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2631.html
벌써 10여년 전 이야기다. 이우학교가 도심에서 떨어진 산속에 있다 보니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많았다. 봄볕이 좋은 휴일, 다섯명의 아버지들과 함께 자전거 거치대를 만드느라 뚝딱거리고 있었다. 학교 탐방 차 멋진 세단을 몰고 온 분이 작업하던 우리를 가리키며 아이에게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했다. 이 일화는 두고두고 술자리의 안줏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2월말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발표한 2014년 학교진로교육 실태조사결과를 보고 비슷한 씁쓸함을 느꼈다. 그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 1위는 교사였고, 그들의 직업 선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는 부모였다.
이렇듯 어른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집단적 두려움에 사로잡혀 안정된 일자리를 자녀에게 권할 때 대다수 아이들은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설령 원하는 직업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 직업의 수명은 길어봤자 10~20년이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가 아이들에게 던지는 물음부터 재고해봐야 한다. 얼마 전 아들이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나눴던 얘기를 전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너 커서 하고 싶은 일이 뭐니?”라고 물으면 참 난감하다고. 뭔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만 할 것 같은데 그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를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해진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학생들에게 종종 “네 꿈이 뭐니?”라고 물었던 게 떠올라 속으로 뜨끔했다. 부담 주는 질문을 던지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꼴이라니….
더욱이 기술의 발달과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많은 직업들이 속속 사라지고 있다. 반면 지구 온난화, 자원 고갈, 경제적 양극화 등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유엔미래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는 사회적 기업의 수가 전체 기업의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공정여행을 안내하는 ‘트래블러스맵’, 팬클럽을 모집하여 배고픈 화가들의 문제를 해결한 ‘에이컴퍼니’, 윤리적 패션을 실천하는 ‘오르그닷’과 같은 멋진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럼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진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최근 여러 학교에서 강의 위주의 수업을 탐구·발표, 협동학습, 토론식 수업으로 바꾸고, 학생 자치를 강화하고, 행사를 스스로 기획·진행하게 함으로써 미래 사회의 핵심역량을 기르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학교 혁신이 여기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특히 중고등학교의 경우 사회적 문제를 발견하는 감각을 키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정과 상상력을 기르도록 힘써야 한다.
사실 이우학교도 작년부터 이런 역량을 어떻게 키워줄까 고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작년부터 프로젝트 수업의 형태로 ‘사회체험’ 과목을 운영한다. 교사들이 각각 대안 예술, 도시 공동체 만들기, 적정기술 … 등등의 주제로 수업을 개설하면 학생들이 이론 학습을 한 뒤 관심 있는 사회적 문제를 골라 그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를 해결한 선배를 만나 한 수 배우기도 하고, 지역사회의 여러 인맥을 활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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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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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웃과 세상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착한 싹이 자라고, 내면의 힘이 커진다. 더구나 혼자 하는 고민이 아니라 함께 꾸는 꿈이 될 때 훨씬 위력적이다. 뒷북치지 말고 아이들을 큰 그릇으로 키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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