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옮겨진 팔만대장경 |
▲ 팔만대장경판 |
▲ 강화도 외규장각 |
이번 기획을 통해 본보는 인천이 '세계책의수도'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역사적 고증과 현장 취재를 통해 샅샅이 드러낼 것입니다. 아울러 성공회대에서 '책의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는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 교수가 필진으로 참여, 고대부터 현대까지 책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지성을 집대성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프롤로그
금속활자 - 목판인쇄 - 정족사고 - 외규장각 이어지는
강화 '책의 수도 뿌리' 역사적 당위성 증명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인류의 문명은 혁명적으로 진전한다. 인쇄술을 견인한 것은 '금속활자'였다.
이전까지 책은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써야 하는 '필사'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수기로 책을 펴내는 일은 어렵기도 했지만 비용도 만만찮았다.
활자를 이용해 책을 찍어내면서 책은 비로소 '대중미디어'의 반열에 올라선다.
소수 권력자들이 독점하던 지식과 정보는 대중들이 공유하게 됐고 '집단지성'의 발현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도 '프랑스혁명'도 결국은 인쇄술의 영향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우리나라 고려의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이다.
고려 의종 때 학자 최윤의를 비롯한 17인의 학자들이 왕명을 받아 만든 이 책은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상정고금예문>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만 기록돼 있을 뿐 전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상정고금예문>을 잉태한 곳이 인천 강화도란 사실이다.
고려는 몽골의 침략에 항전을 다짐하고 1232년 강도(江都·강화도)로 천도한 지 2년쯤 지난 1234년 <상정고금예문>을 펴낸다.
이 책은 고금의 예의를 수집·고증해 50권으로 엮은 전례서다.
이후 1239년 고려는 다시 <남명천화상송증도가>란 책을 간행한다.
불교국가였던 고려는 불교서적인 이 책을 인쇄하기 위해 '증도가자'란 금속활자를 주조한다.
증도가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책인 <직지심체요절>보다 무려 138년 앞선 것으로 4년 전 12점이 세상에 공개된 바 있다.
이보다 조금 앞선 1236년 고려는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이 '팔만대장경' 판각을 시작, 1251년 마침내 8만여장의 대장경을 완성한다.
팔만대장경은 강화도의 '대장도감'에서 판각을 주도했으며, 완성된 이후 1398년까지 강화도 '대장경판당'이 보관한다. 지금의 합천 해인사로 이운한 것은 왜구 등의 침입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탄생시킨 강화도에선 빛나는 책의 역사를 계속 이어간다.
'전등사'의 '정족사고'(鼎足史庫)는 1653년 이래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장소다.
전국 4대 사고 중 하나였던 정족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무려 4000여권의 서적을 품고 있던 대규모 도서관이었다.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했던 '병인양요'로 일부가 약탈되긴 했으나 남은 책들이 규장각으로 옮겨졌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금의 고려궁지 자리의 '외규장각'은 '의궤'를 보관하던 곳이다.
정조대왕은 1782년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외규장각을 세운다.
의궤는 왕실의 행사나 의식 등을 기록해 놓은 책으로, 외규장각은 5400여권의 왕실 서적을 소장하고 있었다. 자, 이래도 인천이 '2015 세계책의수도'가 된 것이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인천은 지금, 금속활자의 탄생에서부터 팔만대장경, 정족사고, 외규장각, 그리고 '2015년 세계책의수도'로 이어지는 인쇄문명의 도도한 역사를 흐르고 있는 중이다. 신비롭고, 자랑스런 '세계책의수도 인천'의 역사가 시작되는 2015년, 인천일보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책 역사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글·사진=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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