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일 수요일

‘학교 안 배움’만으로 충분하다 / 정용주 오늘의교육 편집위원장

서울시교육청에서는 2017년 학생 참여형 놀이터 만들기라는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청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여서 놀이터 시설 점검 등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군대·감옥을 닮은 학교의 공간 구조를 학생 중심의 소통공간으로 바꾸고, 각종 안전사고 예방이라는 논리로 학생들이 놀이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육청 프로젝트가 학생들을 ‘배우는 주체’로 접근해 어떻게 하면 즐겁게 배움의 과정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는 데 반해, 이 프로젝트는 학생들을 ‘놀이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 의미가 있다.

학생을 놀이하는 주체로 본다는 것은, 놀이와 배움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을 의미한다. 즉, 놀이를 정규교과에서 오는 지긋지긋한 긴장을 다소간 풀어주는 일종의 기분전환과 공부를 위한 충전 정도로 생각하는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놀이하는 주체로서 아이들은 능동적 신체활동이 왕성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연적 리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얌전하게 교실에 앉아 본능적 에너지와 능동적 성향을 억압하기는 무척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교육학의 흐름은 학교를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아이들의 신체적인 힘을 의미있게 활용하는 교육을 넘어서길 권한다. 오히려 그 힘을 자유롭게 발휘하도록 해서 자연스레 배움이 일어나는 시공간을 설계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시공간을 재구조화하는 이유는, 놀이가 배움의 수단이 아니라 배움이 놀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배움이 놀이 속에 통합되어 있어서다. 배움이 놀이하는 주체 속에 통합되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배움 자체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배움에서 멀어지는 학생이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과 교육청 단위의 마을교육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의미있는 접근이다. 교육생태계를 자연적 리듬에 따라 설계했기 때문이다. 놀이와 통합된 능동적 배움 활동 속에서 학습자가 풍부한 의미가 내재된 학습경험을 주도적으로 재구성해 나가게 해서다.

그런데 최근 강조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은 학생들을 놀이하는 주체가 아닌 학습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보면, 학생들이 목적 없이 단순 재미로 마을에서 뛰어놀고 방황하는 쉼터가 되도록 마을을 디자인하지 않는다. 교육과정과 연계해 또 다른 배움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로생태계, 독서생태계, 체험학습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 이렇게 마을이 또 다른 학교가 되면 공부하는 마을에서 놀이는 여전히 의미없는 소란으로 치부되고, 신체적 움직임, 놀이, 능동적 활동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학교와 연계하거나 학교를 넘어 마을에서 의미있는 배움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배움은 학교 안에서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 학생들은 충분히 많은 시간을 배우는 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은 배움을 확장하기보다 여유와 놀이를 즐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마을은 배움의 공간으로서 마을교육공동체가 아니라 놀이의 공간으로서 마을놀이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달리 말해 마을에 즐겁게 참여하고 배우는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지는 것보다, 그냥 뛰어놀고 쉬는 놀이터 하나 만들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6687.html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