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지난달 기사에 따르면 이 출판사가 지금까지 발행한 책의 3분의 2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공동 설립자 알리 알바자즈와 린다 개빈이 밝힌 목표는 “(자사가) 출간한 책의 99.99%를 베스트셀러로 만들겠다”는 것. 이 놀라운 자신감의 근원은 ‘인공지능(AI)’이다. 책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편집자가 아닌 인공지능이 판단하는 것이다. 인키트의 성공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면 출판의 미래는 어떻게 바뀔까.
1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학당에서 열린 출판전문교육업체 서울북인스티튜트(SBI) 주최 콘퍼런스에서 김학원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대표가 소개한 인키트의 사례는 인공지능이 출판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인키트의 전신은 2013년 만들어진 창작자 커뮤니티다. 자유롭게 글을 올리고 서로의 글에 평가나 응원을 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온라인 커뮤니티가 출판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프로그램 개발자 출신의 알바자즈와 웹디자이너로 일했던 개빈은 인키트에 글을 올리던 작가들이다. 이들은 한 인터뷰에서 2011년 영국 소설가 에리카 제임스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e북으로 자비 출판해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등극시킨 과정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4만여 명의 작가가 글 올려
독자가 무료 구독 후 별점
AI가 구독 시간·패턴 등 분석
독자의 수정사항 보완해 출판
출판사-독자 새로운 관계 구축
인키트에 올라오는 글들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처럼 대부분 장르소설이다. 네이버나 카카오페이지 등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웹소설과 비슷하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플랫폼의 역할만 한다면 인키트는 플랫폼에 AI를 결합, 출판까지 겸한다. 인키트가 책을 출판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홈페이지에 있는 글쓰기 플랫폼을 통해 작가들의 글을 받는다. 현재 등록된 작가는 4만여 명, 올라온 글은 15만개에 달한다. 독자는 홈페이지에 접속해 로맨스, 공포, 과학, 범죄, 판타지 중 좋아하는 장르를 고르고, 다시 단편, 장편, 시 중에 선택한 뒤 구독자로 등록한다. 글을 보는 건 무료지만 독서 시간에 제한이 있다. 다 읽고 나면 글의 구성이나 문체에 대해 별점을 매기고, 책으로 출간되면 구입할 용의가 있는지, 어떤 부분이 수정되면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다.
취합된 자료를 바탕으로 출판사가 독자적으로 고안한 알고리즘이 책의 베스트셀러 가능성을 타진한다. 인키트에 따르면 독자 평가 외에도 얼마나 읽었는지, 읽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지, 몇 번이나 재접속해 읽었는지 등 독서 패턴도 분석 자료로 사용된다. 흥행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출판사는 저자에게 연락해 출간을 제안하고 독자들의 수정사항을 전달한다. 책이 나오면 저자에게 돌아가는 인세는 e북의 경우 25%, 종이책은 51%나 된다. 지난해 7월 나온 인키트의 첫 책 ‘카탈리스트 문’은 원래 영화 ‘스타워즈’의 팬픽션(영화, 드라마 팬들이 만든 2차 창작물)이었던 것을 저자가 소설로 각색해 출판한 것이다.
인키트는 “편집자 없는 출판”을 표방한다. 콘텐츠를 선별하고 저자를 확보하고 내용을 조율하는, 지금까지 편집자가 해왔던 모든 일을 독자와 AI가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앤 롤링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가 출판사를 만나기 전 13번이나 거절당한 일화를 소개하며 “해리 포터의 가능성을 알아본 유일한 편집자는 롤링의 8세 딸뿐”이었음을 강조한다. 이들은 또한 “지금까지 16명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배출했다”며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소개한다.
인키트의 성공은 장르문학에 치중됐다는 점, 영미권 독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국내 출판계에 일방적으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전자출판의 확대에 따라 누구나 쉽게 책을 낼 수 있게 되면서 오로지 독자의 힘으로 아마추어 작가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전 세계 공통된 현상이다. 김학원 대표는 인키트를 “정보통신 시대의 한 상징이지, 미래 출판의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출판사들이 독자와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메시지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날 콘퍼런스에 강연자로 참가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과거엔 책을 갖다 놓으면 독자가 왔지만 지금은 책이 아니라 독자가 있는 곳에서 출판시장이 형성된다”며 “제작으로서의 출판보다는 독자와의 관계를 만드는 ‘연결’로서의 출판이 중요한 시대”라고 지적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출처 http://www.hankookilbo.com/v/ebfbcdbf9a28457a9ef06c776bf5366f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