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일, 권혁철 기자 칼럼
“요즘 기사도 안 쓰던데 신문사에서 뭘 해?”
지난주 처가 모임에서 처남이 물었다. 처남은 인터넷에서 내 이름으로 기사검색까지 해봤는데, 기사를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나는 기사를 안 쓴 지 2년쯤 됐다. 내가 맡고 있는 직책이 ‘지역데스크’이기 때문이다.
데스크는 취재 기자들이 보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뉴스 가치를 판단하여 보도할 기사를 취사선택한다. 취재 기자와 협의해 기사 방향을 잡고 기자들이 쓴 기사를 고치고 다듬어 지면과 온라인 등으로 내보낸다. 데스크의 구실 가운데, 취재 기자들의 기사를 고치는 일(기자들은 이를 ‘데스킹’이라고 한다)의 비중이 꽤 높다. 나는 사실관계나 논리 전개가 분명치 않거나 반드시 들어갈 내용이 빠진 경우가 아니면 남이 쓴 기사는 되도록 손대지 않으려고 한다. 쓴 사람의 판단과 마음의 결이 담긴 기사를 함부로 뜯어고치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기사에서 ‘혈세’를 발견하면 반드시 ‘세금’으로 고친다. 세금 관련 기사를 쓸 때 기자들은 ‘혈세를 낭비했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불거진 방산 비리 등에 대해 “국민 혈세를 낭비해온 문제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가려내서…”라고 밝혔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혈세를 ‘가혹한 조세’, ‘피와 같은 세금이라는 뜻으로 귀중한 세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애초 혈세는 귀중한 세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아니라, 생명을 바쳐 병역 의무를 다한다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혈세는 일본에서 비롯된 말이더군요. 메이지 5년인 1872년입니다. 이때 태정관 포고 형식으로 징병명령이 발령됩니다. 이때의 징병의무, 즉 병역의무를 혈세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때 혈세는 전쟁 지역에서 피를 흘린다는 의미였습니다. … 그런데 이런 유래를 갖는 혈세라는 단어가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혈세는 곧 세금이 되었습니다. 세금이 곧 혈세인, 국민을 쥐어짜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블로그)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다나카 다케오 정무총감도 혈세를 세금이 아니라 병역의무라고 설명했다. “‘조선인들에게 참정권을 주라’는 요구가 이미 훨씬 이전부터 조선인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 그것에 대해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조선인은 납세야 하고 있지만 혈세(병역의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는 않으니 일본인과 똑같은 참정권을 주라는 요구는 무리라는 그런 의견이 매우 많았습니다.”(<식민통치의 허상과 실상>)
나는 한국이 복지사회로 가려면 혈세란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비과세 축소, 재정지출 구조 개혁과 함께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혈세 앞에서는 ‘복지를 위해 증세하자’는 말을 꺼내기 어렵다. 혈세는 국민을 쥐어짜므로 고통을 준다. 국민 고통을 늘리자는 사람은 나쁜 놈이다. 누가 세금을 늘리자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복지 증세 논의는 이른바 ‘혈세 프레임’을 뛰어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설명한다.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구성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본질은 그 안에 있는 생각이다. 언어는 그런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구실을 한다”고 주장했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먼저 다르게 말해야 한다. 나는 데스크로 일할 동안 기사 가운데 혈세란 낱말은 세금으로 계속 고칠 생각이다. 내 사전에 혈세는 없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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