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한국일보 교육희망 프로젝트 8-3, 혁신학교, 함께 성장하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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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7일, 한국일보, 양진하 기자


"스펙 경쟁 대신 토론·참여 활동… 수업이 즐거워졌어요"
성적보다 꿈을 찾아 동기부여, 멘토-멘티 프로그램 운영 등
모든 학생이 함께하는 수업 모델, 혁신학교, 공교육의 대안으로
7일 오전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서울 관악구 인헌고 학생들이 토론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최선아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3)
올해 2월 서울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건국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김지수(19)씨는 ‘즐거운 고등학교 생활’을 대학 합격 비결로 꼽았다. 김씨는 “학교 생활만으로도 입학사정관 전형에 제출할 자료들이 저절로 모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교 1학년 국어 시간에는 ‘서울 건축기행문’을 과제로 제출했다. 서울 인사동, 삼청동의 전통 건축물과 강남의 현대 건축물을 직접 찾아 다녔다. 특별활동 시간에는 평소 관심 있던 주제였던 ‘한옥 소멸의 원인과 해결 방안’, ‘서촌의 건축물’이라는 보고서를 썼다. 우수한 내신 성적에 비해 모의고사 성적이 낮아 고민했던 김씨는 담임 교사의 권유로 3학년 때부터 그 동안의 학교 활동을 정리해 포트폴리오를 작성했고 마침내 꿈꾸던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같은 과 친구들 중에는 수학, 물리 성적은 좋지만 정작 전공인 건축 수업을 지루해하는 친구도 있다”며 “건축 수업이 정말 재미있어서 얼른 더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배화여고는 2009년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로 도입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혁신학교 중 하나다. 현재 서울, 광주 등 6개 지역에 625교가 운영 중이다. 9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앞으로 혁신학교를 운영하겠다고 밝혀 진보 교육감의 주요 공약이었던 혁신학교는 이제 보수 교육감들도 도입을 추진하는 공교육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입식 수업 대신 참여형 수업
지난 7일 오전 10시, 서울 관악구 인헌고의 1학년 1반 교실에서는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50분의 토론 동안 김인호(57) 국어 교사는 토론 형식만 안내해줬을 뿐 나머지는 학생들이 몫이었다. 처음엔 준비해 온 자료를 보고 읽던 학생들이 점차 자신이 과거에 읽었던 책,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끄집어내며 토론을 이어갔다.
혁신학교인 인헌고 교사들은 학생들의 참여와 활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업 모델을 연구 중이다. 신주은(45) 국어 교사는 “공고, 상고 등 특성화고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인 일반고는 한 반 학생의 절반 이상이 중학교 내신 성적 하위 20%인 경우도 있다”며 “학생 참여형 수업을 진행하면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조금 더 깨어 있으려 노력하고, 미흡하더라도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신 교사는 2인 토론→4인 토론→조 발표의 형식으로 수업을 운영한다. 소수의 학생들만 발표를 하게 되는 교실 모습을 바꿔보기 위해서다.
모든 아이들이 짧은 내용이라도 발표에 참여해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꾸미면 성적이 낮은 아이들도 비슷한 성적의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대입에서 경쟁력이 생긴다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다. 배화여고와 인헌고 교사들은 “비슷한 성적으로 입학한 아이들이 혁신학교의 수업으로 분명히 더 나은 입시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성적 향상보다 꿈을 찾아주는 교육
인헌고 2학년 이은수(17)군은 지난해 노벨 평화상(2006년) 수상자인 경제학자 무하마드 유누스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했다.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대출을 해주는 그라민은행을 설립한 유누스는 사회적 기업가가 꿈인 이군의 롤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인헌고 1학년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롤 모델을 찾고, 그와 관련된 대학 전공을 신문ㆍ영화 등을 통해 탐색하는 활동을 1년 내내 진행한다.
아이들의 꿈을 먼저 찾아주기 위해 진로진학 상담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배화여고 황은비(16)양은 “담임선생님이 모든 학생들과 벌써 5차 면담까지 가졌다”며 “6차 면담 때는 본인이 가고 싶은 학과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졸업생 김지수씨도 진로 상담 교사와 수 차례 면담을 하며 자신의 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김씨는 “‘왜 건축가가 되고 싶은지부터 고민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꿈을 정하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 효과가 나타난다. 인헌고 김인호 교사는 “관련 학과 교수를 스스로 노력해서 만나고 오면 눈빛부터 달라진다”고 말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의 특정 전공에 지원했을 때는 성적 중심의 지원이 아니라 오랫동안 전공에 대해 준비해 왔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스펙 경쟁 대신 모두 함께 성장하는 교육
인헌고는 지난달 1학년 전체 학급이 봄부터 준비해 온 뮤지컬을 선보이는 ‘교내 뮤지컬 경연대회’를 열었다. 이상의 시 ‘날개’를 소재로 삼아 국어, 사회 시간에 학생들이 직접 대본을 썼다. 미술 시간엔 무대 장치를 준비하고, 음악 시간엔 노래 연습을 했다. 이은순(54) 음악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대본, 연출, 연기 등으로 역할을 나눠 뮤지컬을 완성해냈다”며 “모든 학생들이 학교 활동에 참여하고 이끌어갈 수 있게 하는 게 학교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는 법을 배운다. 배화여고와 인헌고에서는 학급마다 각 과목의 ‘부장’과 ‘이끔이’ 학생이 친구들의 공부를 돕는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정리해 친구들에게 문제를 만들어 주거나 직접 질문을 받아 설명해주기도 한다. ‘멘토-멘티’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선후배나 동급생끼리 짝을 지어 함께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멘토에게 배우며 성적이 오르고, 멘토인 아이들도 한 번 더 복습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질문을 주고 받다 보면 공부하려는 의욕이 더 생긴다”며 “멘토-멘티로 역할이 나뉘어도 각자 잘하는 과목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혁신학교의 원동력은 교사의 열정
5년 전만 해도 인근 중학생들이 기피하는 학교 1순위였던 인헌고는 2년 전 혁신학교로 지정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밑바탕에는 교사들의 열정이 있었다.
김인호 교사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끝까지 내 일처럼 책임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혁신학교의 취지가 왜곡되는 걸 막기 위해 교사들에게는 별도 수당이나 승진 가산점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새로운 수업 모델을 개발하고, 매일 시간을 쪼개 학생들과 면담하는 교사들이 있어 혁신학교가 운영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배화여고 이철희(54) 교무혁신부장은 “담임 교사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면서도 “혁신학교의 핵심은 교사들의 자발성”이라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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