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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7일, 한국일보, 권영은 기자 보도
국영수 점수만 좋으면 우등생? 학력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학기 초마다 한 달간 평가 후 학습 보충
서울 유현초등학교에서는 매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한 달 내내 학생들의 수준을 진단하는 활동을 한다. 문제풀이 시험을 통해 점수가 낮은 학생들을 학습부진아로 선별해내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듣기 읽기 놀이 만들기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평가다.
가령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도전문제를 제시해 모둠이 머리를 맞대고 풀도록 한다. 달과 지구의 환경을 알아보는 과학 수업 시간에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갈 때 입을 우주복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까’라는 도전과제를 주는 식이다. 아이들은 ‘달에는 공기가 없으니 산소호흡기를 단다’는 등의 아이디어를 모아서 문제를 해결한다.
유현초가 이런 장기간 진단활동을 하는 이유는 학습부진아를 선별하는 획일적 지필평가가 이후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문자를 읽고 정답을 표시하는 지필고사 점수로만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는 학력 개념은 매우 편협한 것”이라고 말했다. 체육을 아무리 잘해도 수학을 못하면 학습부진아로 분류되는 기존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의 김중훈 정책위원은 “똑같이 60점을 받아도 학습부진의 정도는 학생마다 다 다르다. 도형 문제만 틀리는 학생, 분수 문제에 약한 학생 등 학습 특성이 저마다 다르고, 분수 문제를 틀렸다고 해도 덧셈이 안 돼서, 나눗셈을 못해서 문제를 못 푼 학생의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학생 개인별로 부족한 부분이 파악돼야 필요한 학습을 보충할 수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획일적 지필평가로 학습부진아를 선별하다 보니 학습부진아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김 위원은 “읽기가 부진하다면 자음 모음을 가르쳐주고 어휘력을 길러주고 문맥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읽기 시험만 반복하고 시험점수로만 학습부진 구제 여부를 결정한다. 반복학습에 따라 점수가 약간 오르기는 하지만 다음 학년에 또 부진아가 된다”고 덧붙였다.
학습부진아 평가에 대한 틀을 바꾸자는 제안에는 또 다른 중요한 교육적 의미가 있다. “문제를 풀든 못 풀든 수업에 참여하는 경험 자체가 배움”이라는 것이다. 유현초는 학기 초 종합 진단활동에 한 달이나 소비하지만 이를 시간낭비라고 보는 이들은 없다. 학습부진아든 우등학생이든 따로 분리하지 않고, 모든 아이들이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교육과정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백병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학습부진 학생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사실상 큰 효과가 없고 오히려 수업 시간에 소외되는 애들이 없도록 수업을 변화시켰더니 자연스럽게 학습부진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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