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8728.html
2014년 12월 11일, 한겨레,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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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안보국(NSA)이 20억달러를 들여 유타주에 짓고 있는 인터넷 클라우드 ‘적란운 단지’(공식 명칭은 유타 데이터센터). 로버트 맥체스니 교수는 “무한한 이곳의 데이터베이스는 사적인 이메일과 휴대폰, 구글 검색의 완벽한 콘텐츠들은 물론이고 온갖 사적인 데이터 흔적들을 포함하게 될 것”이라며 “워터게이트 이후 최초로 국가안보국은 자신의 감시 장치를 미국과 시민들에게 향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 국가안보국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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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복합체가 인터넷 장악
대안은 민주주의와 저널리즘
비영리 미디어 ‘시민 바우처’ 제안
디지털 디스커넥트
로버트 맥체스니 지음, 전규찬 옮김
삼천리·2만8000원
인터넷을 다룬 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건, 그만큼 인터넷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나온 인터넷 관련 책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인터넷이 비즈니스 혁명과 함께 “민주주의의 회춘”(제임스 커런)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찬론과,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가장 멍청한 세대”(마크 바우얼라인)의 탄생으로 오히려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비관론.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좌파 비평가인 로버트 맥체스니(일리노이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012년 펴낸 <디지털 디스커넥트>에서 예찬론과 비관론 모두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발 딛고선 자본주의와의 관계(그리고 그 후원자 노릇을 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인터넷은 “정치경제의 발전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의 지도교수였던 그는 인터넷에 대한 정치경제학적인 접근을 통해 어떻게 인터넷을 다시 “인민에게 합당한” 도구로 되찾아올 것인지를 묻는다.
지은이는 현재의 인터넷이 ‘군산디지털복합체’에 점령당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페이스부키스탄’과 ‘구글돔’이라고 부르는 페이스북과 구글을 비롯한 인터넷 독점기업, 에이티앤티(AT&T)나 버라이즌 같은 통신회사들과 국가권력이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감시하는 동맹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처음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 미국 국방부를 비롯한 국가기관의 투자와 기여가 상당한 구실을 했다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는 일이지만, 지은이는 그런 공생관계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국방부 소속 정보기관인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영장 없는 도청 프로그램’(심층패킷분석 기술을 이용해 전화를 엿듣는 방식)과 주기적인 데이터 요구에 이들 독점기업들은 적극 따르고 있다. 에이티앤티는 법 집행요구를 검토하고 처리하기 위해 100여명의 상근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버라이즌에선 79명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구글은 2011년 한해에만 적어도 1만건의 정보 요청서를 받았다. 구글은 정부가 요청한 사안의 93퍼센트 정도에 대해 적극 응답해 주었다고 시인했다.”
대신 국방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디지털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협조적인 기업들에 거저 나눠주고 있다. 디지털기업들은 돈벌이를 위해 개인들의 신상을 터는 데 혈안이 돼 있으며, 국가권력은 이 정보를 체제 위협 세력을 감시하는 데 활용한다. “수상쩍은 기만술로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데 일조한 은행가들은 자유롭게 활개 친다. 반면에 평화로운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자들은 미국 국내에서 국토안보국의 노골적인 안보사찰 표적이 된다. (…) 점차 드러나는 현실이 파시즘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런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늘 디스토피아적인 에스에프(SF)”다.
이쯤 되면 <디지털 디스커넥트>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 도입 초기에 꿈꾸던 전자민주주의의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이 절연됐다는 뜻 아닐까. 언뜻 비관론과 비슷한 듯하지만, 대안을 찾는 고민에서 차별성이 드러난다. 지은이는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어떤 사랑 이야기>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대안은 “민주주의!”라고. “혁명적 기술의 혜택을 모든 인민이 공유할 수 있게 하며, 민주주의의 재활성화나 확장에 연결시킬 수 있게끔 할 새로운 경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것을 ‘포스트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포스트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미디어학자인 그가 꺼낸 마법의 도구는 ‘저널리즘’이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던 미국 건국의 지도자 토머스 제퍼슨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제퍼슨은 “우리 인민들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의 주의력을 늘 생기 있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라. (…) 한번 그들이 공적인 사안에 무관심해져 버리면, 나와 당신 그리고 연방의회, 주의회, 재판관, 주지사들 모두 늑대로 변하고 말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디지털 혁명은 전통 저널리즘의 근간을 이루던 신문기업들을 초토화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 10여년 사이 신문기업과 기자들이 거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디지털 미디어들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에 열중하고 있다. 넘치는 건 가십이요, 남은 건 “뉴스 사막”과 “뒷북 저널리즘”뿐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로서 “비영리적이고 비상업적인 미디어 구조를 만들어 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저널리즘에 대한 공적 투자다. 지은이는 국가의 예산으로 저널리즘을 지원하는 나라들이 미국 프리덤하우스의 민주주의 지수 순위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주로 노르웨이와 아일랜드,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이다. 15위까지 나와 있는 민주주의 순위에 한국은 아예 없고, 미국은 19위다.
지은이는 마지막으로 ‘시민 뉴스 바우처’라는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딘 베이커와 동생 랜디 베이커가 맨 처음 낸 구상인데, 국가가 모든 성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비영리 뉴스 미디어를 지정해 기부할 수 있는 200달러짜리 쿠폰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2만명이 (특정 신문사) 계좌에 그들의 바우처를 입금했다고 상상해보라. 대략 400만달러가 모일 것이다. 이 돈이면 50명 정도의 정규직 저널리스트를 비롯한 직원들을 괜찮은 임금을 주고 고용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변모한 인터넷 뉴스 서비스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한번 생각해보시라.”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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