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한국일보 교육희망 프로젝트 6-3, 스텍 강박증, 학생기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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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3일, 한국일보 이대혁 기자 외 보도

'스펙 강박증' 짓눌린 교실

대입서 외부 입상 반영 안 하면서 학생부 기록용 스펙 쌓기 광풍
시사퀴즈·토론대회·논술대회… 한 학교 경시대회 수십개 달해
입시를 위한 스펙쌓기 경쟁 때문에 초중교교생은 물론이고, 영유아들까지 사교육에 내몰리고 있다. 10일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 학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전북의 한 일반고 2학년인 조석원(17ㆍ가명)군은 지난주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교내 문학캠프 준비에 들어갔다. 학년별로 학기마다 문학 서적을 읽고 독후감을 내면 학교가 상을 주는 대회다. 이 학교엔 독서캠프도 있어 감상문 등으로 시상한다. 매 학기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 미술, 음악, 체육 등 교과과정과 관련된 경시대회도 수두룩하다. 봉사활동, 학급활동, 퀴즈상 등 다른 교내상까지 합하면 학교가 주는 상의 종류는 30개에 가깝다. 대부분의 학생이 교내 경시대회에 두루 참가하고 두루 수상한다. 조군은 “수시 학생부전형에 응시할 생각인데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채워야 한다”며 “대학교에서 교외 경시대회 실적을 인정하지 않으니 교내에서 운영하는 각종 경시대회를 통해 스펙을 쌓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대입 전형에서 토플 토익 등 공인영어성적이나 각종 올림피아드 수상 실적 등을 보지 않도록 입시제도를 고쳤다. 과도하게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드는 이런 입시가 한국의 공교육을 통째로 망치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은 ‘스펙 쌓기’에 내몰리고 있다. 달라진 것은 스펙의 내용이 학생부에 기재되는 교내 경시대회나 학교활동으로 대체됐다는 점뿐이다.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성취감을 북돋우면서 궁극적으로 자기주도적 학습을 유도한다는 취지는 온데간데 없다. 서울 구로구의 한 고교 교사는 “학교에서 뭐라도 하려 하면 아이들은 ‘학생부에 들어가나요?’라는 질문부터 한다”며 “학생부에 기재되지 않는 학교활동은 아예 할 수도 없고 수업도 ‘경시대회’에 나온다고 해야 집중한다”고 전했다.
학생부는 곧 학생이 학교생활을 해온 인생의 기록이다. 문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생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요즘 학교들은 교과목을 기반으로 한 것을 포함, 최소 20여개의 교내 경시대회를 운영하는 것은 기본이고 많을 경우 40~50개씩 운영하는 곳도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영어 어휘ㆍ외국어 퀴즈대회, 팝송 부르기 대회, 토론대회, 논술대회, 한자성어ㆍ속담대회, 글로벌리더 선발대회, 시화전, 백일장, 경제 퀴즈대회, 나라사랑 실천대회, 시사퀴즈 등 약 30개의 경시대회를 치른다. 교과과목과 연계해 공부를 유도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순전히 학생부에 활동사항과 특기사항을 기재하기 위해 만든 대회도 많다. 한 교사는 “학생에게 없던 특성과 특기가 경시대회를 거쳐 만들어지고 학생부에 기록된다”며 “보통 3학년 1학기까지 5~6개의 상을 수상하고 많을 경우 16~18개의 상을 수상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학생부 중심 전형이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게도 사교육 시장은 건재하다. 초?중생을 대상으로 특목고를 대비한 영어학원, 영재원이라는 이름의 과학경시대회 준비 학원이 최근 위세가 약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교내 경시대회를 대비하기 위한 학원이 성행한다. 학원들은 “과학고, 외고 등 특목고 진학을 원한다면 중학교 때부터 스펙을 쌓아야 한다”며 영어 토론, 수학?과학 교내 경시대회 준비반을 운영한다. 4~5명의 소그룹 강의로 과목당 주 3일 기준 한달 70만~80만원이 기본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해주는 입시 컨설턴트 학원의 경우 200만~300만원을 받는 등 부르는 게 값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쌓을 수 있는 스펙의 정도와 깊이가 달라져 교육 양극화는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진다.
대리 참가로 20여개의 상을 받는 등 위조 스펙으로 아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킨 어머니와 교사가 최근 적발된 사례는 입시가 왜곡시킨 우리 교육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서울 한 고등학교의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입시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스펙을 쌓아주는 것이 교사의 업무가 돼버렸다”며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수준을 가늠한다는 수학능력평가가 EBS 문제집의 답안 설명에만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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