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이 일어난 지 1년이 됐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 혁명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사회학 연구자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싶다.
촛불혁명에 대한 가장 온당한 평가로 나는 독일 에베르트재단이 촛불혁명에 참여한 우리나라 국민을 올해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들고 싶다. 에베르트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평화적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대한민국 국민의 촛불집회가 이 중요한 사실을 전 세계 시민들에게 각인시켜 줬다”고 말했다.
에베르트재단이 적절히 지적했듯, 촛불을 관통하는 정신은 민주적 참여권과 생동하는 민주주의다. 지난해 수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파괴한 국정농단 세력을 심판하려는 적극적 참여와 정당한 저항의 권리 표출이었다. 이 당연한 권리의 행사는 ‘인민(demos)의 지배(kratia)’라는 민주주의(democracy) 본래의 이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였다.
민주주의의 요소로 ‘마음의 습관’을 주목한 이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적지 않은 국민들은 마음이 찢겨지고 상처받았다. 공동체의 규범과 질서를 제공해야 할 정부와 정치가 더 이상 희망을 안겨주지 못할 때 마음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적 기초마저도 부정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 국민들은 촛불이라는 ‘마음의 저항’의 빛을 환히 밝힐 수밖에 없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 까닭은 ‘마음의 정치’에 있다. 이기주의와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참여와 연대의 경험을 통해 깨어 있는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에 요구되는 마음의 정치라고 주장한 이는 파커 파머다. 마음이 변화해야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고, 행동으로 나타나야 정치를 바꿀 수 있다.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든 시민들은 두 가지 점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참여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게 하나라면, 나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다는 게 다른 하나다. 참여와 연대의 자각 및 실천은 다시 한번 강조하면 민주적 참여권과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중핵을 이룬다.
1년 전, 촛불시민들의 요구는 크게 세 가지였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민주화’, 낡은 질서를 거부하고 해체하는 ‘적폐청산’, 민주주의의 성숙을 추구하는 ‘정치개혁’이 그것이었다. 촛불혁명의 결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요구들을 국가비전과 국정과제에 담았다. 첫 번째 국정목표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이고, 첫 번째 국정전략은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이다. 그리고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첫 번째는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다. 더하여, 대통령 어젠다라 할 수 있는 4대 복합·혁신과제의 첫 번째는 ‘불평등 완화와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이며, ‘국민주권적 개헌 및 국민 참여 정치개혁’은 일곱 번째 국정과제다.
이러한 국정목표와 전략과 과제의 선정이 물론 정부의 성공을 절로 담보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국정 운영의 결과다. 정부든 국회든 정치는 기본적으로 정책의 결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책임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5월10일 출범 이후 6개월에 가까운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 불평등 완화, 참여의 제도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최저임금 상승,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갈등 해소 등은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다. 국회를 우회하려는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앞서 말한 ‘생동감 있는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의민주주의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일면적인 시각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참여와 연대의 실현, 다시 말해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국민 정책제안의 제도화, 다양한 거버넌스의 활성화, 숙의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의 정착 등에 달려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촛불혁명 1년을 돌아볼 때 분명한 사실은 지난 1년간 결코 적지 않은 국민들의 마음이 변화해 왔다는 점이다. 그 마음의 한가운데 놓인 것은 내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의 자각이었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했더라도 문재인 정부 역시 주인이 아니라 대리인일 따름이다. 집권을 마무리할 때까지 정부는 이 점을 부디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그것이 바로 촛불혁명의 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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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311531001&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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