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의 저자 유창복 서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은 "3년 가까이 센터장으로서 마을 사업을 진행했다. 그동안 새롭게 등장한 마을활동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많았다. 마을의 선배로서 내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며 책을 쓴 동기에 대해 말했다. | |
ⓒ 이희훈 |
"박원순 서울시장, 잘못 만났어(웃음)."
유창복(53)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이 신세 한탄을 했다. 그는 지난 2년 7개월간 마을전도사로서 강의와 회의 등의 업무로 전국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정신적 고향인 성미산마을은 숙박업소일 뿐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계획해 두었던 해외여행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그는 "평일 오전에 카페 있는 게 얼마만이냐"며 "족히 3년은 됐을 것"이라고 웃었다.
<오마이뉴스>는 20일 오전, 서울 성미산마을의 카페, '작은나무'에서 유 센터장을 만나 그의 책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휴머니스트)에 담긴 도시 속 마을살이에 대해 물었다. 책에는 지난 20년간 마을 경험과 2년 반 동안의 행정 경험 등 마을살이의 모든 것이 담겼다.
"존재적 불안 해소 위해 마을 필요"
유 센터장은 한국 사회의 모든 세대가 '존재적 불안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세 모녀 자살사건과 세월호 침몰 사고 등등을 통해 심리적 불안을 넘어 존재적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존재적 불안은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며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관계에 대한 갈증을 풀어야 하며 그 관계망이 '마을'"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을을 '생활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망'으로 정의한다. 흔히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마을이 아니다. 유 센터장 스스로 공동육아를 위해 성미산마을에 이사온 것처럼 자기의 필요가 이웃의 필요가 되고 그것이 다시 마을의 필요로 연결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마을이 국가와 시민사회를 대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자기 필요, 자기 이해관계에서 출발하는 마을이 타인 혹은 동네의 욕구로 선순환되면서 주체성이 발현된다"며 "이런 기능이 선순환되면 시민단체의 주장이 먹히기 시작하고 주민이 직접 나서면 정치인이 무시하지 못해,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재정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센터장은 1996년부터 성미산마을에서 공동육아를 시작했고 대안학교 '성미산학교'를 만들었다. 이후로 마을카페 '작은나무'의 운영위원과 '성미산마을극장'의 대표를 지냈다. 지난 2012년 8월부터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중간지원조직인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를 맡아 마을과 행정이 오가며 도시 속 마을살이를 실현해 내고 있다.
그는 최근 시간을 내,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무대는 성미산마을극장에서다. "무대에 서 있을 나를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고 웃으며 옆 테이블에 있는 마을 주민과 인사했다. 다음은 유 센터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관계 회복이 불안 탈출 위한 구명정"
▲ 유창복 서울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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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어떻게 쓰게 됐나. 집필 동기 궁금하다.
"3년 가까이 센터장으로서 마을 사업을 진행했다. 그동안 새롭게 등장한 마을활동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많았다. 마을의 선배로서 내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 아직 대다수 시민에게 '마을은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처럼 느껴진다. 책 제목처럼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 정말 가능할까.
"대한민국의 모든 세대가 불안하다. 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땅이 꺼진다. 서울 송파구에서 세모녀가 숨지고, 돈 있는 집 가장이 가족과 함께 죽는다. 수학여행 가려고 배를 탔다가 생때같은 내 아이가 죽는다. 죽은 지 1년이 다 돼도 왜 죽었는지 모른다. 심리적 불안을 넘어 존재적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관계에 대한 갈증을 풀어야 한다. 사람들이 누구와 관계를 맺고, 누구와 함께 늙어갈지를 고민하고 있다.
관계 회복은 존재적 불안을 탈출하기 위한 구명정이다. 그런데 관계를 어디서, 어떻게 맺을 것인가. 생면부지의 사람보다 주차하다 싸운 이웃이랑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 서로의 눈을 쳐다봐 주고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존재적 불안의 큰 벽을 허물 수 있다. 그게 마을의 시작이다."
-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 3년이 다가온다. 서울의 변화 어느 정도 체감하는가.
"성공적이라고 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을공동체 사업을 시작할 때, 서울에 마을은 없다고 전제했다. 대표적으로 자생적으로 출발한 성미산마을은 십수년이 된 것이다. 이 마을을 서울시 정책 모델로 삼기 어렵다. 1000만 서울 시민의 입장에서는 존재감도 없었다.
또 서울은 공동체가 파괴되는 역사였다. 뉴타운 사업이 마을을, 공동체를 파괴시켜 왔다. 때문에 활동가나 전문가가 아니라 실제 지역에 사는 주민이 중심이 되는 마을을 목표로 삼았다. 주민이 어떻게 주인공이 되냐. 나도 마을사업을 하려고 마을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내 아이 잘 키우려고 마을에 들어왔다. 나의 필요가 이웃의 필요가 되고, 동네의 필요가 되는 과정이 지금 서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봄 햇살 받아, 잔디 올라오듯 말이다."
- 구체적으로 지금은 어떤 단계인가.
"사업 초기인 2012년에 마을 씨앗을 뿌렸고, 지금은 마을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는 단계다. 개별 단위가 아니라 집합적 형태로 마을이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엄마가 있다. 맞벌인데다 아이 교육하기가 감당이 안 된다. 요새 아이들 천방지축이잖나. 이런 고민을 가진 엄마 두어명이 아파트 단지에서 말을 트기 시작한다. 한 번 모이면 시누이, 부모, 남편을 소재로 수다 떨다가 아이 문제로 돌아온다.
이 엄마, 저 엄마 끌어 모아 다섯 명이서 시작한다. 일주일에 하루씩 돌아가면서 방과후 교사가 되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찾아보면 이같은 방과후 그룹이 서너 개가 활동하고 있다. 또 이 그룹을 연결하는 '왕언니'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그룹이 지어지면서 단위가 커지고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마을이 확장돼 생태계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내 아이만 바라봤던 엄마가 '내 아이'를 '동네 아이'로 보게 되는 거다. '내 아이만 별난 게 아니구나', '내 아이만 끼고 살면 안 되구나' 하면서 동네 아이들도 챙기게 되면서 엄청난 시민 의식으로 발전되고 결국 공공성과도 연결된다."
"마을공공성 통해 국가·시민사회 재구성해야"
▲ "마을은 자기 필요, 이해관계에서 출발한다. 자기의 이해관계에 갇히면 다른 사람과 충돌·대립될 수 있다. 타인의 욕구도 소중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나의 욕구를 아우를 수 있을 때 나의 필요가 이웃의 필요, 동네의 필요로 전환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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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도 마을공공성을 중요한 개념을 두고 있다. 책에 '정치인에게 위임하지 않고 시민단체가 대변하지 않는 시민 운동'으로 마을공동체 운동을 바라보고 있다.
"이론적으로 설명하자면 공공성의 개념에는 국가공공성, 시민공공성, 마을공공성 세 가지가 있다. 행정 관료들은 국가공공성의 주체를 국민으로, 시민사회는 공공성의 주체를 시민으로 상정한다. 물론 마을공공성은 주민을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국민에서 시민으로 성장하려 했지만 그 시민들의 삶은 이미 난민이 돼 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존재적 불안에 살고 있다. 난민이 난민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주체로서 주민이 되는 것이다."
- 어떻게 마을공공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마을은 자기 필요, 이해관계에서 출발한다. 자기의 이해관계에 갇히면 다른 사람과 충돌·대립될 수 있다. 타인의 욕구도 소중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나의 욕구를 아우를 수 있을 때 나의 필요가 이웃의 필요, 동네의 필요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마을 공공성을 체득하면서 주민의 필요를 해결한다. 이런 기능이 선순환되면 시민단체의 주장이 먹히기 시작하고 주민이 직접 나서면 정치인이 무시하지 못한다. 결국 국가와 시민사회가 재정립될 수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나 정당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능과 위치를 재정립하자는 것이다. 시민사회, 정치, 주민 세 주체가 협동해야 이 사회가 잘 돌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희망이 마을에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70~1980년대는 국가가, 1990~2000년대는 경실련,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지금은 마을에서 희망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책에 보면 시민사회의 재구성이라고 썼다. 그 원리가 마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미시적이고 근본적일 수 있다."
- 서울시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경기도의 '따복공동체' 등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마을 정책에 여야가 없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에 자문을 했다. 광주, 강원, 전북 전주, 부산 등 광역단체와 기초단체를 불문하고 적극적으로 사업에 반영하고 있다. 올 3월 현재, 서울시 마을센터처럼 중간 지원 단체가 전국에 16개가 만들어졌다. 올해 준비 중인 곳만 40개가 넘는다."
- 마을의 다양성은 형성이 되고 있나. 책에는 주부 혹은 백수가 주인공이라고 했는데, 다른 참여자들이 늘어나고 있나.
"서울시는 지난 3년간 2700개 주민모임을 지원했다. 대략 8만명에서 10만명이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전체 시민의 1%다. 그 중에서 25%가 50~60대, 베이비부머 세대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직한 뒤 집수리 동아리를 만든다든지, 도시텃밭을 해본다든지, 마을기업, 협동조합도 만들면서 슬그머니 마을에 들어오고 있다. 우리 사회의 우울한 세대들이 마을에서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
- 저소득층이나 복지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마을 사업은?
"마을 사업을 지원하려면 사업계획서를 쓸 정도로 열의가 있어야 한다. 취약계층은 사실 마을 사업에 지원하기 어렵다. 그들에게는 복지 서비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는 복지 서비스 전달 체계 강화를 넘어서 그들이 마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조직을 만들고 있다. 그 컨트롤타워가 바로 '동마을복지센터'다. 센터를 통해서 사회혁신과 주민복지, 행정이 융합될 것이다. 센터는 지금의 주민센터를 일반 행정에서 마을 복지 중심으로 전환한다. 서울에서는 성북·도봉·금천·성동 네곳이 시범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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