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일, 경향신문, 이건범 씨 칼럼
문제의 실상은 2013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22개 회원국을 상대로 벌인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 밝혀졌다. 이 조사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력, 셈하는 수리 능력, 컴퓨터를 이용한 문제해결 능력의 세 영역을 다뤘는데, 2013년 조사 결과에 따르자면 우리나라 16~24세의 독해력은 세계 3위 수준인 반면 노년층 독해력은 끝에서 3위란다. 특히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 사이의 편차가 세계 1위라 충격이다. 영국은 그 차이가 0.1점, 미국은 8점인데 우리나라는 무려 48점이라고 한다.
조사 결과를 마주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젊은이들이 한자를 몰라 낱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초등학교부터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이 얼마나 허황한지. 다음으로, 독해력이 이렇게 낮아서야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텐데, 외로운 삶이 좋은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 개인의 문제만도 아니다. 세상의 다양한 면을 넓게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정치 공동체의 수준도 높아질 수 없으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숙제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일이라고 안심할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독해력이 30대부터 팍팍 떨어지는 그림이다. 조사 연구자의 관찰에 따르자면 나이 든 사람들의 독해력 수준은 책을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 사이에서 큰 편차를 보인다고 한다. 책을 안 읽는 추세가 이어진다면 요즘 젊은이들도 나중엔 마찬가지 꼴을 피하기 어렵다.
독서가 무슨 치매 예방에 좋다는 식의 과장 광고까지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나이 들어 등산이나 운동, 춤, 노래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젊은 시절 가족을 지키느라 아등바등 살면서 그저 그러려니 하며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 세계와 인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기회는 책 속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다.
책을 함께 읽는 친구들과 뿌듯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 대학생 손자들과 토론하는 노년이 어찌 욕심이라고만 하겠는가.
난 눈이 몹시 나빠 종이책을 못 읽는다. 읽고 싶어도 눈이 나빠 책을 못 읽는 노인도 많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 소리책이나 글씨가 큰 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 짬이 나면 책 읽는 사람이 좀 늘겠지만, 그 시간을 빼앗아갈 다른 휘황찬란한 소일거리가 많아서 독서 문화가 저절로 퍼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려면 중년과 노년 세대의 문화운동이 필요하다.
난 눈이 몹시 나빠 종이책을 못 읽는다. 읽고 싶어도 눈이 나빠 책을 못 읽는 노인도 많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 소리책이나 글씨가 큰 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 짬이 나면 책 읽는 사람이 좀 늘겠지만, 그 시간을 빼앗아갈 다른 휘황찬란한 소일거리가 많아서 독서 문화가 저절로 퍼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려면 중년과 노년 세대의 문화운동이 필요하다.
작가, 한글문화연대 대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한글문화연대 대표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내 청춘의 감옥’, ‘미디어몽구, 세상을 향하다’가 있으며, ‘좌우파사전’, ‘경제학자, 교육혁신을 말하다’, ‘더불어 행복한 민주공화국’ 등의 책을 기획하고 공저자로 참여하였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