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제7권 제9호 1935년 10월1일) 잡지를 보니, 책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있다. ‘서적시장조사기(書籍市場調査記), 한도(漢圖)·이문(以文)·박문(博文)·영창(永昌) 등 서시(書市)에 나타난’이란 기사가 그것이다. 이 기사를 통해 1935년 당시 경성, 곧 서울에서는 서적시장도 ‘꽤 활기를 띠고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지명과 꼭 같다. 종로 일대에 서점이 날로 불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종로 ‘야시(夜市)’에 고본서적상(古本賣商輩)도 족출(簇出)한다고 하니, 밤이면 야시장에 헌책을 파는 상인이 대거 출현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들 불어난 서점에서 팔리는 책의 절대다수는 ‘현해탄을 건너오는’ 책, 곧 일본책이다. 하지만 ‘조선 안에서 조선 사람의 손으로 되어서 나오는 서적도 전보다 훨씬 많아져 가는 현상’이란다. 조선의 인쇄, 출판 역시 발전 추세에 있었던 것이다.
학자와 전문가의 증가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한편 “조선의 고전(古典)을 찾아보려는 학구적 양심을 갖고 있는 학도, 한글 문헌에서 ‘우리의 넋과 얼, 모든 특색, 자랑, 모든 문화적 유산을 알아보자’는 학생 내지 일반 민중의 심리현상의 발현”이라고 추측한다.
이 기사는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 이문당(以文堂), 박문서관(博文書館), 영창서관(永昌書館) 등 큰 서점의 판매부수를 조사하고 있다.
이것을 검토해 보면 당시 스테디셀러 책들을 짐작할 수 있다. 한성도서주식회사에 의하면, 심의린(沈宜麟)의 <조선동화대집(朝鮮童話大集)>은 출판 이래 5000부를 돌파해 3판을 준비 중이고, 이윤재(李允宰)의 <문예독본(文藝讀本)> 상·하 2권은 각각 4000부를 판매하여 재판을 준비 중이고, 이은상(李殷相)의 <조선사화집(朝鮮史話集)>도 출간 이래 3000부를 돌파하였다고 한다.
그 외 문학서적으로는 사화(史話)와 역사소설이 가장 많이 팔렸다. 이광수의 <마의태자> <이순신> 등이 수위를 점하여 각각 4000부를 넘었고, 그 다음 이은상의 <노산시조집(鷺山詩調集)>이 2500부를 돌파하여 재판이 절판되고 3판을 인쇄하고 있으며, 그 다음은 이광수의 ‘순문예작품’인 <무정> <개척자> <재생> 등이 출판된 지 오래된 이유도 있겠지만 4000부 가까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근자에 출판된 <흙> 역시 호평을 받아 3판 인쇄 중이고 4000부는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김동인의 <여인>, 이태준의 <달밤> 등 문예작품도 2000~3000부가 매진되어 재판 인쇄에 들어갔고, 심훈의 <영원의 미소> 등 4, 5종도 인쇄 중이라 한다. 역시 소설의 시대다!
한성도서주식회사의 경우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는 주문이 몇 년 전보다 훨씬 증가하고 있고, 특히 조선 사화와 문예작품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이 확연히 높아져서 아무리 안 팔린다 해도 4000~5000부는 쉽게 팔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몇 해 전 잘 팔리는 책도 4000부를 넘기 어려웠던 것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현상이다. 기자는 “조선의 독서열이 늘어져 가고 있는 사실”에 감탄한다.
이문당은 한성도서와 함께 오래전부터 지방에까지 널리 알려진 대서점이다. 이문당의 판매를 조사해 보면, 1922년에는 노자영의 작품이 ‘조선의 젊은 남녀들에게 많이 읽혀져’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사랑의 불꽃> 같은 소설은 하루 평균 30~40부씩 팔려 서적시장에서 최고의 판매실적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대정 14년(일본 다이쇼시대, 1925년)부터는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조(世界思潮)의 격변과 외래사상의 격랑으로 반도 사상계에도 일대 센세이션과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던 관계’로 노자영의 소설은 급격히 몰락하고 이광수의 <단종애사> <이순신> <마의태자> 등 역사소설이 잘 팔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조의 영향을 받아 <카프작가 7인집> <카프시인집> 등 새로운 문예서적류가 이광수의 역사소설 다음 가는 호성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박문서관은 종로에서 가장 많은 독서가가 찾는 서점이다. 사전류가 가장 많이 팔리고, 그중 <선화사전(鮮和辭典)>이 4000~5000부를 돌파해 고대소설, 신소설을 제하고는 판매의 수위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 <일선신옥편(日鮮新玉篇)> <한일선신옥편(漢日鮮新玉篇)> 등은 퍽 많이 나가고, 이제까지 팔린 것을 계산하면 고대소설보다 훨씬 더 나간 것이다. 일제강점기였으니 일본어, 한국어, 한자를 동시에 찾아볼 수 있는 사전에 대한 수요가 워낙 컸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소설이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지방의 농사꾼, 부녀자, 일반 가정의 여전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충렬전(忠烈傳)> <춘향전> <심청전> 등이 3만~4만부를 돌파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잘 팔리는 책은 <추월색(秋月色)> <송죽(松竹)> <미인의 도(道)> <능라도(陵羅島)> <춘몽(春夢)>과 같은 소위 ‘신소설’류도 많이 나가는데, 이런 책들은 대개 2만부를 넘기고 있다고 한다.
옛 소설이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린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책으로만 보면 1930년대 농촌은 여전히 조선시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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