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9일, 중앙일보,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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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한 젓가락, 추억 한 숟가락 … 그 곳에 가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2014.11.29 00:05박찬일 지음
중앙m&b, 342쪽
1만4800원
책 표지에서 냉면 한 그릇을 앞에 둔 저자의 표정이 수능시험지 보듯 진지하다. 그릇 너비만큼 움츠러든 어깨는 겸손함을 이고 앉은 듯하다. 서울 남대문 부원면옥에서 저자는 “나는 이 집에서 쉬이 다리를 꼬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는다. 역사 앞에서는 다들 공손해져야 하는 법이니까”라고 말한다.
맛있어서 오래된 식당, 노포(老鋪)를 대하는 셰프 박찬일의 자세다. 50년은 넘나들이 하는 집만 골랐는데 가게의 역사가 우리의 근현대사와 이어져 있다. 노포에 가면 음식·장소·세월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직후 노포의 창업자들은 자신의 허기를 채우고자 음식을 만들었다. 살기 위해 만든 밥, 그 밥을 다른 이가 달게 먹으며 노포의 역사는 대를 이어갔다. 서울 노고산동 ‘연남서서갈비’는 한국전쟁 직후 주인 이대현씨의 아버지가 군용 천막을 쳐놓고 잔술에 뭐든 만들어 팔며 출발했다. 1960년대 들어 고기 부위 중 값싼 갈비를 팔았다. 당시 고급식당에서는 불고기가 대세였다. 요즘에도 외국에서는 갈비는 값싼 고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안심과 등심만큼 비싸다. 여기에도 역사적인 이유가 있을 터다.
대구 ‘옛집식당(육개장)’, 서울 종로 ‘청진옥(해장국)’은 나무장인 시전(柴廛) 인근에서 출발했다. 국밥은 고된 노동에 지친 나무꾼들이 한 그릇 후딱 비워낼 수 있는 옛 시절의 패스트푸드였다. 저자는 서울식 추탕(추어탕)을 파는 ‘용금옥’을 소개하면서 왜 한국인이 추어탕을 먹었는지 알려준다.
“추수하기 전, 한가할 때 활력을 보충하기 위해 논두렁 물을 빼고 미꾸라지를 잡아 탕을 끓이는 것은 논농사 중심인 한반도에서 아주 흔한 풍습이었다. (…) 음식은 삶의 조건에서 만들어진다.”(95쪽)
박 셰프의 취재 결과 노포에는 공통점이 있다.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자신이 파는 음식을 늘 먹는다. 직원들이 오래 근무한다. 평양냉면집 ‘우래옥’에는 82세 김지억 전무가 50년 넘게 일하고 있다. 주인장들이 고된 노동에 이골이 나 있는 점도 비슷하다. 3대째 대를 잇고 있는 설렁탕집 ‘잼배옥’의 2대 사장은 너무 힘들고 고단해서 아들에게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3대 사장이 된 아들은 고기를 써느라 팔꿈치에 ‘테니스 엘보’라는 병을 얻었다.
글 쓰는 셰프로 알려진 저자의 글솜씨가 맛깔지다. 책을 읽는데 입에 침이 고인다. 당장 가까운 노포에 가서 설설 끓는 설렁탕을 훌훌 삼키고 싶다. 노포와 맛깔진 음식과 지난 세월을 음미하고 싶게 하는 책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잡지 기자로 활동하던 어느 날, 돌연 요리에 흥미를 느끼고 유학을 결심한다.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와인을 1999년부터 3년간 공부하고 2002년 귀국한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시칠리아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는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만든 이탈리아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젊은 요리사들 사이에서 유행으로 번지고 있는 슬로푸드, 로컬푸드 개념을 양식당에 최초로 적용하며, 재료의 원산지를 꼼꼼히 밝히는 방법을 처음 쓴 것으로도 알려졌다. 수입 아스파라거스 대신 진도 대파를, 수입 연어 대신 제주 고등어를, 수입 쇠고기 대신 남원 흑돼지를, 마치 양식당의 불문율처럼 써야 했던 소고기 스테이크 대신 내장 부산물을 메인 요리로 내놓는 배짱 두둑한 요리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한국의 오랜 노포로 발길을 움직였다. 오래된 식당들의 철학과 삶, 추억이 깃든 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다.
글 쓰는 셰프로 알려진 그는 미문의 문장가로도 유명하다. 쓴 책으로 《보통날의 파스타》,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등 여러 권이 있으며, 맛과 글에 대한 강의와 함께 다수의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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