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8일, 한국일보 권영은 기자 보도
"학교가 공부만 가르쳐선 안 돼" 학생 위해 빵 굽는 선생님들
서울 중랑중학교 상담복지부장인 남인숙 교사는 지역사회 복지전문가, 전문상담사 등 3명과 함께 매일 아침 30분 일찍 출근해 토스트를 굽는다. 밥 못 먹고 등교하는 학생 48명에게 줄 아침이다. 집에서 저녁을 못 먹는 아이들도 따로 추려 오후에 간식을 주거나 집에 가기 전 불러 빵을 줬다. 처음에는 쭈뼛대며 오길 꺼리던 아이들은 이젠 제 발로 찾아온다. “학교에서 배고프지 않아서 좋다” “아침밥을 먹으니까 기운이 나고, 든든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고 좋아한다.
중랑중은 전교생 738명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 153명이나 될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기운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기 앞서 밥부터 먹이는 게 우선이라고 학교는 결정했다.
대개 밤에 일하고 아침에 자는 부모 옆에서 같이 자면서 학교를 빠지는 일이 잦았던 아이들의 무단 결석률이 학교에서 아침을 먹기 시작하면서 지난해보다 87.5%나 줄었다. 밥을 함께 먹으면서 정도 들었다. 아이들은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오랜 투병 끝에 어머니를 잃은 상호(가명)는 3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보면서 “우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동생들을 한두 대 때리기 시작했고 습관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게 됐다. 이를 알게 된 남 교사가 가정방문을 하고, 동생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의 교사, 지역 복지전문가, 구청 관계자와 머리를 맞대 상담치료를 시작했다. “너도 많이 힘들구나”라는 남 교사의 공감을 얻으면서 상호도 동생을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검사 결과 상호가 경계선 지능(평균 지능과 지적 장애 사이 수준의 지능)이라는 진단을 받아 치료도 받을 예정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적응을 못하던 아이들은 아침 밥을 통해 학교와 관계가 긴밀해지자 학업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교사들이 “우리가 너희를 위해 애쓰듯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자극하면서 아이들은 책을 들기 시작했다. 특히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3학년 학생들에게 집중적으로 ‘프린트 한 장이라도 외우자’고 구슬렀다. 3학년 20명 중 1학기 기말고사 성적이 중간고사 성적 이상인 학생이 15명이었다. 한 학생은 평균이 13점이나 올라 전교 석차가 34등 뛰었다.
남 교사는 “학교에 선생 하러 왔지, 빵 구우러 왔나 라고 생각하면 실패합니다. 아이들 편에서 가장 절실한 것을 제공해야죠”라고 말한다. 학생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사실상 학생의 인생을 좌우하는 곳이다. 공부만 가르쳐선 안 된다고 남 교사가 강조하는 이유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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