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2일, 조선비즈, 신성헌 기자 보도
"이젠 함께 읽자"…직장인 독서 모임 늘어
"처음이다. 이렇게 진지한 토론은. 예정된 3시간보다 1시간 30분이 더 지났다. 굉장히 기쁜 게, 20~30대 여러분과 나의 고민이 같다는 거다. 바로 '정의로운 경제'다. 좋은 시간이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신촌의 복합문화공간 미플 강의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긴 모임에 매듭을 지었다. 4시간 30분 가까이 진행된 강연과 토론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장 교수나 맞은 편에 자리한 30여명도 뿌듯한 표정이었다. 대부분 20~30대다.
독서 모임 '다준다연구소(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다른 연구소)'의 정기 독회였다. 이날 주제로 삼은 책은 장 교수의 신간 '한국 자본주의'. 저자를 초청해 '한국 자본주의,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듣고 함께 토론했다.
여느 강연과 달리 쌍방향 대화가 오갔다. 책을 매개로 한 설전도 이어졌다. 질의응답, 토론, 강연이 뒤섞였다.
다준다연구소는 2012년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이 주축이 돼 만든 독서 모임이다. 지금은 언론인, 주부, 자영업자, 에너지 전문가, 직업 군인, 음악인도 있다. 연사나 저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경연(經筵)'을 필두로, 토크쇼, 연설 대회도 연다. 경연은 고려·조선 시대 임금이 신하들과 학문을 연마하고 국정을 논하던 것을 뜻한다. 이 모임도 참석자들의 의견 개진을 중시한다. 회비는 따로 없고, 행사 장소를 빌렸을 경우 대관료를 참석자들이 나눠 낸다.
- ▲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지난 6일 신촌 복합문화공간 미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이날 모임을 주최한 독서 모임 '다준다연구소'는 매주 저자 또는 연사를 초청한다. /신성헌 기자
이런 독서 모임이 최근 직장인을 비롯한 성인들 사이에서 인기다. 공공도서관이나 출판사들이 북클럽 같은 모임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자발적인 독서 동호회는 물론, 기업 내 모임도 늘고 있다.
◆ 독서 모임 인기… 온·오프라인 활성화
'토요일의 독서클럽(토클)'은 서울시내 직장인 4명이 시작한 독서 모임이다. 현재 고교 영어교사, 벤처인, 무역상, 언론인, IT 컨설턴트 등 8명이 참여한다. 작년 8월부터 시작해, 격주 토요일마다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분기별로 주제를 선정하고 온라인 소식지도 발행한다. 모임 때 오간 대화와 쟁점이 주 내용이다.
그 동안 '화폐' '중국' '전기(傳記)' '대하소설' '자연과학' 같은 테마로 다뤘다. 지난 15개월 동안 30여권의 책을 함께 봤다. 올 가을엔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완독했다.
순번제로 맡는 호스트가 토론을 주도하고, 모임 장소도 정한다. 최근엔 '자산어보'를 읽으면서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 식당에서 모이기도 했다. 일종의 '문화답사'를 겸한다.
창단 멤버인 회사원 오주용(30·경기 구리시)씨는 "호스트 제도를 통해 모두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한다"면서 "서평 등 기록을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서로의 시각차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독서 모임의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에 공개한 '201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의 독서 모임 참여율은 3.4%로 2년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연 평균 1인당 독서량은 2007년 12.1권 이후 계속해서 줄고 있는데 반해 대조적이다.
장동석 '기획회의' 편집주간은 "최근 들어 책을 함께 읽는 것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생겼다”면서 “책은 가장 신뢰할 만하고, 사람들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함께 읽기 붐은 출판 시장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지난 9월 '이젠, 함께 읽기다'(북바이북)라는 책이 나온데 이어, 지난달에는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서해문집)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전자는 작년 5월에 생긴 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의 회원 4명이 낸 책이다. 독서 토론, 북 콘서트, 원작 영화 감상, 인문학 여행, 고전낭독회 등을 주로 한다. 저자들은 함께 읽기를 통해 '아집의 독서' 습관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신기수 공동 저자는 함께 읽기가 확산되는 배경을 두고, 지난 3월에 나온 책 '단속 사회'를 인용해 설명했다. 그는 “소통과 단절이 공존하는 '단속사회'를 살면서 각자 (소통 없이) 푸념만 한다”면서 “모여서 읽고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너와 나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독서 모임을 기부 같은 사회 봉사 활동으로 발전시킨 경우도 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사내 동호회 '행복한 책'은 자신들이 읽은 책을 한 권 더 사서 기부하는 '책 1+1 기부 행사'를 연다. 2011년에 시작한 이 모임은 현재 회원 수가 520명에 이른다.
작년 10월과 지난 5월에는 서해 외연도와 강원도 홍천으로 '책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지역 어린이들과 퀴즈 풀기, 책 만들기, 책 보물 찾기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책과 친해지게 하는 재능 기부를 했다. 독서 모임은 매주 화요일 12시 사내 회의실에서 진행한다. 회원 20여명이 모여 20분간 책을 읽고 30분간 읽은 내용을 공유한다.
- ▲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사내 독서 동호회 '행복한 책' /행복한 책 제공
◆독서 모임에서 할 만한 프로그램
'이젠, 함께 읽기다'의 저자들은 독서 모임이 할 만한 프로그램으로 낭독을 추천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도 저서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서 “낭송은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면서 “집단적으로 암송을 하노라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도 터득할 수 있다”고 썼다.
독서 모임의 토론 방식도 다양하게 해 볼 수 있다. 주제를 놓고 발표, 토론하는 세미나 이외에도, 책의 주인공 역을 맡아서 연극을 해보는 방법도 있다. 토론을 할 때는 책 선정은 물론, 발제-진행-토론자도 중요하다. 논의할 주제를 사전에 발제해서 토론의 로드맵을 그리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