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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3일, 한국일보 이대혁 기자 보도
우후죽순 경시대회에도 서열… '알짜배기' 외국어·논문대회엔 학부모 영향력이 절대적
학생들이 학교생활기록부를 위해 교내 경시대회 실적에 올인하지만, 스펙에도 서열이 존재한다. 대학들도 이미 경시대회 수상 실적이 남발되는 사실을 알고 경시대회의 질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는 경시대회에서 수상하려면 투자하는 비용과 시간 역시 많아져야 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수능 점수가 달라지는 구조 속에서 충분한 비용을 투입할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하는 학생들간의 ‘스펙쌓기 양극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사례의 조석원(가명ㆍ전북 일반고 재학)군은 2학년 1학기까지 미술과 문학캠프 등에서 4~5개의 상을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이미 9장이나 채웠다. 그래도 조군은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에서 개최한 대회가 대도시의 특목고, 자율형사립고에서 개최하는 대회와 비교해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5년 넘게 서울대 합격생을 단 1명도 배출하지 못한 점도 불안감을 높였다.
경시대회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상이 대폭 늘었지만 학부모들은 학력우수상(과목별로 1등급 학생에게 주는 상)을 최고로 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증명을 학생부 교과부문뿐 아니라 비교과부문에도 기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어토론ㆍ듣기대회, 중국어대회 등 외국어 관련 상도 ‘알짜배기’로 통한다. 그러나 외국어는 노출 빈도와 투자 비용에 따라 실력이 좌우돼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수상하는 실정이다. 한 고교 교사는 “영어 듣기 평가는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문화적, 경제적 환경이 되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격차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최근 유행하는 고교생 논문쓰기 경시대회도 학부모의 경제ㆍ사회적 영향력에 좌우된다. 대학생들도 쓰기 버거운 논문을 경시대회 주제로 채택하는 것이 문제인데, 대학 교수에게 첨삭지도를 받을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과의 차이가 확연할 수 밖에 없다. 서울 구로구의 한 일반고 교사는 “우리학교 아이들은 팀을 짜서 논문을 쓴 뒤 학부모와 학교가 마련한 50만원으로 교수를 섭외해 지도를 받았다”며 “강남 아이들은 교수 부모를 통해 논문 지도를 받으면서 팀원으로 이름을 올려주는 식인데 따라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성균관대가 주최한 영어ㆍ수학 학력경시대회와 한국수학경시대회(KMC) 등 주요경시대회의 최근 10년 참가자의 출신 지역을 분석한 결과 경제력 차이가 존재한다. 총 14만여명의 참가자 가운데 서울 강남구가 4,841명으로 가장 많았고, 양천구(3,541명), 서초구(2,501명), 송파구(2,107명)의 순이었다. 경시대회 수상인원도 강남구(1,231명), 양천구(755명), 서초구(592명), 송파구(456명) 거주 학생들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서울과 지방, 일반고와 특목고 및 자사고 등의 교내 경시대회가 같은 수준으로 평가받지 않는 등 사실상의 고교등급제가 적용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 모 대학 교수는 “경시대회 실적이 학생 선발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부에 적지 않게 의존하는 현실에서 같은 교내 영어경시대회 1등이라도 외고생과 지방의 일반고생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털어놨다.
이대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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