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1945, 희망 2045]
마을은 재능기부하며 공동생활
국회는 15살 의원 탄생에 환호
대학은 ‘SKY’ 등 서열화 없어져
청년들은 꿈 좇아 도전 일상화
광복 70주년을 맞은 지난달 28일, 경기도 안산 경기창작센터에 20대 청년 72명이 모였다. 광복 100년이 되는 2045년의 대한민국을 꿈꾸는 자리였다. 일단, 실현 가능성은 제쳐놓았다. 그저 20대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지에만 집중했다. 꿈꾸지 않으면 현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 상상들을 가상인물 나미래씨의 삶으로 재구성했다.
2045년 3월11일,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재활용 기술업체 ‘자연과 우리’ 안으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오후 6시, 가족 품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소리다. 몇분이 흐르자 의자에서 뾰족뾰족 압정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강제적으로’ 일을 못 하게 만든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다.
이 회사는 나미래(59)씨가 7전8기 끝에 창업했다. 화장실 폐기물을 곧장 퇴비로 바꿔주는 기술이 대박을 치면서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 못지않은 수익을 내고 있다. 이 회사에서 발명한 최첨단 오수 정화 시스템 덕분에 더러운 물이 흐르던 하수관이 사라지고, 되살아난 실개천에서 아이들은 알몸 수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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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래씨는 이 회사에서 최고경영자가 아닌 연구자로 주 4일, 그것도 오후 2시에서 6시까지만 근무한다. 대신 오전에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한다. 성공한 기업의 창업주가 환경미화원으로 ‘투잡’을 뛰는 것은 2045년엔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환경미화원은 경쟁률이 100 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 직업이다.
나씨는 이날 오랜만에 마을 자치모임에 참석했다. 최근 당선된 청소년 국회의원 정민주(15)양의 얘기가 화제가 되면서 밤늦도록 ‘정치 토론’이 이어졌다. ‘청소년에 관한 정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겠다’며 10대들이 줄기차게 참정권 운동을 벌여 정양이 당선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10~30대 청년들은 이제 국회 의석의 30%를 자신들의 목소리로 채우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나씨가 사는 마을은 커다란 광장을 중심으로, 크기가 제각각인 단층 공동주택이 조르르 원을 그리며 둘러앉은 모습이다. 30년 전 돈깨나 있던 사람들이나 가던 고급 실버타운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됐다. 모든 게 돈으로 해결되던 과거와는 달리, 마을 사람들이 서로 재능기부를 하듯 서로를 부양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게 조금 다를 뿐이다. 세 집 건너 한 집꼴로 ‘나홀로족’이다 보니 ‘공동 텃밭’에서 유기농 채소를 재배해 ‘공동 부엌’에서 함께 조리해 음식을 나누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나씨의 딸 희망(23)씨는 지난달 제주도 삼다대학에 진학하며 집을 떠났다. 나씨의 젊은 시절과는 달리 요샌 ‘스카이’(SKY)니 ‘인(in)서울’ 같은, 대학을 줄 세우는 표현들이 사라졌다. 삼다대처럼 지역마다 특성을 갖춘 우수한 대학들이 고루 분포해 있기 때문이다.
나씨가 거듭된 실패에도 또다시 창업에 도전하고, 딸 희망씨가 ‘청년 백수’ ‘사회 부적응자’란 낙인 없이 제 꿈을 찾아 ‘방황’할 수 있었던 건 ‘시민수당’이란 사회안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은 일정 수준의 ‘품위 유지’가 가능한 시민수당을 받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언론들은 연일 ‘통일 임박설’을 보도하고 있다. 나씨는 ‘나진-선봉 지대에 있는 남북 합작기업에 투자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올겨울, 그는 북한의 나진을 거쳐 시베리아의 바이칼호로 가는 열차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나씨의 얼굴에 벌써부터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안산/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SERIES/661/6817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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