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적은 짤막한 에세이 '학술 자본과 학술 인프라'라는 글을 읽다 생각나는 것이 있어 이렇게 메모해놓고자 합니다.
박노자는 이 글에서 '학술 자본'(academic capital)이 축적 내지 확대재생산되는 방식과 관련해서 미국이나 캐나다, 특히 밴쿠버와 시애틀 지역의 현실과 유럽 사이의 차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미국 쪽 학계에서는 유럽과 다르게 문학작품의 번역을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학술적 권위의 축적 구조는 인문학의 학술 자본을 자연과학 내지 이공계의 학술 자본과 같은 것으로 만드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소수의 학계에서만 소비할 수 있는 '논문', 대학출판부에서 출판한 학술 단행본만이 '학술 자본'으로 축적되는 구조라는 것이죠. 그래서 대중화된 학술 단행본이나 문학작품 번역은 사실상 '학술 자본' 축적의 도구로 전혀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동료들끼리만 볼 수 있는 고난도, 고도 전문화된 문건들만을 "학술"로 취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사회적 위치가 취약한 인문학이 그 위치가 훨씬 더 강한 물리학 등을 "벤치마킹"한 부분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중세로의 회귀"와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중세의 서구 학자란 나전어로 성경책이나 아우구스티누스 등 교회 초기 교부들의 저서에 주석을 붙이는 사람이었고, 나전어를 모르는 대중들과 소통할 기회조차 없었죠. 그러니까 나전어를 물리치고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 마틴 루터를 두고 "문화적 혁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무식한 백성"들과의 소통을 일단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쉽게 쉽게" 언문으로 냈던 <독립신문>이나 <제국신문>은 그런 면에서 문화적 혁명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 인문학계는 오히려 필부가 감히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성학십도>의 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학자들이 자기네들끼리 아주 전문적인 문제들을 난삽한 전문적 언어 ("심상지리", "담론적 전유의 방식"...)로 토론하고, 백성들이 백성들끼리 바보상자 속에서의 "명품 짐승남"의 "초콜릿 복근"이나 보고 즐기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김남주의 시를 아무리 감동적으로 영역하여 거기에다가 남민전의 영웅적 활약에 대한 해석까지 붙여 아무리 잘 내도, 그 누구도 이와 같은 한국 문학의 열성자에게 "점수"를 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남주의 시상들에 대한 아주 전문적인 논문을 써서 운좋게 "위치"가 높은 학술지에서 발표하면 몰라도 말씀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인문학'이라는 무엇인가, '인문학자'란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박노자는 "인문학자를 '앎'의 영역에서 전면적 '해방'의 가능성을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앎의 심화'(전문적 작업)과 병행해서 '앎의 대중화' 그리고 '앎을 통한 저항의 조직' 등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번역', 특히 문학작품 번역은 국가와 자본이 그어놓은 국경을 넘어 착취자에 대한 공동 연대를 만들어내는 "아주 중요한 기초적 인문학 인프라' 놓기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최근 이른바 '한국연구재단'(학진)의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학술적 성과가 대중화되는 것이 더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식을 지닌 새로운 필자들이 궁핍해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되짚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중고 학생들만 점수와 성과에 목매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학십도>에서 <독립신문>으로 나아가는 길을 뚫어나가야 합니다. 번역이 국가와 자본이 국경을 넘어 공동 연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 한다면, '앎'의 영역에서 전면적 '해방'의 가능성을 준비하는 일이 단지 번역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시대의 '마틴 루터'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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