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2일 금요일

강진구, 하르츠 개혁, 정규직 과보호론,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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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2일,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칼럼


[로그인]차라리 니체를 믿어라
강진구 | 정책사회부 노동전문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나서 공무원과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내몰고 있다. 두 사람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유연성만 확보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국민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이들의 발언은 노동운동을 적대시하며 산업입국을 통해 유럽 제패를 꿈꾸던 과거 독일제국의 ‘철혈통치’를 연상시킨다. 19세기 말 당시 유럽 주변 국가에 비해 낙후돼 있던 독일제국의 산업부흥을 위해 빌헬름 1세에 의해 재상에 임명된 비스마르크는 제국의회에서 “우리 사회 문제의 해결은 연설과 과반수가 아니라 무엇보다 ‘철’과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국가개입을 통한 노동통제와 동원을 강조했다. 당시 비스마르크 입장에서 독일 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세력은 사회주의 사상에 물든 조직화된 노동계급이었다. 박 대통령과 최 부총리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표현 중 하나가 ‘노조 이기주의’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 사람 역시 대기업들이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정규직 노조’를 우리 경제의 최대 ‘암덩어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와 비스마르크 모두 노동계급의 단결에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지만 조직화된 노동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수단은 정반대였다. 비스마르크는 산재보험을 비롯한 각종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해 개별기업 간 과도한 경쟁을 통해 노동력이 급격히 고갈되는 것을 막고 노동자들을 체제 내로 순치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노조가입률이 10%도 안되는 상황에서 ‘정규직 과보호’를 이유로 그나마 얼마 안되는 정규직들마저 고용불안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공무원연금이나 무상급식 등 사회보험과의 연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박 대통령이나 최 부총리 생각대로 정규직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연공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이나 성과급을 도입해서 임금유연성을 확보하면 고용이 증가하고 기업들의 경쟁력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 비스마르크가 집권해 사회보험법을 입안하던 1880년대 초반 무렵 독일 출신 철학자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국가는 선악에 대해 모든 말을 써서 거짓말을 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물론 니체의 독설이 겉으로는 독일의 통합을 부르짖으면서 노동계급을 일반시민들과 분리시키려는 비스마르크 개혁정책의 감춰진 의도를 겨냥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니체가 “국가는 많은 사람들을 잡기 위해 덫을 놓고 머리 위에 칼과 백 가지의 욕망을 매달아 놓는다”고 한 것은 당근과 채찍으로 대표된 당시 비스마르크 철혈정책의 이중성뿐 아니라 현재 시점의 대한민국 노동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대기업들이 고용을 늘리지 않는 진짜 이유는 한번 채용하면 자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간접고용을 통해 훨씬 싼값에 인력을 운용하면서 경기변동성 위험을 외주업체에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유연성도 성과급이나 직무급 비중이 커지게 되면 노동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지만 현재 대기업들의 반노동적 정서를 고려할 때 껄끄러운 조합원들을 ‘저성과자’로 몰아 노조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노동시장의 구조개혁 모델로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연안정성을 추구한 하르츠 개혁 결과 취업자가 증가하고 실업률이 감소한 것은 맞다. 하지만 1991년과 2011년 사이 저임금단기간 근로자가 4배나 증가하는 등 근로빈곤층 확대가 독일의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된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정규직 해고조건 완화의 덫에 걸려 희망을 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니체를 믿어라. 국가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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