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세계책의수도 인천] '인쇄고장서 움튼 의약서 … 고려 수명 연장 일등공신 인천, 활자의 시대를 열다 - 7.'대장도감'과 향약구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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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약구급방>과 같은 책과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대장도감'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인천 강화군 선원면 선원사터 전경. 이 곳은 1236년(고종23)에 대장경을 다시 새기기 위해 설치한 관청이다. 그렇지만 그 밖의 여러 서적을 인쇄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강화군 선원면 선원사터 입구에 자리잡은 대형 불상.
국내 현존 最古 의료 책 … 1236년 강화 '대장도감'서 간행 추정
상·중·하 3권 1책 구성 … 원본 미존재·간본 1부 日궁내청 보관

'개경을 떠나 이 곳 강도로 천도한 지도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있구나. 아아, 고향의 종묘사직은 무사한 것일까.' 

1236년 겨울, 궁터를 산책하던 고종(1192~1259) 임금의 얼굴이 이내 어두워졌다. 하늘에서 눈송이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임금의 얼굴이 하늘을 향했다. '개경의 하늘에서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얼굴 위로 눈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왕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강도(江都·강화도)로 천도한 뒤, 궁내 건물은 물론 궁 뒷산 이름까지 '송악산'이라고 개경의 것과 똑같이 이름지었던 그였다. 그렇지만 두고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종이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었다.  

'몽골과 대치하며 고려란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거늘 내가 한갓 슬픔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린 반드시 몽골을 몰아내고 개경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그러려면 왕실과 백성들이 건강해야 한다.' 

한참동안 상념에 잠겨 있던 고종이 명했다.  

"우리가 몽골과 맞서 싸우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 그대들은 하루속히 우리 왕실과 백성들이 건강할 수 있는 책을 발간하도록 하라." 

금속·목판활자와 고려지, 먹 등 인쇄를 위해 당대 최고의 인쇄술을 갖고 있던 고려가 책 하나를 발간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인쇄술이 발달하다보니 고려는 많은 서적을 찍어냈고, 그 가운데 하나가 1236년 펴 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이란 책이다.

고려시대 국왕의 평균수명은 42.3세였으나 후대에 갈수록 수명이 길어진다. '무신정권기'(1170~1270)를 기준으로 고려 국왕의 평균 수명이 평균 39.3세였으나, 그 이후 49.79세로 늘어나고 고려 후기로 갈수록 유아사망률이 감소한 이유는 <향약구급방>이란 의료서 때문으로 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박종기 강화고려재단 대표이사는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향약구급방은 당시 의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쳐 고려후기 평균수명 증가와 인구 증가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 책이 발간된 시기는 무신정권기 후반이던 1236년이고, 때는 고려왕조가 강화로 천도해 몽골과 치열하게 맞서고 있었던 시기다. 1236년은 '팔만대장경' 판각을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은 우리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의료 관련 책으로, 향약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인 의약서이다. 누가 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팔만대장경' 판각을 총지휘한 '대장도감'에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향약'은 고려, 즉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약재를 가리킨다. 이와 반해 중국에서 수입하는 약을 '당재'(唐材)라고 불렀다. <향약구급방>이 출판된 이유는 외국산 약재들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로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의 약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상·중·하 3권1책으로 펴낸 이 책의 상권은 '18목', 중권은 '25목', 하권은 '12목'으로 돼 있다. 상권은 식독·육독·균독·백약독·금창·치감 등 18개 질병치료, 중권은 정창·벌지창·소변하혈을 비롯한 25개 질병치료, 하권은 부인잡방, 소아잡방, 중풍, 두통 등 12개 질병에 대한 각각의 치료법을 담고 있다. 각 병명에 해당하는 다양한 방법의 치료법을 기술하고 있으며, 식전·식후·공복과 같은 복약방법까지 제시한다. 또 복약시 주의사항과 향약 180종에 대한 쉬운 이름, 약의 맛, 약의 독성, 채취방법까지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급성 질병에 대해 백성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로 치료하는 방법을 쉬운 말로 표기했다는 점에서 13세기 국어연구에도 큰 역할을 하는 책이다. 즉 약재나 병의 한자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차자(借字·한국식한자)로 병기함으로써 민간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의술을 통한 민본정신이 깃든 '민간의술서'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 책의 고려시대 원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다만 1417년 간본 1부가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 궁내청 서릉부(書陵部)에 보관돼 있다. 서릉부는 일본의 황실 관계 문서나 자료 등의 관리와 편수, 그리고 능묘(陵墓)의 관리를 행하는 궁내청 내부 부국의 하나이다.

'충렬사'와 더불어 '대장도감'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강화군 선원면 '선원사'는 을씨년스러운 정적에 휩싸여 있다. 780년 전,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주조해 조판하고, 먹을 갈아 고려지에 찍어내는 세계 문명의 선각지였던 땅. 수백년 전, 고려인들이 발 딛고 살아가던 땅 위의 존재라고는 오직 봄싹이 움트길 기다리는 짚푸라기 같은 누런 풀잎들과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 뿐이다. 선원사터를 걷는데 얼굴 위로 차가운 결정체가 와 닿는다. 눈이다. 선원사터 위로 안개꽃처럼 흩날리는 새하얀 눈송이들. 저 눈꽃들은 어쩌면 고려인들의 영혼이 아닐까.

/글·사진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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