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67338.html?_fr=mt5
2014년 12월 3일, 한겨레, 김소연 기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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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한 건물 앞의 직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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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과보호’ 오해와 진실
① 정규직 해고 어렵나…비정규직 해고 워낙 쉬워 착시 현상
② 임금격차 왜 생기나…중기몫 쥐어짜는 대기업전략 탓 커
③ 연공서열 폐해 심각?…300인이상 기업 75.5% 연봉제 병행
④ 정규직 양보하면 해결?…노·사·정이 타협해도 안지키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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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고용 유연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경영계와 정부는 지속적으로 노동격차나 비정규직 확대가 대기업 정규직 탓이라고 공격해왔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문제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해 발생하고 있는데, 대기업 정규직만 부각시켜 ‘낙인찍기’ 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규직 해고는 어려운가?
경영계는 현대자동차나 은행권 등을 지목하며 노조가 강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가 어렵다고 말한다. 고용이 경직돼 있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현대차 노사관계를 10년 넘게 연구한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차가 잘 팔리고 시장 상황이 좋은 탓에 고용이 안정돼 보이는 것이다. 강한 노조가 있었던 대우차(현재 한국지엠)나 쌍용차 같은 대기업도 경영이 어려워지자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제도상으로도 우리나라의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는 쉬운 편에 속한다. 고용노동부가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에 용역을 맡겨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 지표 비교연구’ 보고서(2013년)를 보면, 정규직 집단해고는 34개국 중 4번째로 쉬운 것으로 조사됐다. 개별노동자의 해고는 상대적으로 하기 어려워, 회원국 가운데 22번째로 쉽다. 더구나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법에서 보장된 정리해고뿐만 아니라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고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4월 케이티(KT)는 지난해 적자를 이유로 8300명을 명예퇴직시킨 바 있다.
대기업 정규직의 해고가 어려워 보이는 것은 상대적 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정규직과 중소·영세기업에서 워낙 해고가 쉬워,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보호가 과도해 보이는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일정 부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박태주 교수는 “현대차를 봤을 때 비정규직(사내하청) 문제는 사측의 ‘노동유연성에 대한 욕망’과 정규직노조의 ‘고용안정에 대한 욕망’을 교환한 담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노조는 자신들의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을 위해 비정규직 사용을 용인하고, 경영진은 이를 통해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희생 위에서 기업과 정규직이 ‘공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임금격차 원인은 무엇인가?
오이시디 자료를 보면, 한국의 임금불평등(하위 10% 임금 대비 상위 10% 임금)은 2011년 기준 4.85배로 33개 회원국 중 세번째로 높다. 대기업 임금을 100으로 놨을 때 중소기업 쪽은 64.1이고, 정규직이 100일 때 비정규직은 49.9를 가져간다.
임금격차가 이렇게 크게 벌어진 데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고,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중소기업의 몫을 쥐어짜는 대기업의 경영전략 탓이 크다. 비정규직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혜택을 본 것은 정규직보다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중 임금의 비중)은 1996년 47.6%에서 2012년 45.8%로 하락했다. 전체 노동자 몫은 적어지고, 기업 몫은 커졌다는 의미다. 산업연구원 자료를 보면 4년(2006~2010년) 동안 기업소득은 19.1% 늘고, 가계소득은 1.6% 증가에 그쳤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차별 금지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임금격차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도 크다. 그나마 힘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노조들이 사실상 이 문제를 방치한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대기업-중견기업-중소·영세기업, 원청-1차 하청-2차 하청별로 임금 격차가 커지는 구조 속에서 대기업 정규직의 높은 임금은 중소·영세업체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대적 저임금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 ‘연공서열 호봉제’ 얼마나 심각한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나라 임금구조는 심하게 경직된 연공서열형으로,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사람의 인건비가 신입 직원의 2.8배에 달하는데, 이것은 오이시디 평균의 두 배에 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드물다. 고용부 자료를 보면,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인 장기근속자 비율은 18.1%에 머물고 있고, 평균 퇴직연령이 49살까지 내려갔다.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만이 2.8배에 달하는 연공급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이는 소수다.
이미 상당수 대기업에서는 호봉제에 따른 임금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연봉제와 성과배분제가 많이 도입돼 있다. 300인 이상 기업의 75.5%는 연봉제를 도입했고, 46.8%는 성과배분제까지 활용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임금 격차가 심각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임금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장기근속자를 대거 퇴출시키고 있어 고령자 고용이 극도로 불안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사회학)는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까지 포괄할 수 있는 임금의 기준을 만들고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지켜낼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직능에 따른 임금 등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정규직 양보하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될까?
노사정이 ‘정규직 양보,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타협을 한다고 해도 이런 합의안이 지켜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지금까지 노사정 간에 여러 번의 합의가 있었지만 노동시장이나 노사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노사정위원회에서 대기업 정규직 채용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일자리 협약’을 체결했지만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별 영향도 없는 상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임금피크제 활성화만 해도 기업이 이를 빌미로 정규직 임금만 낮추고, 정년 연장과 정규직 채용을 늘리지 않을 경우 아무런 강제를 할 수 없다.
노사정 대타협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각각의 주체들이 대표성과 영향력이 있어야 하고, 중앙·산업별·지역별로 ‘대화문화’가 축적돼 있어야 한다. 10%의 노조조직률을 바탕으로 한 기업별노조 체계에서는 노사가 전체 노동시장보다 기업 내 임금, 노동조건 문제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다. 중앙에서 노사정이 합의를 해도 기업의 노사가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한계가 크지만 그래도 노사정 대화를 해야 한다면 최소한 민주노총까지는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를 비롯해 우리나라 상당수 대기업노조는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기 때문이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노동시장 격차 문제에 대해 국회를 중심으로 노사정이 논의를 하고, 정부가 진정성 있게 비정규직 현안 문제에 적극 나선다면 언제든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종/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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