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로서 말하다
제54회 전국도서관대회 세미나 : 사서없는 도서관, 미래는 없다
지난 10월 26일 킨덱스에서 열린 제54회 전국도서관대회에서 경기도 사서협의회 · 경기도 사서연구회 · 서울시 공공도서관 협의회 주관의 세미나 ‘사서없는 도서관, 미래는 없다’에서 ‘사서로서 말하다’를 발표한 충청남도남부평생학습관 민지영 사서의 발표 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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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충청남도교육청 산하 남부평생학습관에 근무하는 사서 7급 민지영입니다. 아직 휴가도 쉽게 못쓰는 저경력자인 저에게 감히 전국의 많은 도서관계 참여자가 모이는 자리에 발언기회를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래 발제의 제목은 “충남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의 기형적 인력구조와 사서업무과중”을 지적하고자 하였습니다만, 막상 준비하다 보니 지나치게 협소한 이야기를 드리게 될 듯하여 조금 변형하여, 선배님과 후배 사서님들께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라는 이름으로 일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10년간, 계속해서 실망하고 좌절해 왔던 경험으로, 여기 계신 누군가에게는 선배노릇을 해 왔고, 누군가에게는 “불평 많은 후배”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지난 10년간의 실망과 좌절과 분노를 담아 하소연하는 공공도서관 사서로 서 있습니다.
올해 도서관계의 가장 큰 이슈였던 “공공도서관 사서배치기준안”의 논의 과정에서 얻었던 성과 중 하나는, 우리들이 그간 짐작만 해 왔던 도서관계의 오래된 문제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도서관의 기형적 인력구조인 1관당 사서직 3.7명 대 자료실 용역직원이 5.6명인 현실을 지적해 주셨고, 정규직원 총수 8.2명 중에 사서현원이 그 절반인 4.3명이며, 법정인력에 비해서는 평균 19.2명이 모자라다는 현실, 봉사대상 인구가 1관당 52,079명이며, 사서 1인당 12,153명이 대상이라는 사실도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동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도서관의 현 상황, 우리 관장님들이 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땐 화장실도 치우고 천장 페인트도 발랐어-라고들 하시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저희는 아, 그래도 예전보단 도서관 현장이 나아졌구나,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사서 충원율이 1991년 44%에서 2016년에는 18.2%로 줄었지 뭡니까. 그 덕분에, 저는 아직 천장페인트는 칠해본 적 없는 10년차 사서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저는 1년 중 약 넉달동안 매주 토요일에 나와 근무를 서야 했고, 나머지 8달은 격주 근무를 하며, 주중 야근과 출장으로 1년에 한 두달치 월급 정도는 가뿐히 초과수당으로 벌고 있습니다. 심지어 연가사용율 때문에 돈 못받고 일하는 날도 있는데 말이죠. 그러니, 제가 비록 코피 흘려가며 일하는 사서라고는 말 못해도, 월급도둑은 아니라는 심정으로 몇가지 도서관계에 쓴 말씀을 올릴까 합니다.
대체 사태가 여기까지 온 원인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자신들의 연구가 곡해되고 엉뚱하게 바뀌어도 일단 멀뚱멀뚱 보고 있었던 학계인가요? 아니면 오로지 수치에만 의거해 아무렇게나 조직개편을 하려 든 문체부인가요? 아니면 2006년 법 개정 이후 한번도 사서정원확보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처음 관련공문 보내신 협회인가요? 그도 아니면, 누가 도서관이 이래야지 하면 그 말이 맞든 말든 일단 예예 하며 굽신거리고, 이용자보다는 내빈에게 신경쓰고, 대출자 수를 조작하면서 성과급에 연연하고 부하직원을 성차별하고 업무의 70%는 후배 사서 하나에게 넘기고 나머지 업무 30%를 다섯명쯤 되는 계약직과 행정직과 시설직에게 나눠주셨던 선배사서님, 관장님들이신가요? 누굴 비난해야 할까요? 제가 누굴 가장 비난하는지 아세요?
지난 10년간 도서관 현장에서 일하면서 주변 사서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었던 저입니다. 제 책임입니다. 저는 더 목소리를 높여야 했습니다. 사서직 자리에 사서 자격증 대신 평생교육사 자격증 소지자를 들여보내는 선배들에게 “그 두 가지는 다르다. 그러니 가뜩이나 모자라는 사서 자리 뺏지 말라”고 소리 높였어야 했습니다. 육아휴직으로 떠난 동료 자리에 대체인력 말고 법대로 정원을 늘리라고 요구했어야 합니다. 야간 근무 인력을 뽑는 이유가 사서가 어두운 밤에 집에 갈 때 무서워할까봐 라고 답하는 선배 사서에게 “도서관 업무의 70%가 사서 단독 업무이고, 충남은 14개 도서관이 죄다 사서 한 명밖에 없어서, 아니면 있어도 쓸데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 일이 많아서 야근하는 거니, 그렇게 걱정되면 일을 나눠 할 동료를 주세요.” 라고 얘기했어야 했습니다. 동기 열명 중에, 열정 넘치던 사람들이 과로로 졸다가 야간에 교통사고로 드러누운 사이에 “도서관 일은 쉽잖아요” 라고 당당히 얘기하는 대체인력, 도서관에 “도”가 길“도”인지 그림“도”인지 도를 아십니까의 “도”인지 구분도 못하고 행정에서 전직해오는 짐덩이 동료로 대체되어 남은 사서들이 만성질환에 걸려가고, 결혼과 출산이 아니면 몇 년간 휴가도 못가고 병만 쌓아가는 현실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어야 했습니다. 서른 다섯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던 바로 오년 전에, 저는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습니다. 이딴 직장 때문에 제가 남보다 일찍 죽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어야 했고, 제 후배들에게도 너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도서관, 은행 다녀오는 거 말고는 도서관 홈페이지 오타 하나 안고치는 행정직을 위해 자신의 연애와 가정을, 저녁이 있고 주말이 있는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아직도 MARC을 손으로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 선배에게, 바코드와 RFID 시스템을 구분 못하는 윗분에게, 현재 도서관계에 중요한 것은 분류표 하나로 정리되는 책이 아니라 그 컨텐츠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며, 이것을 위해 전거와 시소러스에 신경써야 하고, 똑같은 책을 수십개의 목적으로 분류한 다양한 목록이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본래의 도서관 역할을 하자고, 한 번 해보자고, 수치 말고 질에, 서비스에, 이용자에, 우리의 진짜 목적에 집중해 보자고 말해야 했지요.
저는 그러지 않았고, 그 결과로, 십년의 실망과 좌절과 분노의 대상이 되어 이 자리에서 말씀 하나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침묵했고, 그 침묵의 대가로 2년 전에는 문체부의 “알아서 기어”라는 “공공도서관 추천도서 관련 협조요청”- 혹 기억 안나실까봐 설명하자면 어떤 시민단체에서 추천도서가 좌편향이라고 지적하자 문체부가 “도서관이 알아서 사전 검열 좀 하세요”라고 공문을 보냈던 일입니다.- 이 협조요청이라는 이름의 공문을 받고 분노했었으면서, 그랬는데도 또 바쁘다는 이유로, 당장의 내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더 침묵했었습니다. 그리고 제 침묵의 대가는 현재 직장을 가진 제가 아니라 제 후배들이 치를 뻔 했죠. 이번엔 다행히 문체부에서 개정 의견을 철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철회 공문은 충남에는 안 와서 전해 들은 겁니다만. 하지만 이와 같은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고, 다음번에는 더욱 교묘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시겠죠. 그에 대항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말씀드리고, 이것으로 발제를 할까 합니다.
미래를 위해, 미래 세대의 사서와 도서관을 위해, 현재의 제 동료들, 후배와 선배들께 말씀드립니다. 도서관의 본질로 돌아갑시다.
공공도서관은 정보를 찾고자하는 자들을 위해 열려있어야 합니다. 도서관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시민의 안전과 이익을 위한 기관이자 올바른 사회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자들의 편에 서야 합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자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기관이어야 합니다. 정당한 방식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자 하는 자들을 위해 일할 때, 도서관의 존재 가치는 증명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 스스로 법을 지켜야 합니다. 선배님들. 제발, 어쩔 수 없어, 위에서 안 들어줄 거야, 라는 말 좀 그만하십시오. 목소리를 높이세요, 여러분은 저보다 몇배나 더 긴 시간을 열악한 도서관 시스템 속에서 그나마 포기하지 않고 후배들을 위해 노력해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 열정과 노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 나은 도서관을 위해, 법을 지키자고 말해 주세요. 지금까지 선배들이 희생하셨다는 이유로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재의 행정체계에, 시스템에게 분노하셔도 됩니다. 좌절이 쌓이고 쌓여 지레 포기하신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우리 후배들은, 선배님들이 싸우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희망을 가진다는 것도 알아주세요.
후배님들, 선배들에게 실망한다는 거 압니다. 대체 그 시간동안 뭘 한 거야, 라고, 십년이나 현장에 있었으면서 기껏 한다는 게 애들 견학코스에 도서관 홍보 동영상 하나 끼워 넣는 거냐, 라고 어이없어 한다는 것을 압니다. 도대체 FRBR이 언제적 개념인데 여전히 눈을 깜빡이는 선배들이 우습고, 표현형과 구현형을 여전히 구분 못하는 우리를 보며 내심 혀를 차는 것도 알고, NFC와 RFID를 출입문 감응시스템으로 아는 선배들이 한심하다는 거 압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현재의 도서관은 끝없이 좌절당하면서도 조금씩 노력해 온 선배들의 발자취입니다. 막말로, 지금은 도서관 천장은 안 칠하잖아요. 거미줄은 치웁니다만. 화장실도 치웁니다만. 그래도. 그러니 조금만 더 힘냅시다. 귀 막고 눈 가린 선배들에게 말을 해 주세요. 우릴 조금 더 가르쳐 주세요. 여러분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해서 들을 기회를 주세요.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무기가 될 테니, 선배들이 듣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우리 모두가 희망을 버리지 말고, 다음 번 공격에 대비해서,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길 바랍니다. 도서관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조금 더 정의로운 곳으로, 조금만 더 정당한 곳으로 바꾸어 나갑시다. 그리고 오늘은 그러기 위한 방안을 의논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http://m.shjangsu.com/8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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