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일 수요일

김정환,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폴란드 국민시인, 빛의 심금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022107405&code=960205

2014년 12월 2일, 경향신문, 임아영 기자 보도


“식민 제국주의 극복 못한 우리가 씁쓸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ㆍ폴란드 ‘국민시인’ 헤르베르트 시전집 완역한 김정환 시인
“식민지를 경험했지만 제국주의적인 것을 극복한다는 것, 시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슬픔에 이른다는 게 폴란드에서는 가능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게 씁쓸했습니다.”

2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을 만난 김정환 시인(60·사진)은 지난해부터 문학동네에서 기획한 ‘세계시인전집’ 시리즈로 셰이머스 히니와 필립 라킨 두 권을 내놨고, 세 번째로 폴란드의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를 선보였다. 1950년 등단한 헤르베르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면서 사회주의 정부가 공인하는 ‘폴란드 문인협회’에서 탈퇴했다. 이후 그는 폴란드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지만 은행 사무원, 위생설비 설계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필명으로 신분을 감춘 채 간헐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망명길에 올랐지만 그는 끝까지 고국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 출간한 전집은 1956년 출간된 헤르베르트의 첫 번째 시집 <빛의 심금> 등 총 10권의 시집과 여기에 빠진 작품들까지 한데 묶은 것이다. 직접 번역을 한 김 시인은 1982년에 <폴란드 민족 시집>을 번역했는데 당시 거기에 실려 있던 시 중 헤르베르트의 ‘비’가 가장 인상 깊었지만 영어 중역이라 늘 께름칙했다고 밝혔다. 그는 “극서정과 지극한 명석성을 합치시키는 놀라운 재주가 있는 시인이다. 체제로 인해 인간성이 파괴되는 양상이 독특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번역을 하면서 우리 시단에 대한 씁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와 식민지 경험의 핍박이 비슷한데, 왜 우리에게는 이런 시인이 없었을까요. 우리는 시인 성향도 진영으로 가르면서 나눠 먹었다고 할까요. 헤르베르트를 보면 폴란드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운의 결정이 견고한 서정을 이루죠. 그 서정이 너그러움을 이루는 포용이 되고 문학적 복수도 되는 과정을 우리나라도 겪었더라면 지금보다는 젊은 세대들이 시 쓰기가 좋지 않았을까요.”

김 시인은 폴란드어 번역본이 아니라 영어판을 저본으로 삼고 원본을 샅샅이 비교했다. 그는 “단어적 뉘앙스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문법적 뉘앙스까지는 살려 놓으려고 했다”면서 “원칙은 그 나라 언어를 쓰는 사람이 느꼈을 법한 것을 우리나라 사람에게 느끼게 해주자는 것이었고 시인 입장에서 쓴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까 꿈에 헤르베르트가 나왔다”며 웃었다. 앞으로 김 시인은 안나 아흐마토바, 로버트 프로스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조지 세페리스 등 9명 시인의 전집을 더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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