래오래 우리 곁에 존재할 것이다.

어린이의 삶을 가꾸는 일을 확산하고 강화시키기 위한 열정이야말로 도서관 건립의 정신을 진정으로 기억하는 것이며 책임과 연대의 사건으로 유의미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책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힘써 사랑하고 지켜 가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가. 생각이 달라도 같이 함께 갈 수 있는가를 끌어안고서.

어린이와 도서관을 사랑하는 당신이 소중하다. 삶의 흔적들이 뚝뚝 떨어진 자리에 서서 온기를 더듬어 본다. 그리워하고 안아 주고 눈물 글썽이며 만나는 사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힘 얻고, 보이지 않아도 소중한 것들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 문을 닫으며 뒤돌아보면 거기 여운처럼 사람의 향기 머물러 있다.


출처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510498800617232078&search=%C1%A4%BA%C0%B3%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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