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7일 일요일

엄마의 탄생, 김보성, 김향수, 안미선, 오월의 봄, 산후우울증, 모유 수유, 모성 이데올로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052113315&code=960205

2014년 12월 5일,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보도


[책과 삶]자본의 덫에 걸린 ‘엄마 노릇’ 대체 어디까지일까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엄마의 탄생…김보성·김향수·안미선 지음 | 오월의봄 | 288쪽 | 1만3000원

직업적 사진작가들을 제외한 이들에게 사진은 취미다. 엄마들은 예외다. 엄마들에게 사진은 취미가 아닌 육아이고 사진기는 육아용품이다.

여성학자 김향수씨는 <엄마의 탄생>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분명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인데, DSLR와 스마트폰 사진은 정말 달랐다. 아이의 표정, 뽀얀 피부, 통통한 볼살, 아이 움직임과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놀이터 낙엽 색감까지. 두 사진을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DSLR를 갖고 싶었다. 100만원 넘는 돈을 투자했는데 너무 무거워 집에 처박아두는 거 아냐? 컴퓨터를 켜고 DSLR 제품 후기를 찾아본다. 여벌 옷, 물티슈, 기저귀, 애들 간식으로 무거운 엄마 가방을 고려해 작고 가벼운 육아맘용 신제품이 나왔다고 한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어린이 모드 촬영 기능까지. (중략)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사서 많이 찍어주는 게 본전 뽑는 거란 말을 들은 날 밤, 결국 사고야 말았다.”

2000년대 이후 임신한 모습을 담는 만삭사진과 아이의 성장을 꼼꼼히 사진으로 남기는 성장앨범이 유행이 됐다. 비용이 많이 드는 성장앨범 대신 부모가 스튜디오를 빌려 직접 촬영하는 ‘DIY형 성장앨범’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모성을 내세워 다른 엄마들과의 경쟁심과 소비를 부추긴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세 명의 저자들이 공저한 <엄마의 탄생>은 영·유아기 자녀를 둔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엄마 노릇’이 의미하는 여러 측면을 살핀 책이다. 책은 모성이 어떻게 자본주의적 소비주의 및 경쟁주의에 포섭돼 있는지를 드러낸다. 성장앨범은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다.

아기를 안은 엄마들이 활짝 웃고 있다(왼쪽 사진). 한국 사회에서 엄마들은 자신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아이를 성공적으로 키워내야만 하는 CEO다. 2009년 1조2000억원이던 육아용품 시장 규모는 꾸준히 늘어 2012년 기준으로 1조7000억원으로 성장했다. 오른쪽 사진은 2009년 한 육아용품 기업이 주최한 유모차 패션쇼.

한국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자녀 중심적이고, 전문가의 지도가 따르며, 감정 소모적이고, 노동집약적이고, 재정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 출발은 산후조리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출산을 전후로 존재 조건의 급격한 단절을 경험한다. 출산 이전까지 삶의 중심이 자아실현이었다면 출산 이후에는 그것이 ‘좋은 엄마 되기’로 이동한다. 별다른 육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엄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에서 1996년에 처음으로 등장한 산후조리원은 수유부터 기저귀 갈아주기에 이르기까지 ‘초보 엄마’들에게 필요한 기능을 교육함으로써 이 단절을 보완한다. 2012년 기준으로 산모들의 약 50%가 출산 직후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고 있다.

아기 마사지, 모빌 만들기, 아기 책 만들기, 찰흙 작품 만들기 등 산후조리원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은 육아상품 홍보와 연계돼 있다. 업체들은 “소중한 아기의 예민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천연원료로 만든 마사지 오일이 필요하고, “하나뿐인 내 아이를 남들한테 뒤지지 않게 키우려면” 육아잡지 구독이 필요하다며 자사 상품을 슬쩍 들이민다.

여성주의 시각을 공유하는 저자들은 특히 모유수유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 여성들에게 “자녀의 필요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첫 번째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수유를 하는 기간에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불편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모유수유 예찬은) 여성에게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엄마상만을 강요하여, 엄마 노릇 외에 다양한 정체성과 자아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산후우울증을 바라보는 저자들의 시각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저자들은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산후우울증의 경우 “자신의 모든 걸 아이에게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억울함과 상실감이 원인이 된다고 본다. 문제는 ‘좋은 엄마’의 사회적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박탈감을 느낀 여성에게 아이가 짐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헌신하는 엄마’가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엄마라는 관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아이에 대한 불만의 표출은 ‘비정상적인 것’ ‘엄마답지 못한 것’으로 치부된다. 저자들은 “(산후우울증은) 재생산 영역을 여성에게 전담시키고 그 노동을 해낼 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강요하는 시대착오적인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풍경”이라며 “모성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발설하고 연대해 대안을 모색하는 것 자체를 억압한다”고 말한다.

모성 이데올로기가 엄마들을 윤리적으로 옥죄고 있다면, 육아 단계를 세분화해 각 단계별로 최상의 과학적 접근법이 있다고 설파하는 ‘육아과학’은 엄마들을 소비자로 호명한다. 의학, 뇌과학, 아동학, 교육학, 영양학, 심리학, 위생학 등 여러 학문에 걸쳐 있는 육아관련 과학 지식들은 엄마들에게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점점 더 많은 육아지식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주입한다. 특히 육아정보가 사이버 공간에서 공유되면서 “다양한 이론을 섭렵하고 내 아이 상태를 진단하고 개선하는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규범”이 확산됐다.

육아관련 지식의 증가는 유아용품 시장의 성장과 직결된다. 2009년 1조2000억원 규모였던 유아용품 시장은 매년 10% 이상 꾸준히 증가해 2012년 기준으로 1조7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계에서 육아가 차지하는 부담은 상대적으로 더 늘었다는 뜻이다. 저자들은 육아과학이 육아를 “신체적, 정서적, 지적 발달을 도모하여 완벽한 아이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만들어버렸다고 말한다.
공공의 역할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완벽한 아이 만들기’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집행자인 엄마들은 전방위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엄마 노릇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거라고, 아이의 문제는 엄마의 실패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한국 엄마들은 고품질 자녀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먹거리와 입을거리에서부터 각종 질병과 사고, 재난까지 도처에 위험이 산재한 현대 한국 사회 속에서 엄마는 이제 자신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아이를 성공적으로 키워내야만 하는 CEO가 되었다.” 책은 계속 이래도 되는 것인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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