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선생의 뜻을 생각하는 벗이 보내온 편지를 여기에 옮겨놓도록 하겠습니다. 이시우 사진작가가 '늦봄 통일상'을 받을 때 이정희 국회의원이 축사로 했다는 말입니다. 그 한 대목은 이렇습니다.
“무슨 해결책도 특별히 없을 것 같은 막막한 현실 앞에서 머리로 사고하는 자는 등 돌리고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뇌의 온도보다 심장의 온도가 더 뜨거운 사람만이 절벽 같은 현실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 간절함만이 머리로 발견할 수 없는 결을 찾아낸다는 것을, 아니 만들어낸다는 것을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다.”
'절벽 같은 현실'이라는 구절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늦봄 통일상`- 이정희 의원 축사
그리운 이름, 가야할 길은 멀고 힘은 잘 모이지 않는 때,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분, 문익환 목사님의 뜻을 기리고 이어나가는 이 귀한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이시우 작가님의 늦봄 통일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게 된 것은 국회의원이라서가 아니라 이시우 작가의 변호인으로 1심 재판을 함께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2007년 한 해, 이시우 작가의 변호인으로 살았습니다. 그 해에 저는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지뢰피해자 문제, 미군기지 문제, 금지된 열화우라늄탄을 비롯한 무기와 핵잠수함 정박 문제, 한미연합사 문제 등 수많은 한미관계의 쟁점들과 미세한 법적 논점에 대해 어떤 정치학자도 밝혀내지 못한 문제를 파헤치고, 어떤 법률가도 하지 못한 법률적 분석을 해내고 있는 예술가를 보며, 법률가로서 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책임을 느꼈습니다.
이시우 작가의 변호인이 되고서야, 저는 정체에서 벗어날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시우 작가를 볼 때마다 깨우쳤습니다. 서울구치소 접견실에서 헤어질 때, 저는 돌아서기 바빠 인사조차 하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이시우 작가는 늘 너무나도 공손하게 큰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이 작가의 재판은 보수적인 어르신들이 재판정의 절반을 넘게 메우는 특별한 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열릴 때마다 이 작가를 비난하러 오는 이분들께도 지극히 공손하게 인사드리고 설명하는, 흔치 않은 국가보안법 피고인이 바로 이 작가였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마음, 겸손한 자세가 있어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이시우 작가는 제게 희망을 심어준 분입니다. 체포된 날 밤,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피해자가 되겠다고 하셨던 이 작가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고 “국가보안법,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50일의 극한의 단식을 해내면서도, 그 몸으로 해낸 재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하고 명쾌하며 재치 있는 재판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 덕분에, 공판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서면을 낼 때마다 저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장벽에 송곳 하나 찔러 넣어서라도 진심과 열정을 다하면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시우 작가 스스로도, 이 사건에 관여한 십여 명이 넘는 민변 변호사들도 모두 이 사건을 “국가보안법의 백화점”이라고 불렀습니다. 3년, 4년 동안 이 작가를 미행하고 감청하면서 그 기간 동안 이 작가의 모든 행동과 집필과 만남을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전부 무죄로 판단되었습니다.
아직 사건은 대법원에 있습니다만, 이 작가의 1심, 2심 판결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평화운동의 필수 요소인 정보수집의 합법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군 관련사항, 안보문제 관련사항은 정부와 군의 비밀주의에 따라 감추어지고 정부와 군의 이해관계에 맞는 일부 사항만 공개되어 온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감시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정부와 군이 언론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뭘 안다고 그러느냐며 몰아세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평화운동은 무엇보다 정부와 군에 대한 감시와 정보 수집, 분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판결은 정부나 군에 대한 정보의 수집, 분석을 평화운동의 필수요소로서 합법적인 것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평화적 생존권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평화적 생존권을 가장 잘 보장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정보를 수집할 권리가 그 내용의 하나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시우 작가가 제게 남겨주신 말씀으로 축사를 맺으려고 합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단식할 때 남기신 말입니다. “무슨 해결책도 특별히 없을 것 같은 막막한 현실 앞에서 머리로 사고하는 자는 등 돌리고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뇌의 온도보다 심장의 온도가 더 뜨거운 사람만이 절벽 같은 현실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 간절함만이 머리로 발견할 수 없는 결을 찾아낸다는 것을, 아니 만들어낸다는 것을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어내는 모습을 제가 조금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적어도 그 절반은 이시우 작가가 저에게 보여주신 간절함과 희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시우 작가의 정성과 열정이 앞으로 남북해외동포들을 더 많이 자극하고 이끌어가며 문익환 목사님의 염원이셨던 겨레의 통일을 앞당길 것이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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