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인터뷰_ 『한자어원사전』 펴낸 하영삼 경성대 교수
學’이라는 한자어를 가리켜 이렇게 설명한다. “字解: 회의, 집 안(宀)에서 두 손(臼)으로 새끼 매듭(爻) 지우는 법을 아이(子)가 배우는 모습을 그렸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 기억의 보조 수단이었던 새끼 매듭(결승) 짓는 법을 배우는 모습이다. 배우다가 원래 뜻이며, 모방하다, 본받다, 배우는 사람, 학교, 학과, 학문, 학설학파 등으 뜻이 나왔다. 속자에서는 윗부분을 文(글월 문)으로 줄인 斈으로 쓰기도 하는데, 아이(子)가 글자(文)를 배운다는 뜻을 담았다. 간화자에서는 윗부분을 간단하게 줄여 学으로 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중어중문학과)가 10여년이 넘게 걸쳐 작업해온 1천36쪽 분량의 『한자 어원사전』(도서출판3 刊)의 일례다(<교수신문> 750호, 「하영삼 경성대 교수, 『한자 어원사전』 출간」 참조). 출토 한자 자료에 근거해 한자 어원을 밝히고 의미 파생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전으로 행정전산망 한자 4천888자를 포함해 모두 5천181자를 수록해, 한자의 어원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사전이다. 하 교수는 어째서 이 사전을 펴냈을까. 하 교수를 e-메일로 만났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중어중문학과)가 10여년이 넘게 걸쳐 작업해온 1천36쪽 분량의 『한자 어원사전』(도서출판3 刊)의 일례다(<교수신문> 750호, 「하영삼 경성대 교수, 『한자 어원사전』 출간」 참조). 출토 한자 자료에 근거해 한자 어원을 밝히고 의미 파생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전으로 행정전산망 한자 4천888자를 포함해 모두 5천181자를 수록해, 한자의 어원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사전이다. 하 교수는 어째서 이 사전을 펴냈을까. 하 교수를 e-메일로 만났다.
△ 『한자 어원사전』은, 漢字로 묶일 수 있는 동아시아문화·문명권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집필 동기가 궁금합니다. “한자는 동아시아를 함께 묶을 수 있는 핵심 코드의 하나이자 우리에게는 한글만큼이나 중요한 문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교양인이 되거나 중·고급 학문을 익히려면 한자의 습득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한자는 형체 속에 의미를 고스란히 담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를 이해하고 익히려면 어원에 대한 이해가 가장 우선돼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제대로 된 어원사전 하나 없고, 학술적 근거 없이 제멋대로 한자의 의미와 자형을 설명할 때가 잦습니다. 이는 한자 학습과 이해에 큰 방해가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 잡고, 한자 어원의 중요성을 알리고, 어원 해석의 조그만 표준을 제공하고자 만들게 됐습니다.”
△ 작업하기 까다로운 ‘어원적 접근’을 선택했는데. “한자는 알파벳 문자와는 달리 표의성이 대단히 강한 문자이고, 형체가 다소 바뀌긴 했지만, 발생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용돼 온 인류의 대표적 문자의 하나죠. 한자는 표음문자와 달리 시간을 횡단해 口語가 담을 수 없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담기에 문화를 저장하는 기록이자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를 이해하려면 가능한 초기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형체와 원래 의미를 살피고 이후의 파생과정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컨대, 毒을 『 설문해자』에서는 ‘독성이 있는 풀’로 설명했지만, 손을 앞으로 모으고 가지런히 앉은 모습의 女, 女에 두 점(유방)을 찍어 양육 기능을 강조한 母, 母에 다시 비녀를 상징하는 가로획을 더해 성인 여성을 그린 每(‘재빠르다’는 뜻의 敏이나 ‘가르치다’는 뜻의 誨에서 보듯 원래는 ‘어머니’라는 뜻임), 每에다 비녀를 하다 너 넣어 농염함을 강조한 毐, 毐에 다시 비녀를 더해 만든 것이 毒임을 고려해 볼 때, 毒은 머리 장식을 화려하게 한 농익은 여인을 그렸고, 그런 여인이 남성과 사회를 파멸케 하는 ‘독’적인 존재임을 그렸습니다. 남성들이 지키고자 한 이상적 질서를 이렇게 만들어 넣은 것이지요. 이는 성인 남성(夫)이 보는(見) 그것이 바로 規로, ‘규칙’이자 ‘규율’임을 반영한 것처럼 남성중심의 사고가 잘 드러난 글자입니다.
이런 식으로, 善, 美, 仁, 禮, 眞, 義 등의 어원을 통하면 선과 악, 미와 추, 인과 예, 참, 정의 등 형이상학적인 개념조차도 더욱 직접적이며 구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자는 더는 무질서한 그림을 무작정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연결된 질서체계를 자연스레 이해하면 되고, 그렇게 될 때 한자는 절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더없이 재미나고 쉬운 문자가 됩니다.”
△ 사전편찬 작업은 방대한 일입니다. 실제로 선생님께서도 “만만하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머리말에서 밝혔는데요, 어려운 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한자 어원 연구’는 한자의 근원을 찾아 당시의 자형과 의미를 연결하고 그의 변화를 찾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복잡한 작업입니다. 갑골문만 하더라도 이미 기원전 13세기 때의 것입니다. 이들의 자형과 용례는 물론 이후 각 시기의 문헌 용례까지 귀납해 해당 한자가 가진 다양한 의미들을 논리적으로 연결하고 추론의 합리성을 확보해야 하기에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특히 지금으로서는 해석할 수 없는 글자도 있고, 자형의 해석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의 의미를 읽어내는 데 필요한 고대 문헌의 해독 능력과 철학적 소양이나 인류학적 지식까지 필요합니다. 사실 이번 과정에서 이러한 지식과 능력의 부족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어요. 또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해 출토되는 실물 한자 자형의 확보도 중요한 문제였는데, 이는 다행히 중국 측의 파격적 제공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 어원사전은 어떤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요? 또 이 사전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먼저,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사유의 근원을 이해하는데 직접적 자료를 제공할 것입니다. 예컨대, ‘하늘’을 그린 天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늘’을 그리지 않고 ‘사람의 머리를 그려 그것과 닿은 곳이 하늘임’을 나타냈는데, 이는 사람을 통해 만물을 인식하려는 중국인의 사고 특징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文은 육신으로부터 영혼을 분리하게 하려고 시신에 낸 칼집을 그려, 출발부터 ‘영혼’과 관계됐고, 이 때문에 人文이나 文化처럼 숭고한 뜻을 가집니다. 이는 문자가 추방의 대상이 됐던 서구적 전통과는 달리 음성 즉 로고스(logos)에 해당하고, 이 때문에 로고스 중심주의 문명과 문자중심주의 문명의 본질은 같습니다.
또 모든 만물의 근원이자 시작을 뜻하는 壹은 ‘호리병(壺)’에서 의미를 가져왔는데, 호리병 박에서 탄생한 인류 탄생신화를 반영하는 거죠. 그런가 하면 임금을 뜻하는 帝는 ‘꽃 꼭지’를 그렸는데, 이는 정착 농경을 일찍 시작한 중국의 곡식 숭배사상을 반영합니다. 이는 최고 영웅을 지칭하는 英이나 중국인들이 자신을 부르는 華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뜻하는 眞은 貞에서 분화한 글자인데, 점복(卜)을 통해 신의 의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진리’임을 말해, 그리스어에서 진리를 뜻하는 ‘아레테이아(aletheia)’가 ‘탈(a)은폐(letheia)’, 즉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과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전을 이용할 때에는 일차적으로 한자의 이해와 학습도 중요하겠지만,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속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속성에 대해 깊이 사고했으면 합니다. 물론 체계적 한자 학습을 위해서는 같은 구성성분으로 구성된 관련 글자들을 그룹으로 묶어 그것들이 어떻게 관련 의미를 공유하고, 의미상으로 파생해 나가는가를 함께 살피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능한 관련 글자들을 함께 묶고, 그들 간의 의미적 관련성을 밝히려 노력했습니다. 또 한국과 중국에서 생겨난 각 시기의 다양한 이체자들을 수록해 이들에 반영된 문화적 속성과 문자 사용 심리를 이해하도록 했습니다.”
△ 본격적인 집필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사전이 완성됐습니다. “한자에 담긴 문화성을 연구하게 된 것이 1995년 숙명여대에서 열린 갑골학 국제학술대회였습니다. 이후 <부산일보>에 어원을 분석한 「한자교실」을 연재하면서 기본 구상을 하게 됐고, <동아일보>에 「한자뿌리읽기」를 2년간 연재하면서 구체화했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어려운 한자 폰트나 스캔 기술이 보편화하기 전이라 자형을 그리고 복사해 붙여야 하는 등 전산 처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기술 발달로 이 문제는 해결됐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시간과 힘을 소모해야 했습니다. 또 해당 한자 의미의 체계적 해석도 쉽지 않았고요. 이견이 많은 해석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개별 글자는 물론 관련 글자 군들의 다양한 의미들의 파생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내는가 하는 것이었죠. 이는 앞으로 여전히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마지막은 출판이었습니다. 한자자원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모자랐고, 또 그림도 많고 잘 쓰지 않는 한자도 많아 출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원도 없고 시장성도 확신하기 어렵고 분량조차 상당한 이 책을 출판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곳도 없고, 또 출판하겠다고 가져간 출판사에서도 몇 년이 지나도 별 진전이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출판하게 된 것입니다.”
△ 중국 화동사범대 ‘중국문자연구와 응용센터’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국내 학계의 기존 성과는 없었는지요. “특히 자형 자료의 도움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중국 최고의 한자연구소, 특히 한자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대표 기구인 ‘중국문자연구와 응용센터’의 자료 제공이 없었으면 이 책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출판된 한자어원사전 중에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상세하고 완전한 실제 자형 자료를 제공한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말 사전출판으로 유명한 일본의 가도카와(角川) 문화재단의 초청으로 도쿄에 갔다가 재단 이사장께서 이 자료를 보고 한중일을 함께 아우르는 어원사전을 공동으로 집필하자는 제의도 했었습니다. 물론 국내 연구자의 개별적 연구 성과도 도움이 됐습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처럼 변변한 한자어원 사전 하나 없는 우리의 현실은 마음을 아프게 했고, 한자연구자로서의 사명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 논문 성과가 더 큰 업적평가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10여년 이상 사전 편찬에 매달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전편찬과 관련해 연구비나 기타 지원은 있었나요? “긴 호흡의 묵직한 성과물을 내기 어려운 우리의 현실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최근 (사)세계한자학회(WACCS)를 운영하면서 세계 각지, 특히 프랑스와 독일이나 미국 등지의 연구자를 보면서 긴 호흡의, 한번 하더라도 역사에 남는 연구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원시스템 및 사회적 공감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물론 어원사전 편찬과 관련해 한국연구재단에 신청도 했으나, 필요는 하지만 시급하지 않다는 평가서를 받았으며, 재직학교의 교내 연구는 1년 단위로 지원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연구비 지원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한자의 근본적 연구이자 기초연구인 어원연구는 제가 궁금하고 필요해서 시작했고, 이후 즐거워서 계속하게 된 것이어서 지원 여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보다 제대로 보완된 것이 나와야 한다는, 한자연구자로서의 개인적 책임을 더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지원에 기대기보다는 제 스스로 팀을 짜고 지원을 해서라도 다음 단계의 더욱 완성된 사전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숭고한 뜻과 의지가 있는 한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한자와 관련 주목할 만한 저서를 내놓으셨는데요, 어원사전 이후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세계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의 보완된 한자어원사전의 집필입니다. 중국의 『說文解字』나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의 『字統』 등과 겨룰 수 있는 어원사전을 만들어야겠지요. 질이 보증된 가도카와(角川) 서점의 『어원사전』은 현재 개정판만 51쇄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원 연구의 궁극적 목표가 어원 규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자에 반영된 사유특징의 연구에 있는 만큼, 정확하고 세밀한 어원에 근거하고 해당 한자의 시기별 사용 용례와 의미 확장 등을 종합해 ‘어원 중심의 개념어 사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유가, 도가, 불가, 기타 문화 관련 핵심 한자, 즉 핵심 개념어 500개 정도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한자의 기층에 녹아 있는 문화의 근본성을 실증적으로 찾아내는 것입니다. 연전에 쓴 『한자와 에크리튀르』(아카넷, 2011)에서 오리엔탈리즘과 관련된 문자중심주의, 시각사유, 진리의 근원 등의 문제를 어원을 통해 분석했고, 그 방법론을 실험적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여전히 부족한 것은 ‘신화적 상상’과 ‘의미의 해석’입니다. 경학, 철학, 인류학, 언어학, 문학, 예술학 등 협력 연구가 필요하고 강호제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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