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1926-1984)는 우리에게 권력 이론가이자 현재의 역사가로 알려져 있다. 파놉티콘으로 대표되는 그의 규율 권력 이론은 이제 고등학생도 알아야 하는 상식이 되었다. 콜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이 발간, 번역되기 시작한 2000년대 즈음부터는 미시권력의 이론가와는 또 다른 면모로 ‘푸코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대한 푸코의 새로운 분석은 우리 시대의 예언이 되었고, 그의 통치성은 서구사회과학계에서 가장 주도적인 연구 프로그램이 됐다.
이런 푸코에게 ‘철학’은 무엇일까? 그는 전후 1960년대 구조주의 대두 이전까지 프랑스를 지배하던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데리다나 들뢰즈 같은 다른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자들과 달리, 철학 자체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이자 본격적인 최초의 저서인 『광기의 역사』부터, 강의록을 제외한 그의 마지막 저작 『성의 역사』가 예증하듯, 그는 철학보다는 역사의 편에 있었다. 더구나 오늘날 푸코 사상은 철학보다는 정치학이나 사회학, 역사학에서 푸코 자신의 바람대로 작업 도구로서 생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푸코를 철학자로 기억한다. 그의 역사적 작업이 매력을 갖는 이유도 그것이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역사를 택한 이유는 “아무 때나 아무 것이나 볼 수는 없다”는 우리의 인식론적 한계를 알게 해주는 동시에 또한 이 한계의 우연성을 보여주어 우리가 다르게 될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해주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면서 제한하는 우리 한계에 대한 인식, 곧 칸트적 의미의 ‘비판’을 빼놓고, 또한 이 한계를 권력의지들 간의 놀이의 결과로 보는 니체적 의미의 ‘해체’를 빼놓고, 그의 역사적 작업을 과연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지난달 28일 연세대 외솔관에서 열린 한국프랑스철학회(회장 황수영, 홍익대) 가을학술대회는 푸코 사상의 이런 철학적 측면을 한 데 모아보고, 앞으로 푸코 사상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촉매 역할을 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연인원 200명에 가까운 관중이 빼곡히 들어찬 강당에서, 박기순 충북대 교수(철학과)와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의 사회 하에, 『광기의 역사』(1961)부터 『임상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976-1984)에 이르기까지 푸코 주요 저작의 출판 순서를 따라, 데카르트, 캉길렘, 칸트, 니체,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또는 알튀세르와의 관계가 다루어졌다.
『광기의 역사』 안의 「성찰」 해석을 둘러싼 데리다-푸코 논쟁은 故 김현 교수를 통해 푸코가 국내에 처음 알려진 계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번역본이 없는 탓인지 그 이래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이 논쟁은 몇 번 소개만 되었을 뿐 비판적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푸코-데리다 광기 논쟁을 통해 본 데카르트라는 사건」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발표에서 필자는 한편으로 데리다의 「성찰」 해석이 더 타당할 뿐만 아니라, 이성, 언어, 역사의 가능 조건에 대한 데리다의 문제제기에 대해 푸코가 제대로 답변하지 않고 있다고 봤다. 그래서 다른 한편, 「말과 사물」 및 「주체의 해석학」 등 푸코의 다른 글을 바탕으로, 「성찰」에 대한 데리다의 공간적 건축술적 해석에, 푸코의 시간적 ‘사건적’ 의미를 대비시켜, 푸코의 답변을 재구성해봤다.
푸코와 데리다의 논쟁이 유례없이 격렬했다면, 푸코와 캉길렘의 논쟁은 보다 부드럽고 우호적이고 협력적이다. 캉길렘은 사실 푸코에게 체험과 의미 중심의 주체 철학을 벗어나 인식론적 변동의 기저에 있는 역사적 조건을 탐구하게 한 푸코의 스승이었다. 둘의 관계를 흔히 ‘영향’의 관점에서 보아왔다면, 주재형 서울대 강사(서양근대철학)는 대개는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논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정상과 병리」에서 캉길렘은 병을 그것을 의식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주관적 주체적 생명체로서의 인간의 경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실존주의 색채를 지닌 이 의철학에 맞서, 「임상의 탄생」에서 푸코는 신체의 공간화나 개체, 자의식적 인간 개념의 등장 등 역사적 선험이 병의 인지에 대한 조건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후 캉길렘은 오류(일탈)를 통해 개체화 및 주체화가 이뤄진다고 주장하면서 유전학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생명철학의 길로 푸코를 초대한다.
푸코와 철학자들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칸트와 니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푸코의 평생 작업이 칸트의 텍스트들을 다시 쓰는 작업이었다고 할 정도로 칸트는 푸코 사상의 전 궤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허경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원(서양근대철학)은 푸코 박사학위 부논문이었던 칸트의 「실용적 인간학」에 붙인 서설과 「말과 사물」,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푸코에게 칸트가 무엇이었는지를 연대기순으로 밝히고 있다. 칸트가 푸코에게 갖는 의미는 우리의 ‘한계’에 대한 작업, 그리고 현재의 차이에 주목하는 현대성의 태도라 할 수 있을 텐데, 발표자는 이 모든 것이 니체의 영향 하에 이뤄진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푸코에게 니체는 무엇이었는가? 칸트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대결과 변형의 대상이기도 했던 칸트와 달리, 니체는 푸코에게 철학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도승연 광운대 교수(교양학부)에 따르면, 초기 푸코에게 니체가 비이성, 광기, 디오니소스의 작가이자 문학가였다면, 이후 푸코는 니체의 ‘지식의 의지’ 개념을 활용하여 지식 형성에서 힘들의 대결을 분석하고 이것을 다시 권력-지식(pouvoir-savoir) 개념으로 대체한다. 이처럼 단지 힘들의 대결이 아니라 제도와 장치라는 공간적 차원에서 주체의 생산을 조명하면서 푸코는 니체 권력의지의 자연주의적 뉘앙스를 제거하고 니체의 계보학을 심화한다.
푸코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는 앞의 관계들보다 더 은밀하다. 50년대 푸코가 벗어나려 했던 철학의 주류는 현상학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마르크스의도 역시 있었다. 또한 현상학이 그럼에도 하이데거를 통해 푸코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 역시 다른 매개를 통해 푸코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철학)는 「마르크스와 알튀세르 사이의 푸코」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알튀세르를 매개로 푸코와 마르크스와의 관계를 밝힌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 의해 개인이 상상적 관계 속에 호명되고 이를 상연함으로써 ‘재생산’이 가능함을 보여준다면, 푸코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폭력적 국가장치의 구분에 함축돼 있는 ‘억압’으로서의 권력 개념을 비판하고, 장치를 통한 ‘생산’의 관점에서 권력 이론을 전개한다. 진태원 교수는 푸코의 규율권력 개념이 마르크스의 「자본」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권력 이론에서는 상상적 차원 및 권력 관계의 비대칭성이 무시됨을 지적한다.
‘푸코와 철학자’라는 주제는 특정 주제를 다루는 것보다 까다로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모두 내실 있는 발표였다는 것이 청중들의 중론이다. 예상을 넘는 많은 청중들만으로도 자리는 뜨거웠지만, 전공 지식에 기초한 체계적이고 예리한 질문부터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문제까지 청중들의 참여 역시 뜨거웠다. 반면 전체 토론 시간에 푸코 연구가들 상호 간에 질문과 비판을 주고받지 못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끝으로, 박기순, 김상환 교수가 사회 겸 논평자의 역할을 하면서 수행한 격조 높은 진행은 학술대회가 대중성과 전문성을 모두 갖추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들뢰즈 사망 2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이래 한국프랑스철학회는 한국 현대철학 연구자들의 역량을 결집함과 동시에, 현대철학에 대한 지적 대중의 앎의 욕구에 부응하고자 노력해왔다. 마침 프랑스 68혁명 50주년이 되는 오는 2018년 5월에는 사르트르부터 들뢰즈까지 주요 프랑스 철학자들이 이 사건과 어떤 역사적 사상적 관계를 맺었는지, 혁명과 사건, 주체의 관계를 살펴보는 학술대회를 이틀에 걸쳐 개최할 예정이다. 철학과 정치, 역사가 한데 어우러진 뜻 깊은 지적 향연이 펼쳐지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김은주 한양대 학술연구교수·철학
프랑스리옹고등사범학교에서박사를했다. 대표논문으로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체의 복합성과 코나투스」를, 저서로 『생각하는 나의 발견, 방법서설』 등이 있다. 서양근대철학회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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