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쥐고 손을 펴서 손뼉 치고 주먹 쥐고 또다시 펴서 손뼉 치고 두 손을 머리 위에 햇님이 반짝 햇님이 반짝 햇님이 반짝 반짝거려요.’ 오랫동안 애창되어온 이 동요는 율동을 함께했기 때문에 몸으로 기억되는 멜로디다.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찬송가로도 유명한 이 곡은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작곡했다.) 가사에 나오는 단순한 동작들은 아이들에게 신체의 경쾌한 리듬을 일깨워준다. 한국의 ‘곤지곤지 잼잼’ 같은 전통 육아놀이는 거기에 더해 애착 형성에도 도움을 준다.
손의 중요성은 단순히 손동작에만 있지 않다. 인체의 206개 뼈 가운데 4분의 1이 손에 있고, 뇌신경 세포의 30%가 손에 연결돼 있어서, 운동 중추의 발달에 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손동작은 두뇌의 활성화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퀼트나 도자기 빚기 등 수공예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노후에 기억력 장애가 훨씬 적다고 한다. 정교한 손놀림이 뇌의 다양한 영역을 골고루 자극하기 때문이다. 심신의 발달 과정에서도 손을 다양하게 움직이고 여러 가지 사물을 다뤄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어린아이들이 다양한 물체들을 만지작거리고 주물럭거리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충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달라진 듯하다. 일선 교사들에 따르면 아이들의 글쓰기, 그림, 공작 실력이 점점 퇴보하고 있다. 손으로 만들거나 오리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오히려 귀찮아 할 때가 많다고 한다. 서울 수송초등학교 위재호 교사는 어느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손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빚어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것을 하찮게 여깁니다. 뭔가에 힘을 쏟고 정성을 들이기보다는 잘 만들어지고 편리하고 예쁜 것을 쉽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하죠. 그렇게 소비자로만 머무는 것이 안타까워서 손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보자고 하면 짜증내는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해도 대충 끝내려 하고요. 몸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앉아서 멍하니 보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열 살짜리 아이들이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삽니다.”
이제는 글씨를 쓰는 대신 자판이나 스마트폰 버튼을 누르는 시대다. 점점 편리해지는 기계와 점점 늘어나는 상품 및 서비스 덕분에 원하는 것들을 즉각 실현하거나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대신 시간을 견디면서 뭔가를 손수 완성해가는 기쁨을 잃어간다. 일상의 작은 경험들을 스스로 창조하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욕망의 부피는 커지고 그럴수록 무기력과 지루함에 빠져든다.
성취감을 통해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어야 한다. 사물들을 아끼는 마음, 거기에 깃들어 있는 스토리와 기억으로 확인되는 존재감이 필요하다.
최근에 인성교육이 다시 강조되고 있는데, 그것은 별도의 교과목으로 편성해 가르칠 영역이 아니다. 신체 활동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교섭 등 복합적인 경험을 통해 인격과 품성은 형성된다. 특히 초· 중등학교 수준에서는 실과 교실이 중요하다. 오감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놀이의 즐거움으로 생명의 에너지를 채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씨 쓰기, 그림, 종이접기, 뜨개질, 바느질, 악기 연주, 공작, 수리, 농사, 원예, 동물 기르기, 청소 등의 활동이 장려되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손은 시선만큼이나 중요한 통로가 된다. 얼마 전 아버지가 몸살로 심히 괴로워하셨는데, 자식으로서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방문한 매형이 아버지를 바닥에 눕게 하고 전신 마사지를 해드렸다. 나도 함께 거들었다. 아버지는 그 시간 이후 빠르게 회복되었다. 생리적인 효과와 함께 심정적인 위로도 큰 몫을 했으리라. 맨손의 힘을 새삼 확인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다리를 많이 주물러드렸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신체적인 소통이 가족들 사이에서 사라진 듯하다. 몸은 마음이 오가는 길이다. 등을 다독여주고, 손을 살며시 잡아주고, 뺨을 어루만져주고, 하이파이브로 손바닥을 마주치기도 하면서 숨은 마음을 일깨워보자.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아있음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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