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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8일, 한국일보 권영은 기자 보도
"함께해요" 학교 먼저 손 내밀자 유급생도 마음 열어
삼정중의 맞춤형 학급 운영, 학교에서 점심 먹기·담배 줄이기
복학생 위한 프로그램 운영하고 부적응 학생 위해 대안교실도
‘목표: 복학생을 졸업시킨다’
서울 강서구 삼정중학교의 꿈꾸는 교실(대안교실) 해밀반의 목표다. 해밀반의 또 다른 이름은 복학생졸업시키기 반. 연간활동계획표는 더 희한하다. 4월의 생활 목표는 학교에서 점심 먹기, 수업 목표는 2교시까지 듣기였다. 5월의 목표는 점심시간에 점심 먹기, 6월엔 수업 3시간 듣기, 7월엔 담배 줄이기와 오전 수업 듣기였다. 이러한 월별 목표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한 명의 급우, 복학생 동우(가명)다. 이 학교 3학년 동우는 2년째 3학년에 다니고 있다. 지난해 출석일수가 부족해 유급된 후 올해 재입학한 복학생이다.
가정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동우는 게임을 하느라 매일 밤을 새고,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에 잠을 잤다.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 나오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아이였다.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도 심해서 5분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줄을 서서 급식을 먹지 못할 정도였다. 해밀반은 이런 동우의 중학교 졸업을 목표로 한 맞춤형 학급인 셈이다.
교사들은 교사의 눈높이가 아닌 동우 입장에서 동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한 끝에 ‘복학생 졸업시키기 반’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일단 동우가 교실에서 지내는 시간을 점차 늘려 졸업할 때쯤 모든 수업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일차 목표다. 고등학교 진학 후의 적응까지 내다본 것이다.
“선생님들이 이상해요. 왜 저를 보고 웃어줘요?” “나한테 너무 잘해줘요. 이거 다 가식 아니에요?” 학기 초 동우는 이런 말을 자꾸 했다. 동우 한 명에게 담임교사와 교육복지사, 전문상담교사, 진로상담부장, 생활자치부장, 사서교사 등이 모두 달라붙었다. 동우가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학급단합대회를 열고, 여자친구와의 50일 기념파티를 위한 케이크를 만드는 데 복지사가 함께 나섰다. 전문상담교사와 진로상담부장은 동우와 매일 점심을 같이 먹고, 날이 좋으면 인근의 개화산을 함께 걸으면서 하루 일과도 챙긴다.
그러자 닫혀있던 동우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1학기 결석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학교 안에서는 담배를 안 피우겠다”며 스스로 담배도 줄였다. 중간고사에서는 평균 60점을 넘기겠다는 장담도 했다.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동우의 동생이 “형이 미쳤어요. 갑자기 책을 들여다봐요”라고 할 정도로 시험공부라는 것도 처음 해봤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공부에 손을 뗀 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다. 하는 방법도 몰랐고, 습관도 들지 않았다. 그 동안 학습된 무기력 탓에 동우는 스스로 찾아서 하기보다는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게 익숙하고 포기도 빠른 편이다. 지금 동우는 마음이 앞서 공부에 달려들었다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삼정중 생활자치부장인 이돈집 교사는 “무엇보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목표가 뚜렷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다 보니 당장은 결과를 내기 어렵지만 이제 씨를 뿌린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은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단기적 실적보다는 동우의 장기적 성장을 강조했다. 이 교사는 “동우도 학교가 자기를 위해 애써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학교나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가 많이 사라졌다”며 “가정환경 자체가 불안해서 그저 곁에 있어주는 역할을 학교가 하는 것으로도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남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삼정중은 지난해에도 학교와는 담을 쌓은 한 학생을 졸업시켰다. 할아버지와 둘이 살던 민호(가명)는 차비를 아끼려고 지하철 여섯 정거장 거리를 아침마다 걸어서 등교하던 아이였다. “아들이 아빠 죽이면 감옥 가냐” “아들이 아빠 때리면 몇 년 사냐”고 자주 물었다. 알고 보니 가끔 집에 들어와 할아버지를 때리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심각했다. 또래에 비해 덩치도 커서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지지나 않을까 이 교사는 걱정이 됐다. 민호를 관찰해 보니 배우려는 욕구는 있었지만 기초가 너무 없어 쉽게 짜증을 내곤 했다. 이 교사는 일주일에 3번씩 점심시간마다 민호에게 중학교 1학년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쳤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대학생 지식봉사 ‘동행 프로그램’을 이용해 방학 중에도 매일 나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줬다. 민호는 탈없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게 삼정중의 교육철학이다. 한때 교사들이 오기를 기피할 정도였다는 이 학교에서는 더디지만 큰 변화가 곳곳에서 움트고 있다. 2012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는 생각에서 우선 실시한 것이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수업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학교 박진교 교사는 “모둠협력수업을 하다 보면 45분간 억눌려 있던 애들도, 공부에 관심이 없던 애들도 어느 순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며 “그럴 때 놓치지 않고 아이들을 지목해서 세워주고, 칭찬해주고, 2~3번만 반복하면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삼정중은 대안교실로 손을 내민다. 복학생 동우뿐 아니라 수업부적응 학생, 장기결석 학생, 다른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강제전입생을 위한 대안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꼴찌는 거둘 필요도, 여력도 없다는 여기는 우리의 공교육은 불변의 현실이 아니었다. 학교 구성원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앞서가는 학생을 더 잘 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맨 뒤에 있는 학생까지 함께 나아가는 것이 교육의 가치임을 삼정중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학교’는 말뿐이라고 생각했던 이돈집 교사는 “교직 경력 30년 만에 처음으로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학교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소지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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