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한국일보 교육희망 프로젝트 2-4, 학업 중단 학생 한 해 평균 6만여 명, 고교 자퇴생 33,553명(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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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6일, 한국일보 이대혁 기자


"특목고·자사고 못 갈 부진아…우등생들 기회 뺏지마"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 찍혀
교내 글짓기대회서 상 뺏기고
"전학 가라" 모욕적인 차별까지
"부진 학생들 챙길 겨를 없다"
교사들은 실적 압박에 볼멘소리
7면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자녀를 특목고, 자사고, 국제중 등 특별한 선발과정을 거치는 학교에 보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은 우수 학생들이 몰려 있는 학교에서 ‘동료 효과’를 누리게 하려는 이유가 크다. 반면 학습 부진 학생들은 어울려서는 안 되는 ‘격리 대상’으로 취급 받는 게 현실이다. 학습부진 학생들은 우수 학생의 내신 성적을 바닥에서 ‘깔아주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거나,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 아이’라는 차별 속에서 학교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 “공부 못하면 나가”…낙오자 취급받는 학생들
지난해 일반고를 다니다 대안학교로 전학한 A양에게 지금까지의 중ㆍ고교 시절은 악몽이었다. 공부엔 관심이 없었고, 입시를 위한 교육과정에 적응하지 못해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졸업장이라도 받자는 생각으로 학교엔 나갔지만 모든 게 공부 잘하는 학생들 위주인 학교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A양이 교내 글쓰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 교사는 “다른 (공부 잘하는) 애의 기회를 뺏지 말라”며 상을 주지 않았다. 대학 갈 생각이 없어 특성화고 진학을 원했지만 교사의 무관심 때문에 이마저도 무산됐다. A양은 “담임교사에겐 특목고, 자사고에 갈 애들이 1순위였기 때문에 날 포함해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은 관심 밖이었다”며 “바쁘다는 이유로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 결국 특성화고 원서접수 기간을 넘겨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양은 “똑같이 수업시간에 졸아도 교사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공부하느라 얼마나 피곤하냐’고 하는 반면, 나에겐 ‘수업 받을 자격이 없다. 나가라’고 했다”며 낙오자 취급을 받던 중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일반고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변함 없었다. 교사들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A양에게 “전학 가라”거나 “네까짓 게 무슨 대학이냐. 취업해서 학교 취업률이나 올리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A양은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
● 전인교육은 말뿐… 차별하는 교실
A양처럼 대안학교라도 가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나라에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은 한해 평균 6만여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로 학교를 떠나는 고교생이 10명 중 3명 꼴이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학업을 중단한 초ㆍ중ㆍ고교 학생은 2009년 6만1,910명, 2010년 6만592명, 2011년 6만3,501명, 2012년 6만8,188명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성적부진 등 학업으로 인한 자퇴자가 2012년 9,887명에 달했다. 전체 고교 자퇴생 3만3,553명의 29.5%에 해당한다.
문제는 특목고, 자사고 등 고교 입시가 대학 입시 못지 않게 치열해지면서 학습 부진으로 인한 열등감, 좌절감, 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점이다. 서울 강남의 한 사립중학교에 다니는 B(14)군은 학교를 그만두고 다음 학기 미국으로 어머니와 함께 떠날 예정이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실제는 성적이 전부인 학교 교육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차별 받은 이유가 크다. B군은 “모든 학생들이 매일 밤 10시까지 학원을 다니고, 주말엔 과외를 받으며 웬만한 고3 못지 않게 공부만 죽어라 하지만, 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몇 명만 데리고 수업을 한다”며 “나같이 성적이 바닥인 학생들은 가차없이 버려지는 수업”이라고 말했다.
B군의 학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부터 앞자리에 앉도록 자리를 성적순으로 배정한다. 교실 뒤 학생들은 등교한 후부터 집에 갈 때까지 엎드려 자도 교사들은 깨우지 않는다. B군은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애들은 외고, 과학고, 자사고 보내려고 시험기간에 따로 불러 프린트 나눠주고 공부시키지만 뒷자리 애들은 어차피 공부 안 할 아이들이라며 학교를 빠져도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학교 다니기가 싫다”고 했다.
● 진학 실적 때문에 압박받는 교사들
성적이 낮은 아이들일수록 교사가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더 좋은 교습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사들이 부진 학생에게 열정을 쏟을 유인이 전혀 없다. 특목고, 자사고에 많은 학생을 보낼수록, 명문대학 진학률이 높을수록 좋은 학교로 꼽히는 현실에서 교사들이 우등생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입시 교육 외의 활동에 공을 들이는 경우엔 당장 학부모들의 항의에 시달리기도 한다. 중학교 수학교사 C(36)씨는 “성적 우수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 때문에 학습 부진 학생들을 챙길 겨를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학부모들도 면학분위기를 조성해 달라고 끊임 없이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 공교육은 1등부터 꼴찌까지 모두를 아울러야 한다는 책무를 저버리고 있다. 학창시절 성적이 낮아도 사회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며 건전한 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데에는 무심하기 짝이 없다. 이화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선임연구위원은 “국가가 정한 최소 성취기준을 달성하도록 하는 게 국가의 책무이고, 좋은 대학에 몇 명이나 보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라며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성인이 됐을 때 안정적인 사회 구성도 위기를 맞을 수 있는 만큼 사회통합 측면에서 공교육이 이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공부를 못 가르치는 교사보다 싫어하게 만드는 교사가 더 나쁜 교사”라며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목표의식과 성취감을 주면서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도록 교수학습방법 등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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