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책과 출판의 문화사] 금속활자 인쇄술은 구텐베르크의 발명인가? /전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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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출판의 문화사] 
금속활자 인쇄술은 구텐베르크의 발명인가?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는 기업광고도 있었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간발의 차이로 1등을 놓친 사례들이 종종 있다. 1876년 2월14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 특허를 접수하고 1시간 뒤 당시 전신전화 분야 최고의 기술을 가진 엘리샤 그레이가 특허를 접수했다. 기술적으로는 그레이의 특허가 좀 더 우수했지만, 1시간 먼저 접수했다는 이유로 전화기에 대한 특허는 벨이 획득했다. 찰스 다윈은 1856년 진화론을 쓰기 시작했으나, 미처 완성하기 전 후배 과학자인 앨프리드 월리스로부터 자신의 학설과 똑같은 취지의 논문이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서둘러 논문을 완성했고 친구인 후커와 라이엘의 배려로 1858년 린네학회 총회에서 월리스와 함께 공동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가지고 있다. 이 인쇄물은 8세기 중엽에 인쇄된 것으로 불경이 봉안된 석가탑은 751년 김대성에 의해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워졌으므로 이 불경 역시 그 무렵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인쇄물이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은 770년경에 간행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 세계 최고(最古)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있으니 세계의 모든 사람이 우리를 목판 인쇄술의 발명국가라 생각할까? 우리나라의 인쇄술과 종이제조 기술은 역사 이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이지만 흔히 목판 인쇄술의 발명국은 중국일 것으로 추정한다. 설령 그렇다고 해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역사적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흔히 구텐베르크를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명가로 기록하지만, 일찍이 구텐베르크만큼 명성과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발명가는 없었다. 비록 역사는 그를 인류에게 인쇄술의 혜택을 선사한 위인으로 기록하지만, 그에 대한 전기나 평전 작업이 어려울 만큼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가 인류 문명사를 새롭게 기술해야 할 만큼 거대한 발명을 한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중세 대학의 등장은 13세기 서구 역사의 가장 중요한 현상 중 하나였다. 대학의 등장과 함께 점점 더 늘어나는 텍스트를 전부 필사본으로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보다 훨씬 전부터 좀 더 빨리 많은 필사본을 생산해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왔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갑자기 '유레카(Eureka)!'를 외치듯 등장한 것이 아니라 목판 인쇄술과 화학기술의 발달로 출현한 인쇄 잉크, 포도주를 만들기 위한 압착기, 금속주조술 등 여러 기술이 종합적으로 발전한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가 인쇄기의 원리를 만들고, 새로운 인쇄술을 도입하기 위해 15년여동안 숱한 역경과 시행착오를 거듭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진 않는다. 벨과 그레이가 전화기를 발명하기 위해 맥스웰의 전자기파 이론이 존재해야만 했던 것처럼, 다윈과 월리스의 진화론이 나오기 위해선 그들보다 앞서 진화론의 개념을 정립했던 뷔퐁, 라마르크 등이 필요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역시 알려지진 않았으나 그보다 앞서 토대를 닦았던 무수한 이들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성공회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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