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한국일보 교육희망 프로젝트 8-2, 고교-대학 교육 연계 협약, 진로교육실태조사, 진로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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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7일, 한국일보, 정지용, 양진하 기자

"대학 수업 미리 체험… 학업 목표가 확실해졌어요"


중·고생 30% 이상 "장래희망 없다" "수능 점수 따라 전공 선택" 대다수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 통해 꿈과 끼 찾고 성적 향상 효과까지
고려대의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에 참여한 상일여고 과학 영재반 학생들이 11일 고려대 생명과학대에서 '미생물 살균제의 생리활성 검정' 실험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오늘(토요일)은 학원수업이 있지만 대학 실험수업이 있어서 빠졌어요. 고등학교에는 없는 실험도구로 갖가지 실험을 하니까 정말 재미있어요.”
지난 11일 서울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실험실. 앳된 얼굴의 고교생 13명이 ‘단백질의 정량 측정’ 실험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흡광도 측정기(물질이 빛을 흡수하는 정도를 재는 도구)를 들여다보며 달걀에 포함된 단백질의 양을 살폈다. 실험에 참여한 김예진(16)양은 “하루 빨리 대학생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서울 상일여고 1학년 과학영재반 소속인 김양은 고려대와 상일여고가 맺은 고교-대학 교육 연계 협약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생명환경 과학교실’에 참가한다. 벌써 11번째 수업을 들었다. 강의를 총괄하는 임만재 고려대 생명과학대 연구원은 “주말에 사교육 받기도 바쁠 아이들이 결석도 하지 않고 강의에 참가하는 걸 보면 신기하고 기특하다. 암기위주의 입시공부에 파묻힌 학생들이 이 시간만큼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찾는 기회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대학 연계 교육으로 꿈 찾는 학생들
상일여고는 과학영재반에 속한 25명의 학생들을 고려대 뿐만 아니라 한양대, 광운대, 한국원자력의학원 등 대학ㆍ연구소에 보내 수업을 듣게 한다. 5년전부터 마련한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 덕분이다. 학생들은 각 학교를 방문해 1회에 4시간 이상씩 교수와 박사과정 연구진들에게 이론 강의와 실험 수업을 듣는다. 교수들이 직접 학교를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인문사회 영재반 학생들은 연세대, 서강대 교수들에게 ‘문화콘텐츠’를 주제로 강의를 듣는다. 이화여대, 건국대, 동덕여대와는 영어 수업 업무협약(MOU)를 맺었다. 학생들은 동덕여대의 원어민 교수들과 영어로 화상통화를 할 수 있다.
대학 수시모집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서울 한영고 3학년 임동찬(18)군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가천대의 R&E(Research & Education) 과정에 참가했다. R&E과정은 고교-대학 연계 과정으로 학생들이 대학에서 관심있는 주제를 탐구한 뒤 소논문을 쓰는 프로그램이다. 임 군은“대학에서 농경제사회학을 공부하겠다는 목표가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도심 지역의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이라는 논문을 쓴 임 군은 “교과서에서만 봤던 ‘실증적 연구 방법’과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통계프로그램을 체험해 봤다”며 “사회 현상에 점점 더 호기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적성ㆍ진로 탐색은 아이들의 성적 향상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서울대 화학 실험 연계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영고 학생 5명은 모두 서울대에 진학했다. 전경열 상일여고 교감은 “고교-대학 연계 과정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보다 성적 향상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골든타임 놓쳐 방황하는 대다수 학생
그러나 이런 학생들은 극소수다. 대다수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끼도 모른 채 “남들도 다 가니까” 대학에 진학하고 “수능 점수에 따라” 전공을 선택한다.
서울 강서구의 고교 2학년생 A(17)군은 ‘모범’학생으로 통한다. 누구보다 충실하게 수업에 참여하며, 지각을 하거나 과제를 빠뜨리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 A군은 학업에 특별한 열정을 갖고 있진 않다. 성적도 반에서 중하위권인 17등 정도다.
정광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문제풀이, 암기위주의 현행 대입 제도에 맞지 않는 A군 같은 학생들은 자신을 찾을 기회도 없이 매일 8~9시간 수업을 듣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진로교육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장래희망이 아예 “없다”고 답한 비율은 중학생 34.4%, 고등학생 32.3%에 달했다. 진학하려는 고교 선택을 하며 ‘원하는 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적을 밝힌 중학생은 10.6%에 그쳤다. 대부분은 ‘특별한 이유 없음’(29.2%), ‘성적에 따라’(19.2%) ‘원하는 대학을 가려고’(15%) 등의 응답을 했다.
적성ㆍ진로 탐색의 ‘골든 타임’을 놓친 학생들은 늦은 방황을 경험한다. 서울 명문대 기계공학과에 다니는 B(24)씨는 7년간의 고교ㆍ대학의 이공계 공부를 청산하고 인문계열로 전과를 준비하고 있다. “이공계가 취업에 더 유리하다”는 부모와 교사의 권유로 고등학교때 이과를 선택한 B씨는 “고교 시절 적성을 찾고, 대학 공부를 미리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소설을 좋아하는 내 흥미를 찾아 늦었지만 전과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 교과 다양화해야
진로 등을 고려하지 않는 대입제도는 직업 만족도에도 악영향을 준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1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 취업자 중 첫 일자리의 업무 내용이 자신의 전공과 맞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29.3%나 됐다. 특히 인문계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6.4%가 전공과 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전공 불일치 취업자의 월 평균소득(188만원)은 일치 취업자(204만원)보다 15만원 정도 적었다. 업무만족도(5점 척도 기준)도 전공불일치 취업자의 경우 3.3점으로 전공 일치 취업자(3.63점)보다 0.33점 낮았다.
결국 대입 제도가 학생들의 적성을 찾아주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도록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광희 연구위원은 “선진국들은 교육의 목표를 개인이 가진 재능의 발현으로 삼고 그에 맞는 대입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며 “고교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고 수능 성적 비중을 완화하는 등 대입제도의 전폭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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