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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국경제를 망쳤는가》(미쓰하시 다카아키 지음, 정영태 옮김, 초록물고기)는 이 점을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일본인 경제전문가에 의하면, 외국인 투자가의 지분율이 전체 주식의 절반을 넘은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이미 한국기업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세계시장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투자가들의 손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재벌기업을 ‘우리 기업’ 운운하는 것은 확실히 난센스이다. 지금 재벌기업은 국민경제의 차원에서 논할 대상은 더이상 아니다. 그러니까 대기업이 번성하면 저절로 국민의 경제생활이 좋아진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임이 분명하다.
글로벌 자본으로서의 대기업, 희생되는 국민경제
실제로 진상은 그 반대라고 해야 옳다. 즉, 대기업이 국민경제에 이바지한다기보다는 노동자와 서민들이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하도록 구조화돼 있는 게 오늘날 한국경제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사회가 심각하게 앓고 있는 빈부격차, 비정규직 노동의 급증,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은 글로벌 자본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반가운 현상이다. 대기업은 국내시장을 바라보지 않는다. 대기업의 성장은 주로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위해서 국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상승을 원치 않는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면 국내수요가 증가되지만, 국내시장은 대기업으로서는 너무나 협소한 시장이기에 매력이 있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대기업은 한미FTA를 비롯한 여러 자유무역협정을 강력하게 요구해왔고, 그 타결을 열렬히 환영했다.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국가의 경제주권 상실은 대기업과 투자가들이 관심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는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경제에서 노동자 혹은 일반 국민과 수출 대기업 사이의 이해관계 상충은 구조적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의 대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온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국가에 의해 오랫동안 직접적으로 제공되어온 특혜이다. 결정적인 특혜는 법인세 인하 및 원화가치 절하정책을 통한 전폭적인 수출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감세로 인한 국가예산의 감소는 말할 것도 없이 공공서비스의 축소로 연결되어 일반 국민의 생활에 타격을 가하지만, 원화약세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원화가치 약세 정책으로 석유를 비롯한 수입생필품 가격은 당연히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되게 마련이다. 실질임금은 끊임없이 바닥으로 향하는데 물가가 계속해서 올라가면 서민경제의 파탄은 필연적이다. 일반 국민의 희생 위에 대기업이 번성하는 메커니즘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전력이라는 핵심적인 산업 인프라에서도 기업은 오랫동안 특혜를 누려왔다. 이것은 기업이 생산비 이하의 싼값으로 전기를 이용하는 대신에 일반 국민은 상대적으로 높은 가정용 전기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들어진 구조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이 구조는 지금도 별다른 사회적 저항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한국경제의 핵심 문제는 대기업의 수출 실적을 위해서 국민경제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 그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처럼 일반 국민의 막대한 희생을 대가로 실현되는 이익의 큰 부분은 외국인 투자가들의 손으로 들어가고 있다. 하기는 내국인 투자가들이라고 해서 괜찮은 것도 아니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오늘날 대규모 투자가들은 자신의 자금을 생산적인 데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단기간에 최대한 금융자산을 불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익이 예상된다면, 그 결과가 인간과 사회를 파괴하고 세계의 앞날을 위태롭게 하는 것일지라도 주저 없이 투자한다. 그리고 이들이 투자한 돈으로 움직이는 기업은 투자가들의 자산 증식 욕구에 부응하여 온갖 비윤리적·반사회적인 행동도 꺼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주가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주가 폭락이며, 그로 인한 궁극적인 파산이다. 그리하여 ‘윤리적 경영’ 혹은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경영’이라는 아이디어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헛소리에 불과하다. 임금 삭감,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대 등은 기업이 주가 상승을 꾀하거나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서 행하는 매우 비인간적인, 그러나 가장 흔한 방법이다. 신(新)기술의 도입, 자동화 기계의 설비 등은 보다 세련된 방법이지만, 그것도 결국은 노동자 감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세계는 지금 글로벌 자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세계 전역에 걸친 자본의 위세는 너무도 막강해서 국민국가의 공적 권력으로 제어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음이 확실하다. 더욱이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은 대기업이나 금융투자가들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정경유착이라는 진부한 용어로는 제대로 접근도 못할 만큼 정치에 대한 자본의 지배는 전면적인 것이 되었다. 정치뿐만 아니다. 언론, 대학, 교육, 문화, 과학기술 등등, 여론을 주도하고, 사회를 이끄는 온갖 분야의 ‘엘리트들’을 지배하고, 그들의 정신을 오염시켜온 것도 자본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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