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명칭의 유래
조 재 순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현 동경대학 문헌정보학 박사과정 재학
「도서관및독서진흥법」 제2조 1항에 의하면, 도서관이란 ‘도서관자료를 수집·정리·분석·보존·축적하여 공중 또는 특정인의 이용에 제공함으로써 정보이용·조사·연구·학습·교양 등 문화발전 및 평생교육에 이바지하는 시설’을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 ‘도서관’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서구식 도서관이 창설되던 개화기 초기에는 도서관의 규모도 작았거니와 일정한 명칭 없이 그때 그때 적당한 명칭을 붙였다. 예를 들면 서적관(書籍館), 서적원(書籍院), 집서원(集書院), 장서관(藏書館), 서적고(書籍庫), 서고(書庫), 문고(文庫), 서관(書觀), 서적종람소(書籍從覽所) 등이다. 도서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유길준은 1895년에 출판된 『서유견문』에서 도서관을 가리켜 ‘서적고’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유길준은는 1881년에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된 후 慶應義塾에 입문하여 그 설립자인 福澤諭吉의 집에 기거하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유길준은 福澤의 『서양사정』(1866)에 나오는 ‘문고’라는 용어를 기초로 ‘서적고’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국·공·사립 공공도서관을 소개하고 납본제도에 관해서도 언급하는 등 도서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도서관이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사용된 것은 광무 10년(1906)이다. 1906년 2월 초, 한국도서관의 필요성을 통감한 이범구, 이근상, 박종화, 윤치호 등 도서관 설립에 뜻을 모은 이들이 그 설립을 발기하고 한국도서관 창설을 위한 평의회를 구성하였던 것이다. 같은 해 2월 12일자 황성신문은「韓國圖書館」이라는 제목으로 그 설립 경위를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世界各國에 文明知見의 發達기 爲야 學校와 一般이 圖書館 或 書籍館 等을 設고......(후략)’
이것이 기록상에 보이는 ‘도서관’이라는 용어의 최초의 등장이다. 이것은 을사보호조약을 비판한 ‘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로 정간 처분당한 황성신문이 속간되면서 보도한 첫 기사였다. 한국도서관은 그 후 3월에 大韓圖書館으로 개칭되어, 사회 각계 각층 유지들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발기인들은 평의원 회의를 구성하고 임원진을 선출하였다. 그 결과, 도서관장에는 탁지부 대신 민영기, 평의장에는 궁내부 대신 이재극, 서적위원장에는 학부대신인 이완용, 평의원에 민상호, 윤치호 등 25명이 선출되었다. 그 후 황성신문의 기록에 의하면, 1909년 4월에 기존의 종친부 건물을 도서관으로 이용하여 ‘대한도서관’이라 칭하고 이를 궁내부에 예속시키며, 북한산성의 사책을 이 곳으로 운반해 온다는 내용이, 1910년 3월의 기사에는 확장공사가 끝나는 대로 일반에게 열람시킬 것이라는 내용이 실렸다. 이 대한도서관의 성격에 대하여 구왕실도서관의 후신으로 보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한국 최초의 국립도서관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그 성격이야 어떻든 우리나라에서 도서관이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도서관임에는 틀림없다고 하겠다.
우리가 오늘날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사실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이 만들어낸 한자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영어의 politics, economy, society 등을 정치, 경제, 사회 등 새로운 한자어로 탄생시킨 것은 일본이며, 이처럼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 오히려 한자를 역수출한 경우도 많다. 영어의 library와 librarian이라는 용어도 19세기 말엽 일본에 수입되어 그에 해당하는 ‘도서관’과 ‘사서(司書)’라는 용어도 일본에서 만든 번역 한자어이다. 일본은 明治 5년(1872)에 문부성이 처음으로 ‘서적관(書籍館)’이라는 공공도서관을 설치한 데서 현대 도서관이 비롯되고 있으나 그 때까지만 하여도 ‘도서관’이라는 명칭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그 후 明治 13년(1880)에 ‘書籍館’을 ‘東京圖書館’으로 개칭하면서 이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光緖 24년(1898)에 湖南지방에 공공도서관을 새로 설치함으로써 현대적 도서관의 시초가 되었으며 이 때에 도서관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도서관이라는 말은 같은 한자권 국가인 한국 뿐 아니라 중국에도 수출된 한자어로, 동양 삼국의 발음 또한 서로 비슷하다. 이는 쇄국정책을 폈던 우리나라나 서양문명에 대한 개방이 늦었던 중국과는 달리, 일본은 서양문명에 일찍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의 각종 용어를 번역하여 일본화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1906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도서관’이라는 용어는 ‘사서’와 더불어 일제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용되고 있다. ‘사서’는 미군정기 때 잠시 圖書員, 副圖書員이라는 官名으로 불리웠던 적도 있다. 그러나 1949년 1월 한국도서관협회의 건의로 다시 사서관, 사서로 개정되었다. 이것은 제1회 전국대회의 의결사항으로, 그 이유는 도서원 등의 용어가 외국어의 직역어이며 도서관 직원의 불만도 매우 커서 우리나라 및 동양 각국에서 종래 사용해 오던 용어인 사서관, 사서가 좋겠다는 것이었다. 한자권 국가에서 통용되는 ‘도서관’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알기 어렵거나 모른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사서라는 명칭은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한 용어인 것 같다. 지금도 ‘사서가 뭐예요?’라고 묻는 이들이 꽤 있으니 말이다. 최근 사서를 대신하는 명칭으로 정보전문가 등 멋진 이름의 용어가 속출하고 있다. 사서라는 명칭이 꼭 일제의 잔재이기 때문에라기보다는 우리의 뛰어난 조어력(造語力)으로 일반인들도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새로운 직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출처 http://www.nl.go.kr/pds/research_data/text/newsletter/200403/200403_histor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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