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3일자 <한겨레>의 칼럼, 김형태 변호사가 쓴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에게'. '높은 자리'는 권력을 말한다. 이 칼럼은 자리와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권력자들에게 주는 쓴소리다.
"자리에 합당한 그릇이 못 되는 이들은 그만 시험에 빠지고 만다. 자리와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이 바로 그 자리인 줄 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자신은 영원히 검사고 장군이고 대통령으로 남을 것처럼 착각한다."
그래서 궁력거중(窮力擧重)을 이야기한다. 있는 힘껏 무거움을 들어올려야 한다. 자기가 들 수 있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을 감당하려 하면 탈이 난다.
그런데 이 칼럼의 '맛'은 "스님, 신부, 목사 자리도 무거운 자리다"라고 선언하는 데 있다. 스님과 신부와 목사. 지도자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 앞에서 서서 말하는 이를 뭉뚱그려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샤를 드 푸코 이야기가 등장한다. 김형태 변호사가 전하는 샤를 드 푸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스님, 신부, 목사 자리도 무거운 자리다. 신자들은 이 자리에 앉은 이들을 예수님, 부처님 모시듯 떠받드니 나는 아니라며 아래로 내려와 앉기가 쉽지 않다. 1900년대 사하라사막의 성자로 불렸던 샤를 드 푸코 수사는 그게 두려워서 신부 되기를 마다하고 이리저리 피해다녔다. 그는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길 닦는 공사 현장 노동자로 일했다. 어머니가 그런 아들을 보고 지도신부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기왕 수도자가 되려면 신부나 주교가 되어 청중들에게 감동 어린 설교를 하고 그 영향력을 좋은 일에 사용하면 안 되나요? 그 배움, 배경을 다 버리고 왜 하필 원주민과 구별도 안 되는 막일꾼으로 저리 세상을 보낸다는 말입니까?” 푸코는 마흔둘의 늦은 나이에 신부가 되기는 했지만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회교도 원주민들과 함께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같이하다가 강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투아레그족 원주민들은 가톨릭 신부인 그에게 회교도 은수자를 뜻하는 ‘마라부트’라는 존칭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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