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일 수요일

윤성근, 일본 고서점 그라피티, 이케가야 이사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오카자키 다케시(岡崎 能士), 아서 래컴(Arthur Rackham), 전국 고서점 지도첩, 데츠카 오사무(手塚 治虫), 우주소년 아톰, 고서협회, 헌책축제, 헌책벌레가 간다, 도쿄 진보초,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57780

2014년 11월 30일, 오마이뉴스, 윤성근(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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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신촌 헌책방에 갔을 때 거기서 우연히 발견한 책 때문에 한동안 흥분된 마음을 다잡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 책 제목은 <일본 고서점 그라피티>이다. 헌책방을 좋아하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면서 틈만 나면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헌책방을 찾아다니고 있었지만 '그라피티'라니. 헌책방 벽에 낙서라도 한다는 얘기인가? 신기함과 이질감이 반반씩 섞인 채로 책을 펼쳐 들었다.

그것이 운명이었다고 말해도 좋을까? 책을 펼쳤을 때 다가온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 책은 각각 1996년과 1998년 일본에서 출판된 두 권을 1999년 신한미디어에서 우리말로 번역하여 내놓은 것인데 내용은 단순하다. 작가 이케가야 이사오(池谷 伊佐夫)씨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본업이지만, 헌책방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 헌책방을 다니면서 그곳 내부 풍경을 일일이 정밀한 스케치로 남긴 것이다. <일본 고서점 그라피티>는 이렇게 그린 것들 중에서 동경, 교토, 오사카, 고베에 있는 헌책방을 모아 두 권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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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가야 씨 책 번역본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이케가야 씨 책은 모두 두 권이다. 현재는 두 권 다 절판됐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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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가야 씨 책 속 헌책방 그림 정밀한 조감도로 헌책방 내부를 잘 표현했다. 헌책방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한번 방문 했을 때 둘러보고 기억에 의지하여 그린다.
ⓒ 윤성근

그때까지 일본 헌책방은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저 일본 사람들은 책을 좋아한다, 서점이 많다, 헌책방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을 보고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일본의 책 문화라는 것은 쉽게 얘기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알았다. 

책 속에 정교하게 표현된 헌책방 일러스트를 보고 있자니 언젠가 꼭 저곳에 가보고 싶다는 소망이 강하게 일어났다. 단지 그날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얼마 후 오래 일했던 IT회사를 그만두고 책에 관련된 일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처음엔 출판사에서 일했는데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책이라고는 하지만 출판사라는 독특한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는 게 우선 쉽지 않았다. 결국 출판사는 일 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었고 큰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헌책방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줄곧 좋아했던 곳이니까 일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손님이었기 때문에 즐거운 것과 일로써 부닥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을 금방 깨달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한 것이다. 

"그러면 내 방식대로 헌책방을 운영해보자!" 

그렇게 해서 2007년에 생겨난 것이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 골목에 둥지를 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다. 지금까지 햇수로 8년 동안 운영했고 그동안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할 여러 일을 겪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엮어서 책도 몇 권 썼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이 있기에 펴냈던 책들이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몇 해 전부터는 일본 헌책방에 관한 책을 써볼 계획을 세웠다. 처음엔 틈나는 대로 일본에 가서 헌책방을 좀 둘러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쓰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 자체가 큰 잘못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본 헌책방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너무도 많고 개성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탐색해나갈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계획을 바꿨다. 처음부터 일본 헌책방에 가기보다는 헌책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를 먼저 인터뷰하기로 했다. 그 첫 결실은 지난여름 오카자키 다케시(岡崎 能士)씨를 인터뷰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관련기사 : 헌책방의 여자 누드사진, 누가 없앴을까)

'책벌레 신사' 삽화와 놀랍도록 비슷한 이케가야 

그리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좋았던 지난달 9일에 또 다른 헌책방 마니아 이케가야 이사오를 인터뷰했다. 이케가야는 헌책방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대단한 장서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물론 오래 전 나에게 큰 감동을 선물한 책의 저자이기 때문에 그런 분을 직접 만난다는 사실 만으로도 일본에 가는 내내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집으로 초대받았기 때문에 이 독특한 장서가의 서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도 내겐 큰 행운이다.

이케가야가 사는 집은 도쿄 시내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 오오야마(大山)다. JR전철 이케부쿠로에서 나와 다른 열차로 갈아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적한 주택가에 이른다. 검은색 양복에 같은 색깔로 맞춘 모자를 쓴 이케가야가 전철역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그런 옷차림은 작가가 책에 넣은 '책벌레 신사' 삽화와 놀랍도록 비슷해서 처음 만나는 이케가야를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여느 집들이 그렇듯 이케가야의 집도 크지 않았다. 대신 방을 여러 개로 나눴는데 서재와 작업실로 이용하고 있는 곳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방은 들고나는 문을 빼면 모든 곳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딴 세상으로 들어온 듯 착각이 들 정도다. 아래는 약 3시간 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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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가야 씨의 서재 들고 나는 문을 빼면 벽이 전부 책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이다.
ⓒ 윤성근

책 4톤이 한 방에... 일본 헌책방 마니아의 서재

- 좁은 곳인데 책이 엄청나게 많네요. 모두 몇 권인지 세어 보신 일이 있나요?
"책을 사 모으던 초창기에는 세어봤는데 지금은 몇 권인지 저도 모릅니다. 무게로만 대강 짐작하죠. 얼마 전 짐을 옮길 때 무게를 재어 본 일은 있는데 이 방안에 있는 책만 4톤 정도 나왔어요. 물론 여기 말고 다른 방에도 책이 좀 있고요."

- 이 방에는 주로 어떤 책이 있나요?
"여기는 책이 가득하지만 제가 미술 작업을 하는 작업실로 쓰고 있기도 합니다. 작업은 주로 책상에 앉아서 합니다. 그래서 이쪽에는 제가 작업할 때 참고하는 책이라든지 제가 아끼는 책, 비싸게 주고 구입한 책들이 있습니다." 

- 지금도 헌책방에 자주 다니시나요?
"도쿄에만도 일 년에 100번 가까이 크고 작은 헌책 시장이 열립니다. 진보초같이 헌책방이 밀집된 곳도 다니지만 여러 곳에서 열리는 헌책 시장만 찾아다녀도 거의 일 년 내내 다녀야 할 정도로 헌책 시장이 자주 열립니다. 

거의 매일이라고 해도 심한 말이 아니지요. 저는 직업적으로 헌책방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그렇게 나갈 수는 없고, 보통은 헌책방에서 책 목록 보내주는 것을 우편으로 받아보고 거기서 주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헌책방은 인터넷 판매도 하지만 여전히 회원에게 새로 들어온 책 목록을 우편으로 발송하여 주문을 받는 곳이 많다.)"

- 주로 어떤 책을 갖고 계신가요?
"그림 그리는 일을 하다 보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림에 관련된 책이 많습니다. 장정이 멋진 소설책은 따로 모아놨고요, 오래된 만화책과 삽화가 들어간 쇼와시대(쇼와 천황의 재위기간으로 서기1926년~1989년까지가 이 시기다.) 어린이 SF소설책 따위도 있습니다. 

유명한 작가의 도판이 있는 책인 경우 복각된 것이 아닌 오리지널을 소유하려고 노력합니다. 당시에 출판된 오리지널 책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거든요. 아서 래컴(Arthur Rackham, 1867~1939, 영국의 삽화가)은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서 외국까지 나가 당시의 오리지널 판본을 여럿 구입했습니다. 물론 이런 책들은 가격도 상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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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 중인 책장 비좁은 방에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곳에서 미술작업도 함께 한다. 복잡해보이지만 본인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 윤성근

- 이렇게 책이 많으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불편하지요. 책이 계속 쌓이기 때문에 정리도 자주 해야 되고.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헌책방 돌아다니면서 책을 사 모았는데요, 지금은 가족들도 이해를 해주니 오히려 고맙지요. 사실은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이 방도 어느 정도는 치워놓은 상태입니다. 그 전에는 저 혼자 앉을 자리 밖에 없었는데 몇 달 동안 정리해서 이정도 까지 만들어놨습니다."

- 책이 너무 많아서 무너질까 걱정이 됩니다.
"실제로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은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많으니까요. 대비한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몇 해 전 후쿠시마 인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저는 여기에 살았습니다. 방의 상태는 지금보다 더 형편없었지요. 물론 제 나름으로 정리를 한다고 해두었습니다만……. 늘 지진 경보가 있으면 긴장합니다. 후쿠시마는 도쿄에서 그렇게 가까운 곳이 아니니까 도쿄는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진의 여파가 엄청났습니다. 집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보시는 이 방의 책들이 다 무너져 버렸어요. 그 때문에 망가진 책들도 있고, 다시 서가를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 책이 많은데도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특별한 정리 방법이 있으신가요?
"크게 보면 '무게', '크기', '종류' 이 세 가지 구분으로 정리합니다. 먼저 무겁거나 큰 판형의 책은 아래쪽으로 가고요 가벼운 것일수록 위로 올라갑니다. 그래야 안정감이 있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문학이면 문학, 그림이면 그림, 이런 식으로 비슷한 종류를 한곳에 모아놔야 나중에 참고용으로 찾을 때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정리를 한 다음에는 책 크기별로 또 나눠서 정리하면 깔끔해집니다. 

지난번 지진 때문에 그 후로는 대비를 좀 해놓은 상태입니다. 각 책장은 한 손으로 해서는 책이 잘 안 빠질 정도로 빡빡하게 꽂아둡니다. 그래야 흔들렸을 때 책장 밖으로 책이 쏟아지는 일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로 얼마 전 도쿄에 제법 심한 지진이 한차례 있었는데 그 충격으로 이렇게 빡빡하게 정리한 책이 절반 정도는 책장 밖으로 튀어나왔거든요. 이런 자연재해가 거의 없는 한국이 부럽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헌책방을 순례하다

- 헌책방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가지게 되었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물론 동네에 있는 헌책방에 다녔습니다. 중학생 때는 멀리 있는 곳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렇게 멀리, 그리고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 없는 형편이라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서 <전국 고서점 지도첩>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곧바로 대출했습니다. 저에겐 보물지도나 마찬가지였죠. 당연히 그런 책 하나쯤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걸 이때 발견한 겁니다. 

그 책을 참조해서 여러 헌책방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 책을 너무 자주 대출해서 표지며 본문이 너덜너덜 해질 지경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도서관을 담당하던 선생님이 졸업 선물이라면서 그 책을 저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학교에서 너만큼 이 책을 많이 본 사람은 없을 거라면서, 그러니 이 책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하셨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저에겐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 고등학생인데 공부는 안하고 헌책방만 다니셨어요?
"그렇습니다. 공부엔 별로 취미가 안 생기더라고요.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데츠카 오사무(手塚 治虫, 1928~1989, '우주소년 아톰'의 작가)같은 만화가가 되려고 열심히 그림만 그렸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물론 부모님도 포기했어요. 몇 번 혼나기도 했지만 결국 제가 만화 그리는 걸 인정해주셨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사정이 조금 다른 게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률이 그렇게 높지 않아요. 물론 일본도 명문대에 들어가려는 수험생들은 경쟁이 치열한데 꼭 대학에 나와야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대학 안 나와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원한다면 지방에 있는 대학에 다녀도 사는 데 불편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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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등상을 받은 만화 고등학생 때 유명만화 잡지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한 만화를 여전히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다.
ⓒ 윤성근

- 지금 만화가로 활동하고 계신 건 아니잖아요?
"고등학생 때 유명한 잡지사에서 공모한 신인 만화가 대회에서 '베토벤의 혼'이라는 단편 작품으로 1등을 했을 정도로 만화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거의 먹고 자는 시간 빼면 만화만 그렸으니까요. 하지만 제대로 만화 공부를 해보려고 여러 만화를 봤는데 내용이 대부분 비슷했어요. 

평화를 해치는 강한 적이 있고 누군가 착한 쪽이 그 적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죠. 보통은 싸움이 위주인 폭력적인 전개라서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만화가로 인기를 얻으려면 그런 만화를 그려야하는데 저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상업 미술 쪽으로 방향을 돌렸죠. 대학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하고 시각디자인, 광고디자인 같은 일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책에 들어가는 삽화도 그리고 제가 직접 책을 쓰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번역된 <일본 고서점 그라피티>같은 책들이죠."

오직 기억에만 의지하여 그리는 헌책방 조감도

- 헌책방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뭐 하나에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이거든요. 20대 시절, 돈도 좀 벌게 되었고 스스로 헌책방에 자유롭게 다니면서부터 헌책방이 과연 어떤 곳인지 연구해보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10년 정도 헌책방에 출근도장 찍듯이 다니면서 매달렸어요. 그리고 메모를 남기듯이 다녀온 헌책방을 떠올리면서 그림으로 그리게 된 것이죠."

- 그 많은 헌책방을 다 그릴 수는 없을 테고. 이런 곳을 그려야겠다, 라는 선생님만의 기준이 있나요?
"물론 저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우선 전문분야가 확실히 있는 헌책방이 좋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책이 많아야겠죠.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 외엔 주관적인 것인데 점포 분위기가 좋으면 후한 점수를 줍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가게 분위기가 대강 어떤지 압니다. 말로 설명이 잘 안 됩니다만 왠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헌책방도 있어요. 끝으로 헌책방에 주인의 개성이 배어나오는 곳이라면 손님인 저도 즐거운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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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 스케치북 직접 그린 헌책방 조감도를 보여주고 있다. 보통 한 곳을 그리는데 2시간 정도가 걸린다. 구조가 복잡한 가게는 두,세번 방문을 하고서야 완성할 수 있다.
ⓒ 윤성근

- 주로 조감도를 그리는데 헌책방을 이런 식으로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본의 에도시대(서기1603년~1868년) 화가들은 지역의 풍속이나 관광지 같은 곳을 알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조감도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그러니 조감도가 그렇게 특이한 방법은 아닌 거죠. 일본 사람들은 헌책방에서 손님이 사진을 찍는다거나 오랫동안 책을 살피고 있는 행동을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심하면 주인이 손님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간접적이나마 책방을 오래 살피려면 책방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본 조감도가 제격이죠. 제가 쓴 책을 보고 누군가 그 책방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그림을 참고해서 그곳을 가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 그림이 꽤 정밀한데, 헌책방 안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어떻게 그림을 그리나요? 
"단지 기억에 의지해서 그립니다. 한 곳에 들어갔을 때 최대 15분을 넘기지 않아요. 너무 오래 살펴보고 있으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거든요. 그 시간 동안 가게 내부를 확실히 머릿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서가의 길이는 발걸음으로 대강 파악하고 책장의 개수 등을 기억해둡니다. 특별한 책이 있는 곳이면 그 서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등을 머릿속에 담아둔 다음 나와서 곧장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갑니다. 거기라면 시간이 충분하니까 기억해 둔 것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한 가게를 대강 스케치하는데 2시간 정도 걸립니다.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 곳이라면 한번으로 끝나는데 헌책방이라는 게 다들 모양이 제각각이라 두, 세 번 방문하고서야 완성하는 때도 있습니다."

헌책방은 문화의 보물창고

-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시면서 헌책방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쓰셨는데 매력이 무엇인가요.
"일본 사람들은 예부터 종이와 글자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니 종이와 글자가 합쳐서 탄생한 책이라는 매체는 더욱 귀하게 여겼지요. 일본에선 책이라는 말을 쓸 때 한자로 '본(本)'을 씁니다. 무엇의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서(書)'라든지 '책(冊)'이라는 한자도 있지만 책은 '본(本)'입니다. 그만큼 책을 귀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된 책이라고 해서 천대받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판된 귀한 책은 가격도 비쌉니다. 헌책방은 귀한 문화가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곳입니다."

- 한국은 헌책방들이 많이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일본은 어떤가요?
"일본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저 같은 나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헌책방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책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정보를 얻고 공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니까요.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책을 많이 읽는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것도 머지않아 옛말이 될 수 있어요.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고서협회라든지 상인조합 같은 곳들이 서점과 헌책방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헌책 축제가 고서협회 주최로 매년 가을에 도쿄에서 열립니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일회성 행사가 아닌 꾸준한 노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모여 문화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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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벌레가 간다 이케가야 씨의 최근작 <헌책벌레가 간다>는 인터뷰를 하기 전에 한국에서 주문하여 읽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정성스레 그림과 함께 서명을 해주었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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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가 이케가야 이사오 씨. 사진상으로 왼쪽이 통역을 맡은 제프리, 오른쪽이 필자.
ⓒ 윤성근

책으로 쌓은 100년 역사는 곧 그 나라 문화의 힘을 말한다

도쿄 진보초에서 매년 열리는 헌책 축제는 올해로 55회째를 맞이했다. 같은 때, 길 건너 메이지대학 도서관빌딩에서 열린 전국 도서관대회는 100회를 축하하는 행사가 한창이다. 진보초 헌책거리에 있는 유명한 출판사 '이와나미'는 작년 헌책 축제 기간에 맞춰 창업 100년을 자축하는 기념회를 가졌다. 

도쿄역 앞을 지키고 서있는 대형서점 '마루젠'은 올해로 창업 145주년이다. 이케가야의 말대로 이런 문화는 이벤트 몇 번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일본은 지금의 책 문화를 가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나는 비록 작은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점점 밑으로만 가라앉는 우리나라 책 문화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었으나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음이 시끄럽다. 

출판사들이 서점에 내보내는 공급 단가를 저마다 달리해서 중소규모 오프라인서점은 오히려 힘들어졌다. 이러다가는 대형 서점 몇 개만 남도 나머지는 고사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섞인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책은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무엇보다 강한 힘을 가진 문화매체가 아닌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인터뷰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일본까지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도와준 한서대학교의 오자키 다쓰지 선생님, 일본에 미리 건너가서 이케가야에게 내 얘기를 전달해준 도쿄대 교환학생 수잔 테일러 님, 일본말이 어눌한 나를 위해 오랜 시간 통역을 맡아주신 제프리 님께 글을 통해 감사 인사에 대신한다.



컴퓨터 회사를 다니다 마음이 시키는 일,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서른 살 즈음 사표를 내고 출판사와 헌책방 직원으로 일했다. 2007년 여름, 은평구 응암동 골목길에 간판도 없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열었고 여전히 거기서 일하고 있다. 읽고 글 쓰는 것 말고도 이런저런 일에 관심이 많은데 최근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디자인한 사람으로 많이 알려져 조금 부끄럽다. 레고나 플레이모빌을 모으고 수동 카메라, 폴라로이드 사진 찍기도 즐긴다. 지은 책으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매진), 『심야책방』(이매진), 『침대 밑의 책』(마카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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